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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가람 이병기(李秉岐 )의 교육 사상에 나타난 양계초(梁啓超)의 영향 비교 연구
The Comparative Study Of Liang Qichao's Influence On Garam Lee Byeonggi’s Educational Thought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2019S1A5B5A07091446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09월 01일 ~ 2020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이경애
연구수행기관 전북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가람 이병기(1891-1978)는 한국의 유교적 전통을 계승한 학자이면서도 근대 동아시아적 시각을 지닌 학자였다. 일찍이 중국의 근대 개화기 지식인 양계초(梁啓超, 1873~1929)의 견해를 수용한 가람은 국학 연구와 교육을 선도하면서 초・중등학교와 대학에서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또한 민중 계몽・교육을 평생 실천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근대 개화기 양계초의 사상을 수용한 가람 이병기의 교육 사상 및 교육 실천의 성격을 비교하여 그 차별성과 의의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근대 형성기 동아시아 사상에 나타난 근대적 교육체계의 의미를 분석하고, 이것이 근대 민족주의와 근대 국가담론과 어떻게 길항하는지 역사적 시각에서 성찰하고자 하는데 그 주된 의미를 두고 있다.

    본 연구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1) 가람이 신학문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양계초(梁啓超)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람의 양계초 사상 수용에 대한 고찰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음빙실문집󰡕을 통해 수용한 가람의 사상과 영향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2) 한국 근・현대 지식인 가람과 중국의 지식인 양계초 사상체계 속에서 근대에 대한 사유와 교육적 인식의 성격을 서구적 근대와 근대제국주의의 침략 및 위협 속에서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들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담보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교육에서 찾고자 하였다. 따라서 양계초 사상의 수용은 동아시아 근대담론 속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3) 동아시아 근대 형성기 교육의 문제는 외연적 차원에서는 서구적 근대질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내연적 차원에서는 자민족의 회생과 갱생을 도모하여 보편적 민족 및 국가라는 개념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내적 질서로 제기된다. 서구적 근대 수용의 양상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적 배경과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인식을 갖는데 양계초와 가람 이병기의 교육 사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이러한 근대 계몽기 교육 사상과 한국 교육의 여러 맥락을 고려하면서 양계초의 사상을 수용한 가람 이병기의 교육사상을 중심으로 그 특징과 의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의 기대 효과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1) 교육과학 원리의 관점에 맞추어 중국 교육의 근대화를 실현하고자 한 교육이론가로서 양계초의 이론을 수용하여 여성교육과 아동교육을 중시하고 국문교육과 역사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공교육과 사회교육에 헌신하였다. 그의 교육 사상과 그가 적극적으로 펼친 공교육과 민중 계몽 교육의 실천에서 근대 계몽기 선도적 교육 실천가로서의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 그동안의 가람의 학문에 대한 전통 수호의 연구에만 한정된 연구에서 벗어나 중국의 양계초의 수용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 인식과 서구 문화의 수용, 근대적 문화사상, 애국 계몽사상 즉 계몽・교육 사상을 근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이라는 좀 더 확장된 새로운 시야와 안목을 넓힐 수 있게 해준다.
    (3) 현대 한국학의 지형도에서 가람 이병기가 차지하는 근대적 위상을 파악함으로써, 그의 글이 문학 및 글쓰기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근대적 발전의 주도 문학의 언어・형식면에서 가장 핵심인 문체의 혁신을 이루어낸 원동력을 발견하여 현대 한국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관점 및 방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1) 본 연구에서 중국의 양계초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가람의 사상과 의식을 고찰함에 역사적 관점과 비교문학적 관점의 방법을 취하고자 한다.
    (2)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관련된 사상이나 이론을 비교 대조하여 자료의 분석 및 해석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3) 논의의 초점은 가람 이병기의 교육과 교육론에 맞추어 진행한다. 구체적인 논의는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의 교육・학술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자료들로 한정하고자 한다.
    (4) 논의의 범위는 양계초의 교육사상과 가람 이병기 교육관과 실천에 관한 논의로 한정한다.
