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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西厓 柳成龍의 家書 硏究 -『西厓全書』에 未收錄 된 자료를 중심으로-
A Study on Seoae Ryu Seong-ryong’s Family letters -Focus on Materials not included in the 『The Works of Seoae』-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2019S1A5B5A07090373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09월 01일 ~ 2020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최종호
연구수행기관 영남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西厓 柳成龍(1542~1607)은 退溪의 高弟로, 오랜 관료생활을 지내면서 영의정의 지위에 까지 이르렀고, 前古未曾有의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특히 30년 동안 조정에서 벼슬살이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그 이면에는 壬辰倭亂이라는 역사상 크나큰 外侵을 맞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픔을 겪음과 동시에 당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평탄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항상 병고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학자로서, 선각자로서 恒心을 잃지 않고 自足하려는 모습이『西厓全書』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西厓全書』에 수록되지 않은 ‘柳成龍 先祖筆帖’이 발굴되어 주목된다. 안동 하회 풍산류씨 충효당에 소장된 자료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관리하며 제공한 것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脫草한 127편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西厓 집안의 간찰이다.
    이재호가 역주한 『국역 서애전서』따르면, 『西厓全書』중에 수록된 書簡은 전부 264편인데, 새로 발굴된 것이 127편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양이 문집에 누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 家書는 가정 내의 서간이기 때문에 편집 방침에 따라 생략시켰는데, 본 자료도 그러한 이유로 제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자료에는 문집에 실려 있는 서간문과 달리 발신자의 이름과 날짜 및 수신 장소가 기록되어 있고, 手決이 부기되어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처럼 중요한 자료가 세상에 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다루지 않은 것은 원본인 초서와 비교 검토하여 번역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초서는 한 글자가 여러 글자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간찰류는 일정한 서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간찰 특유의 용어들을 숙지해야 하므로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점에서 필자는 앞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위탁받아 ‘갈암종택 재령이씨 간찰’ 1,547편과 ‘근암고택 전주류씨 간찰’ 300편을 해제한 바 있으므로, 이 연구를 수행할 적임자라고 생각된다.
    새롭게 발굴된 127편의 내용은 자녀들과 주고받은 글이 93편, 조카와 생질과 왕래한 글이 21편, 기타 13편으로 분류되는데, 자녀와의 편지 왕래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술한 바와 같이 家書의 내용은 대부분 집안 살림이나, 가내의 사적인 문제에 관련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목판본으로 문집을 간행 할 때는 그러한 부분이 수록된 내용은 모두 빼 버리고, 아들 조카 또는 손자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식의 교훈적 내용만 더러 수록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위의 자료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서애 집안의 여러 가지 은밀한 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공인으로서 알려진 서애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내적인 모습, 인간적인 면모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1차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새롭게 발굴된 서애의 家書를 연구함으로써 문집에는 노정되지 않았던 그의 내면세계와 가정사에 대해서 살피고자 한다. 나아가 간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선행연구를 보완하고 바로잡는 것이 본고의 목표이다.
  • 기대효과
  • 필자가 소개하려고 하는 자료는 안동 하회 풍산류씨 충효당에 소장된 내용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관리하며 제공한 것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脫草한 127편이다. 이들은 모두 書簡類인 家書이다. 그 내용이 대부분 집안 살림이나, 가내의 사적인 문제에 관련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 집안의 여러 가지 은밀한 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에 ‘서애 유성룡의 가서 연구’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한다.
    1) 새로운 자료에 대한 소개이다.
    과거의 한 인물을 고찰하는 데 있어 1차 자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논거가 없는 이야기는 한갓 소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자료의 발굴 및 소개는 연구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한 점에서 ‘柳成龍 先祖筆帖’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자료로서 새로운 연구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1차 친필본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
    2)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家書는 이미 잘 알려진 서애의 공적인 생활 이면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살림살이를 꼼꼼하게 챙기는 집안 가장, 한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엄하게 꾸지람을 건네는 아버지, 손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공부에 매진하라는 현실적인 할아버지, 아들이 뜻밖에 세상을 등지자 며느리의 거취를 근심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닮은 모습에 친근함을 준다. 또한 작자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료가 된다.
    3) 가내의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있다.
    집안 가정사를 타인에게 공공연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목판본으로 문집을 간행할 때는 그러한 부분이 수록된 내용은 모두 빼 버리고, 교훈적 내용만 더러 수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家書는 그러한 개인의 은밀한 가정사를 담고 있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서애 집안의 여러 가지 사정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4) 家書에 대한 자료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시킨다.
