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러시아 종교철학의 르네상스시기에 가장 훌륭하고 대표적인 종교철학자 중 한 사람인 세르게이 불가꼬프(Сергей Булгаков)는 베르쟈예프와 비견될 만큼 사회적, 종교적, 철학과 미학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초기 저명한 경제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기반인 신칸 ...
20세기 초 러시아 종교철학의 르네상스시기에 가장 훌륭하고 대표적인 종교철학자 중 한 사람인 세르게이 불가꼬프(Сергей Булгаков)는 베르쟈예프와 비견될 만큼 사회적, 종교적, 철학과 미학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초기 저명한 경제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기반인 신칸트학파의 영향은 그의 저서인 『경제 철학』에서 철학과 신학의 관점에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이론을 기독교 신앙과 통합을 시도한 『기독교적 사회주의(Христианский социализм)』에도 철학사상가적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1923년 성직생활을 시작하여 사제로서의 살아간 시기에도 이어지며, 종교철학적 신념과 결합하여 그의 철학에 중요한 주제로 작용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관념론으로』의 “블라지미르 솔로비요프의 철학은 현대인식에 무엇을 주었는가?”라는 글에서는 보다 구체성을 띠는데, 솔로비요프의 과학과 철학과 신학의 완전무결한 기독교적 세계 인식이 폭넓은 진테제를 준다고 여겼다. 솔로비요프는 기독교가 정신의 내밀한 구석에만 남아있지 말고, 모든 문화를 포옹해야만 하고,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제기가 사회주의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완전히 동의하거나 합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가꼬프는 그 대안을 솔로비요프의 ‘전일성(Всееинство)’에서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이와 같이 철학적, 사상적으로 구분이 되는 시기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글들은 전향 이후의 그의 사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솔로비요프에게 영향을 받은 전일성과 소피아론(Софиология)의 이론은 후기로 갈수록 견고하고 고유한 사상적 체계를 지니게 된다. 이것은 불가꼬프의 후기 사상의 종교철학적 사유를 탐색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본 연구는 이 같은 그의 철학적 변화를 주시하면서, 전향의 전후로 나누어지는 철학적 연속성과 변화에 주목 한다. 초기부터 후기 저작까지 이어지는 종교와 사회사상의 합일이란 점에서 솔로비요프, 베르쟈예프, 플로렌스키 등의 종교 철학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들은 유물론과 관념론, 종교와 사회사상과의 합일을 위해 인간본성, 사랑, 정교(православие)를 기반으로 대안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불가꼬프의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솔로비요프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받아들이며 사상적 교점을 찾게 된다. 본 연구는 세르게이 불가꼬프의 사상적 변화의 과정이 자기 고백적이며, 종교철학적 관점으로 저술된 『저물지 않은 빛: 명상과 사변(Свет невечерний: Созерцания и умозрения)』에 주목한다. 이 책은 불가꼬프에게 영향을 준 플로렌스키의 『진리의 기둥과 확신(Столп и утверждение истины)』이라는 자기 성찰의 종교철학 논문과 유사한 목적에서 집필되었다.
솔로비요프에게서 받은 영향은 플로렌스키를 통해 직접적으로 불가꼬프에게 이어지게 되는데, 그 주요한 개념이 소피아론에 대한 것이다. 불가꼬프는 성 소피아(Св. София)를 신적인 것과 지상의 것이라는 이원론으로 제시한다. 솔로비요프에 의해 담론화된 소피아론은 소피아를 제4의 ‘위격(ипостась)’인 것처럼 그리스도와 다른 개성으로 다루고 있으나, 구체적인 범례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이점에서 불가꼬프의 소피아론은 솔로비요프의 소피아론 보다 구체적이며, 완성된 체계라고 평가받는다.
소피아론은 교리적인 신학과 철학 분야에서 주제적으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정통신학과 비교하여 소피아론은 엄격한 교리와 합리적인 논증을 하고자하는 러시아 철학의 구체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로스키는 소피아론을 러시아 종교 철학의 굉장히 특징적인 것이라 간주한다.
이와 같이 불가꼬프의 러시아 철학에서의 위치와 그가 상술한 소피아론의 의미를 상기해본 다면, 그의 종교철학 문제는 솔로비요프의 소피아론의 문제와 연속성을 지니며, 위격에 대한 문제, 그리고 ‘제4의 위격으로서의 소피아’의 논의에서 불가꼬프의 사유의 결과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 해결이 그 사고의 ‘전일성’의 체계적 완성도를 주며, 사제로서의 길을 선택하는데 논리적으로 주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불가꼬프의 총체적인 개념들의 합일은 어떤 점에서 종교적 교리의 영역만으로, 철학적인 접근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상징주의, 종교철학, 러시아 문화의 영역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러시아적 톡톡한 현상을 고려할 때 불가꼬프의 철학에 대해 정신문화사적인 관점의 연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