    (5) 이에 본 연구는 가람 이병기가 남긴 자료를 대상으로 분석·검토한다. 필요한 경우 메타자료까지도 활용한다. 이런 자료들을 분석·검토하여 먼저 서구적 근대성 담론을 뚜렷이 의식하면서 그와의 대비 혹은 대조를 통해 한국 및 동아시아의 독자적 근대성 개념을 가늠하고자 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가람 이병기의 교육사상 형성 배경

    가람은 근대 계몽기 1907년 열일곱 살 호남학회 간부로 서울에 있던 그의 부친이 사 온 󰡔음빙실문집󰡕을 읽고 새 교육을 받아야함을 깨닫고 시급히 학교를 가고자 하였다. 한학만 공부하면서 몽매(蒙昧)한 구시대 구사상에 갇혀 있던 가람에게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은 새로운 세상의 변화에 대한 확실한 각성과 신학문의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을 처음 접한 가람의 의식은 1909년 4월 13일 일기의 한시 잘 드러나 있는데 신학문에 대한 의지와 포부를 드러내면서 동・서양의 학문의 경계와 뜻이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들을 비교하여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겠다는 양계초의 학술 사상과 애국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으며 주체성을 드러낸다. 당시 근대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양계초의 사상은 평생을 공교육자로, 민중 계몽 교육자로 국어교육자로서 살아간 가람의 교육적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2) 가람이 수용한 양계초의 교육 사상

    양계초의 사상은 가람에게 새로운 근대를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계초는 유신 변법 운동에 참여하면서 교육을 모든 개혁의 근본으로 중시하게 되었다. 󰡔음빙실문집󰡕의 교육 관련 글 「변법통의(變法通議)」는 ’과거제 개혁‘, ’민지개발과 인재육성‘을 주창하면서 여성교육, 아동교육, 사범교육을 강조하였다. 또한 민족교육에서는 국문교육과 역사교육, 소설교육을 중시하고, 전문교육은 사범교육, 인재양성교육을 강조하였다. 「신민설(新民說)」에서는 국가의식과 국민의식을 강조하고, 「논교육당정종지(論敎育當定宗旨)」에서는 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정책사의(敎育政策私議)」에서는 소학 교육의 의무화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양계초의 교육사상을 수용한 가람의 교육사상은 다음과 같이 고찰할 수 있다.

    ① 아동교육과 여성교육을 중시하는 보통교육
    양계초가 주장하는 민지의 개발은 보통교육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를 수용한 가람도 아동과 여성 교육을 중요시하였으며, 아동과 여성의 창의성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훌륭한 어머니들을 통해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황진이 등 여류 작가의 작품과 문체들을 높이 평가하고, 나혜석 같은 인재가 예술과 학술에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아동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② 국문교육과 역사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교육
    양계초는 민족교육을 강조하였는데 이를 위해 전 국민에게 국문교육을 중시하였고, 애국심과 민족 단결력을 증강시키기 위한 역사교육을 중시하였다. 이를 수용한 가람은 언문일치의 한글교육과 국어교재 편찬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양계초는 애국심의 근원을 역사교육에서 찾았는데 가람도 우리 민족의 영웅과 위인들을 부각시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그의 한글운동은 단순한 언어보급 운동이 아니라 독립 운동이었으며 애국・민중・계몽・교육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국문교육(한글교육), 역사교육의 면모를 양계초와 사상과 비교하면서 구체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③ 사범교육과 인재 양성 교육
    양계초는 인재육성을 위한 전문교육으로 사범교육과 인재양성교육을 주장하였다. 소학교의 교사가 사범학교 학생이 되는 사범학교와 소학교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다. 국민을 일깨우기 위해 서학이나 전통학문에 능한 교사 양성을 시급한 문제로 생각한 양계초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그는 사범에 입학하여 교사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④ 학교교육과 사회교육
    양계초는 󰡔음빙실문집󰡕의 「신민설(新民說)」에서 신민교육으로 전국민교육, 아동본성에 따르는 교육, 중서(中西) 겸통(兼通)과 지정의(知情意) 조화의 교육, 정치교육과 사회교육을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학교교육과 더불어 사회교육도 중요시 하였는데 특히 사회교육은 정식 기관이 아닌, 언론 단체, 강연 등을 통해 일반 시민을 교육하는 것이며 또한 언론을 통해 여러 글을 기재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가람 역시 양계초의 사회교육 사상을 수용하였으며, 초인적인 역량으로 방대한 국학 연구와 저술을 남겼다.

    (3) 가람의 양계초 교육사상 수용의 의의와 차별성

    양계초의 사상을 수용한 가람은 중국과는 다른 조선의 현실을 견지하면서 그것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수용하고 그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리하여 근대 계몽기 제국주의 침략 속에서 가람은 그의 교육적 삶과 학문에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 교육을 국가 생존의 전략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근대를 창출하고자 하는 양계초와 가람의 사상 고찰은 오늘의 동아시아 지역성을 고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동아시아 근대 담론의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될 필요가 제기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가람 이병기는 청년기에 접한 양계초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통하여 동・서양의 사상에 눈을 뜨고 신학문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계초의 「변법통의(變法通議)」와 「신민설(新民說)」에 나타난 교육 사상은 가람에게 그대로 수용되었으며, 전 생애를 걸쳐 그의 교육적 삶과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 평생을 학교 교육에 헌신하였고, 한글 운동의 선구자로, 우리글과 문학, 역사 등을 가르치는 민중 계몽 교육자의 삶을 살았다.