    지금까지 한문학 연구는 文集類를 주 자료로 삼아왔으며,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다수의 문집을 소개하고 번역하는 지대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에 어느 정도 유명한 인물이라면 거개가 소개되었다. 반면 家書는 상당부분 연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위탁받아 해제한 ‘갈암종택 재령이씨 간찰’ 1,547편과 ‘근암고택 전주류씨 간찰’ 300편에서 그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자료는 초서로 해독하기 어렵고, 상호간의 교류이므로 그 사이에 담겨진 속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초서는 한 글자가 다수의 글자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기초적인 한문 문리가 요구된다. 따라서 아직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家書 연구가 앞으로 검토해야할 귀중한 자료임을 인식시키고자 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柳成龍의 先祖筆帖’에 대한 연구이다. 새로 발굴된 것이 127편 중에 자녀와 조카에 대한 서신이 114편으로 압도적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중심으로 한 고찰을 ‘病苦에 대한 憂慮와 치료법 提示’, ‘讀書의 방법 소개와 獎勵’, ‘避難의 대처방안과 家庭事의 부탁’ 등 세 부류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病苦에 대한 憂慮와 치료법 提示
    서애의 삶에 있어서 病苦는 남다르다. 서애의 연보를 보면 헤아릴 수 없는 사직서를 올렸는데, 그 주된 이유는 병이었다. 임진왜란이라는 민족 최대의 外侵, 난후 당파로 인한 파직과 자녀 죽음의 목격은 건강한 사람이었을지라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애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日記體 형식의 연작시 「觀化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자녀의 병고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셋째 아들 袗에게 보낸 답서[61, 80, 89편]를 보면, 병고의 원인이 ‘傷心’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잠시 머물러 있으면서 병을 조섭할 것을 당부하였다. 서애의 자식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醫書에 등장하는 天南星의 약재를 소개하면서 치료를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는 그가 ‘「鍼經要訣序」’, ‘「醫學辨證指南序」’, ‘『鍼經要訣』’ 등 의술과 관련된 저술을 남긴 것과 깊이 관련된다.
    2) 讀書의 방법 소개와 獎勵
    앞 단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애의 자녀교육은 일반적으로 훌륭한 스승을 추천하여 수학하게 하는 것과 달랐다. 본인이 직접 독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이에 매진할 것을 권장하였다.
    서애는 세 자식에게 『맹자』 읽기를 독려했다. 덧붙여 “학문은 정밀히 생각하고 살펴 묻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하면서 『中庸 』의 博學, 審問, 愼思, 明辯, 篤行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또한 자신도「배움은 생각을 주로 함[學以思爲主]」’이란 글을 남겼다. 이러한 서애의 자녀 교육 방법은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던 데서 기인한다.『서애연보』에 의하면 그는 6세에 『大學』을, 8세에 『孟子』를 배웠고, 13세에 東學에서『中庸』과 『大學』을 講讀하였으며, 이러한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16세에 鄕試에 합격을 했다. 더욱이 19세에 관악산에 들어가『孟子』를 외운 것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이처럼 그는 경학 위주의 학문자세를 견지하며 자식들도 자신이 공부했던 과정을 거치며 그 속에서 그 답을 찾기를 바랐다.
    3) 避難의 대처방안과 家庭事의 부탁
    서애는 민족 최대의 外侵인 임진왜란을 선두 지휘하며 전쟁을 몸소 체험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저술, 국보 제132호『징비록』을 비롯하여 『진사록』과 『군문등록』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현된 우국충정의 소산이다. 국란을 극복하면서 가족과 주고받은 서신의 내용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임란 상황을 소개한 내용에서 당시 平陵察訪을 역임하고 있는 조카 袾에게 답장한 내용을 보면[40편], 서애는 문하생인 鄭經世(1563~1633)가 글만 읽은 白面書生으로 왜적에 대항하여 외로운 성을 지키려는 상황을 애석하게 여기며 돕고자 하지만, 軍糧을 이어서 공급하는 일이 어려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을 토로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은 1597년에 洪瑋(1559~1624)에게 회답한 글에서도 동일하게 기술되어 있다.
    家庭事에 있어서도 차남인 袸에 답한 편지[97편]에서 임진왜란 때에 고향에 있다가 의병을 일으킨 琴蘭秀(1530~1604)의 죽음을 애도하며, 40년 동안 사귄 오랜 친구를 간소하게 제사 지낼 수 없다고 탄식하였다. 또 “庶母가 쌀을 받고나서 자못 기뻐하고 있다.”는 내용에서 둘째 아들 袸이 그의 庶母를 위해 처가의 쌀을 전해준 사실을 알 수 있다. 庶母라는 신분적 위치에 대해 인식이 좋지 않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처가의 도움을 빌려 양식을 지원한 子孝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家書는 이러한 작자의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와 자식의 孝의 실천이 어떠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논문은 『西厓全書』에 수록되지 않은 柳成龍의 『先祖筆帖』에 주목하여 그 내용을 검토한 글이다. 『先祖筆帖』은 총 天·地·人 126편으로,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탈초한 바 있다. 家書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 내의 서간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목판본으로 문집을 간행 할 때는 수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점에서 이 자료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서애 집안의 여러 가지 은밀한 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공인으로서 알려진 서애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내적인 모습, 인간적인 면모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1차 자료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하겠다.
    그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자녀들의 병고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서는 서애 자신의 투병 과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학적 지식과 의서를 총동원하면서 자녀들의 병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서애가 『鍼經要訣』과 『醫學辨證指南』와 같은 의서를 남길 정도로 의학에 남다른 식견이 있었기에 가능한 처사였다. 둘째, ‘자녀들의 학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는 자녀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학업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였다. 서애는 자녀들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교육에 지나칠 정도로 집요함과 엄격함을 보였는데, 자신의 공부법을 기반으로 『四書』를 읽는 순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셋째, ‘피난 상황에 대한 대처와 가정사의 부탁’에서는 피난 상황에 임하여 아들과 대처 방안을 논하고, 임란의 총 통수권자라는 책무 속에서도 틈을 내어 집안 내의 여러 잡다한 일들을 돌보고 지시하였다. 이는 공자가 강조한 務本의 실천이며, 선각자의 남다른 면모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과 내면, 가정사에 대해서 보다 핍진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정치가, 문장가로서의 서애가 아닌 한 자녀의 아버지, 가장으로서의 서애를 조명함으로써 서애를 색다른 측면으로 구명하는 의의가 있다. 또한 한 인물을 탐구하는 데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지점까지 밝힌다는 점에서 간찰에 대한 자료적 가치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케 하는 계기라 되리라 생각된다.
  • 영문
  • This paper examined the contents by focusing on Ryu Seong-ryong’s Ancestors’s letter[先祖筆帖] which was not included in Complete Writings of Seoae. Ancestors’s letter is a total 126 pieces divided into with 天·地·人, which is owned by the Korean Studies Advancement Center and has been deciphered by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Because home letter is an extremely personal thing, it is often not included in the publication of a block book. In this regard, this material serves as an important clue to a more detailed grasp of the various covert circumstances of Seoae’s family. It is also worth studying in that it is not the image of Seo-ae, who is known as a public figure, but the primary source that gives a direct look into his inner self and human aspect.
    The contents were divided into three main sections. First, in ‘Active Response to Children’s Diseases’, Seoae showed his willingness to actively overcome his children’s illness by mobilizing all of her medical knowledge based on his own fighting process. This was possible because Seoae had such an unusual knowledge of medicine that he left such medical books as Chimkyeongyokyul[鍼經要訣] and Uyhakbyunjeungjinam[醫學辨證指南]. Second, in ‘A great interest in children’s studies’, he asked their children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reading and focus on their studies. Seo-ae showed persistence and strictness to the extent while he was concerned about children’s health. He also gave detailed instructions on the order of reading Four book[四書] based on his own study methods. Third, in ‘Responding to the evacuation situation and the request of family affairs,’ he discussed with his son how to deal with the situation of refuge, and took care of and commanded various chores in the family, even under the responsibility of being the commander-in-chief of the war. This is the practice of striving for the basis emphasized by Confucius, and it is an extraordinary aspect of the pioneer.