    가람의 교육 이념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민중계몽이었다. 이는 양계초의 영향과 더불어 일제 침략의 현실에 대응하여 우리 민족의 영원한 독립을 도모하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 교육을 위해 무엇보다도 그는 교육의 목적을 특히 사범교육과 인재양성교육에 두었다. 그는 일반 민중과 학생을 교육하면서 특히 아동교육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중시하였고, 보통교육에서 전문교육으로 발전하였다. 그가 가르치는 교육의 내용은 국문교육과 역사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교육이었다. 또한 그의 교육 방법은 평생 학교교육을 통한 교육 활동뿐 아니라 사회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가람은 45년 동안 가르치고 연구한 학문과 강단, 문단 활동을 통해서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을 키워 훌륭한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또한 민족교육을 위해 민족어를 정립하고 국문교육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가람의 교육 활동은 국어국문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국권 회복과 부강을 위한 교육구국론은 양계초를 비롯한 조선 개화기 지식인뿐만 아니라 민족교육을 중시한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다만 이들과 대비되는 가람의 교육 사상은 조선 최초로 설립된 정규 사범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의 교사로서 앞 세대들이 받아들이고 펼쳤던 교육적 열망과 이상을 교육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면서도 그의 삶과 학문에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 영문
  • Garam(嘉藍) Lee Byeongki(李秉岐) opened his eyes to East and West ideas through Liang Qichao(梁啓超)'s "THE EUMBINGSILMUNJIP(飮氷室文集)" which led to his entrance into theological sciences. The educational ideas that appeared in Liang Qichao(梁啓超)'s the institutional reform(變法通議) and the new citizn(新民說) were accepted by Garam and greatly influenced his educational life and learning throughout his life. After graduating from the Normal School, he devoted his whole life to school education, and led the life of a public enlightenment educator who taught Korean writing, literature, and history as a pioneer of the Korean language movement.
    Garam's educational philosophy was a popular enlightenment for the independence of Joseon. This stems from the strong will to promote the eternal independence of the Korean people in response to the reality of the Japanese invasion along with the influence of Liang Qichao. For the independence of Joseon and the education of the people, he placed the purpose of education especially on the education of teachers and talents. While educating the general public and students, he emphasized education for children and women in particular, and developed from ordinary education to professional education. The contents of his education were ethnic education centered on Korean language education and history education. His teaching methods were also carried out through social education as well as educational activities throughout his life. Based on these ideas, Garam developed numerous scholars and writers through his 45-year-long teaching, lectures, and literary activities. In addition, the education activities of Garam, who established the national language for national education and made every effort to educate Korean literature, greatly developed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The theory of educational preservation for the restoration of national sovereignty and prosperity is a common phenomenon in many East Asian countries, focusing on national education as well as Liang Qichao and other intellectual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of Joseon. However, Garam's educational thought, which contrasts with these, is very meaningful in that he realized the educational aspirations and ideals that the previous generations had accepted in the field of education, but did not lose his identity in his life and studi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의 목적은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1978)의 학문과 사상의 근간이 된 근대 계몽기 중국 양계초(梁啓超, 1873~1929)의 사상을 중심으로 그 수용 양상을 밝히고, 이를 계기로 평생 교육에 헌신한 가람의 학문과 교육 활동에 나타난 특징과 의의를 고찰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양계초 사상을 수용한 가람의 학문과 사상이 제국주의와 서구 열강들의 침략에 대항하는 실행 가능한 대응 전략으로의 가능성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또한 당대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던 역사적 시대적 이해관계 속에서도 이루어진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교류를 통하여 가람의 사상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확장하고자 한다.