    Such discussions provide a more exhaustive approach to his life, inner side, and family matter, which has not been known until now, and it is meaningful to investigate Seoae in a different way by shedding light on Seoae as the father and the master of house, not as a politician and writer. It will also serve as an opportunity to reaffirm the importance of the material value of letter, given that it reveals an unknown and intimate point in exploring a pers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논문은 『西厓全書』에 수록되지 않은 柳成龍의 『先祖筆帖』에 주목하여 그 내용을 검토한 글이다. 『先祖筆帖』은 총 天·地·人 126편으로,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탈초한 바 있다. 家書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 내의 서간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목판본으로 문집을 간행 할 때는 수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점에서 이 자료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서애 집안의 여러 가지 은밀한 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공인으로서 알려진 서애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내적인 모습, 인간적인 면모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1차 자료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하겠다.
    그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자녀들의 병고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서는 서애 자신의 투병 과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학적 지식과 의서를 총동원하면서 자녀들의 병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서애가 『鍼經要訣』과 『醫學辨證指南』와 같은 의서를 남길 정도로 의학에 남다른 식견이 있었기에 가능한 처사였다. 둘째, ‘자녀들의 학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는 자녀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학업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였다. 서애는 자녀들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교육에 지나칠 정도로 집요함과 엄격함을 보였는데, 자신의 공부법을 기반으로 『四書』를 읽는 순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셋째, ‘피난 상황에 대한 대처와 가정사의 부탁’에서는 피난 상황에 임하여 아들과 대처 방안을 논하고, 임란의 총 통수권자라는 책무 속에서도 틈을 내어 집안 내의 여러 잡다한 일들을 돌보고 지시하였다. 이는 공자가 강조한 務本의 실천이며, 선각자의 남다른 면모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과 내면, 가정사에 대해서 보다 핍진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정치가, 문장가로서의 서애가 아닌 한 자녀의 아버지, 가장으로서의 서애를 조명함으로써 서애를 색다른 측면으로 구명하는 의의가 있다. 또한 한 인물을 탐구하는 데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지점까지 밝힌다는 점에서 간찰에 대한 자료적 가치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케 하는 계기라 되리라 생각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서애 유성룡에 대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주로 외면인 화려함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논의가 축적되었고, 그의 내면에 대한 고찰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 따라서 ‘서애 유성룡의 가서 연구’는 다음과 같은 기대를 지향한다.
    1) 간찰의 중요성을 인식시킨다.
    家書, 즉 간찰은 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 집안의 여러 가지 은밀한 사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므로, 인물 재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에 公刊된 문집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을 채워주고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학문적 기여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家書가 이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자료 수도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번역되거나 연구로 진행된 것은 상당히 미진한 실정이다. 더욱이 家書는 초서와 간찰의 투식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므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家書 연구는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현 상황에 박차를 가해줄 뿐만 아니라 전문가 인력 양성 차원에 있어서도 상당한 사회적 기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 간찰 속의 비밀 발견이다.
    간찰의 내용이 대부분 집안 살림이나, 가내의 사적인 문제에 관련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문집을 간행 할 때는 교훈적 내용만 더러 수록하였다. 그러나『西厓全書』에 수록되지 않은 家書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집안의 여러 가지 은밀한 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예컨대 전란 중 어려움에 처한 제자를 돕지 못해 애태우는 모습, 피난의 과정에서 자녀들에게 모든 문제를 형님 柳雲龍에게 자문하여 결정한 것, 자신의 탄핵중이라 집안 단속을 강화하고 자녀들의 서원출입을 금지한 사실 등은 家書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다.
    3) 작자의 내면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내의 사적인 문제나 치부는 숨기려함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므로 家書는 예로부터 문집의 수록에서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신 내용을 태울 것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公刊된 문집에서 드러나지 않은 작자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이보다 중요한 자료가 없다. 따라서 서애의 家書는 임란 과정의 고뇌나 가정사에 대한 고충, 자녀 건강에 대한 염려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세계를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1차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4) 서식을 통한 예절교육이다.
    간찰은 짧은 문구로 이루어졌으나 상대방의 심중을 거스를 수 없으므로 매우 정중하고 공경스러운 표현을 많이 쓴다. 내용의 전개에 있어서도 書頭, 候問, 自敍, 結尾 네 부분으로 정형화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또한 상대를 높이는 말로 ‘高明’, ‘左右’, ‘足下’ 등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이는 모두 상대를 배려하는 예절에서 기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이러한 간찰의 투식을 익히게 하여 현재 사회에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남발하여 화를 초래하는 것을 성찰하게 한다면 예절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색인어
  • 서애, 유성룡, 가서, 병고, 가정교육, 피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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