    가람은 근대 계몽기 양계초의 사상을 수용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여성교육과 아동교육을 중시하고 국문교육과 역사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공교육과 민중 계몽교육에 선도적 교육 실천가로 평생 살았다. 국문학자로, 한국의 유교적 전통을 계승한 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양계초 사상을 수용한 그는 근대의식과 동아시아적 시각을 지닌 교육자이자 학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현대 교육 사상에서 근대적 발전을 주도하고 혁신을 이룬 가람 이병기의 교육 사상의 원동력을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의 영향에서 발견하고 그의 교육 사상을 교육 이념, 목적, 대상, 내용, 방법 등으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그의 의의와 근대적 위상을 제고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가람은 교사로서, 일반 대중들에게 한글과 시조, 국문학,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며 시대를 선도하는 계몽가로서, 국어교육자로서 활동하였다. 논의한 바와 같이 양계초의 아동교육, 여성교육, 국문교육, 역사교육, 신민교육을 중시한 교육사상은 가람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근대계몽기 한국의 지식인들은 양계초의 글을 통해서 사회진화론을 바탕으로 하여 교육만능의 문명개화적 개화지상주의로 구교육의 폐해와 개혁의 시급성을 요구하였으나 그것이 조직적이거나 일관성을 지니지 못한 한계도 보여준다. 그러나 가람은 국어교육자로서 일관된 교육을 실천하였으며, 사회교육에 있어서도 한글운동과 국문학 연구에 천착하여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였다. 중국의 양계초의 사상을 수용한 가람은 중국과는 다른 조선의 현실을 견지하면서 그것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수용하고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리하여 일제 강점기 격변하는 세계정세와 한・중・일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가람은 그의 삶과 학문에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
    가람이 양계초의 사상을 크게 수용하고 있다 할지라도 한・중・일 3국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양계초와 가람의 개인적・국가적 행보도 다른 만큼 그 시각은 서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가람은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가 되어 평생을 학교 교육에 헌신하였고, 한글 운동의 선구자로, 우리글과 문학, 역사 등을 가르치는 민중계몽 교육자의 삶을 살았다. 그의 교육 사상의 근간은 일제 침략의 현실에 대응하여 우리 민족의 영원한 독립을 도모하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교육 이념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민족계몽이었다. 앞선 개화기 지식인들이 수용한 민족교육, 국문교육, 사범교육, 여성교육, 역사교육 등을 중시한 점에서 동아시아 국가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교육구국론이기도 하다. 특히 차별화되는 가람의 사상과 활동의 특징은 조선 최초로 설립된 정규 사범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의 교사로서 앞 세대들이 받아들이고 펼쳤으나 이루지 못한 교육적 열망과 이상을 일제 치하와 해방, 한국 전쟁 등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실현해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가람은 사범학교 출신 교사로 평생을 헌신하였다. 또한 45년 동안 가르치고 연구한 학문과 강단, 문단 활동을 통해서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을 키워 훌륭한 인재들을 양성하였으며, 민족교육을 위해 민족어를 정립하고 국문 교육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가람의 교육 활동은 민족교육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여 실천하는 한국 교육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격변하는 한・중・일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의 삶과 학문에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 국문 보급과 한글 운동, 국문학 연구, 학교 교육과 민중교육 등 역사의 현장에서 교육자로 살았던 그의 삶이 민족교육의 실천이었다. 그는 편향된 이념에 흔들리지 않았고, 변절하거나 지조를 잃지 않았고 후일 역사의 심판을 받지도 않았다.
    본 연구의 결과 예상되는 활용 방안은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까지 가람이 적극적으로 펼친 공교육과 민중계몽 교육의 실천에서 근대계몽기 선도적 교육 실천가로서의 그 의의를 가람 교육 사상 연구에 보다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여 가람 연구 수립의 토대로 활용한다.
    둘째, 그동안의 가람의 학문에 대한 전통 수호의 연구에만 한정된 연구에서 벗어나 중국의 양계초의 수용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 인식과 서구 문화의 수용, 근대적 문화사상, 애국 계몽사상 즉 계몽・교육 사상을 근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이라는 좀 더 확장된 새로운 시야와 안목을 넓힐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토대로 가람 연구 및 관심의 증대를 꾀할 수 있다.
    셋째, 본 연구 결과는 현대 한국학의 지형도에서 가람 이병기가 차지하는 교육사적 근대적 위상을 파악함으로써,
    근대적 발전의 주도 문학의 언어・형식면에서 가장 핵심인 문체의 혁신을 이루어낸 원동력을 발견하여 가람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파생 연구가 가능하다.
    넷째, 본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 가람의 교육사적 위치와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본 연구의 결과 특히 교육을 국가 생존의 전략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근대를 창출하고자 하는 양계초와 가람의 사상 고찰은 오늘의 동아시아 지역성을 고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동아시아 근대 담론의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될 필요가 제기된다. 이를 창조 작업에 활용함으로써 21세기 독자적인 한국학과 문화를 모색하는 계기를 확보할 수 있다.
    여섯째, 가람 학문에 대한 이해의 층위를 넓혀 일반 독자 및 연구자와의 소통을 극대화하고 대중화하여 지식과 상상력이 겸비된 문화 콘텐츠로 활용 가능하다.
  • 색인어
  • 가람 이병기(李秉岐), 양계초(梁啓超),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 교육 사상, 민중계몽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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