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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조선후기 일본의 주문 다도구의 양상 -『대마도종가문서(對馬島宗家文書)』를 중심으로-
Aspects of ordered tea utensils by Japan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focusing on ‘Tsusima Souke archive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2019S1A5B5A07093865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09월 01일 ~ 2020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조용란
연구수행기관 중앙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종가문서』를 통하여 대마도와 부산 왜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도구 교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종가문서』란 일본 대마도의 도주 종가(宗家)가 대마도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사료군을 말한다. 『종가문서』에 의하면, 조선시대 후기, 일본에서 다도구를 주문받아 우리나라에서 제작하여 전량을 일본으로 수출하였다는 상세한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구체적인 사례 연구는 미비한 상태이다.
    본 연구는 18세기 이후의 조선과 일본의 교류 관계를 다도구 주문이라는 측면에서 고찰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부산과 대마도를 중심으로 한 조선과 일본의 문물 교류 양상을 『종가문서』에 수록된 세부적인 기록을 토대로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고, 나아가 에도시대 고려다완 및 다도구 취향(好み)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대마도와 왜관의 다도구 무역에 관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1) 대마도와 종가문서에 관련된 연구에는 이훈(1998), 이즈미 조이치(泉澄一, 1980), 다니 아키라(谷晃, 2003)의 연구가 있고, 2) 부산 왜관에 관한 정책 및 운영, 교류에 관한 연구에는 김강일(2011), 정성일(2017), 장순순(2011), 허지은(2001) 등의 연구가 있다. 3) 도자교역에 관한 연구에는 이승민(2017), 방병선(2001), 4) 고려다완 및 주문다완에 관한 연구로 아카누마 다카(赤沼多佳, 1992), 이즈미 조이치(1979,1980,1992), 가타야마 마비(片山まび, 2018), 5) 사기장에 관련된 연구로는 방병선(2003), 이미숙(2008) 등의 연구가 있다.
    위에 제시한 선행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종래의 왜관이나 주문다완에 대한 연구는 정책 및 운영 중심에 관한 연구가 많고, 도자교역이나 사기장에 관해서는 조선쪽으로부터의 접근에 치중되어 있을 뿐이다. 왜관은 일본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곳이고, 주문다완 또한 일본으로부터의 주문이지만 정작 일본 측에서 어떻게 논의되고 흡수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대마도의 일본인 기록관 입장에서 기록한 『종가문서』를 통해 다도구 교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종가문서』는 조선과 일본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며, 특히 근세 한일관계의 실태를 밝히는 1급의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내용적으로 에도막부시대 대마번이 번정을 꾸려가는 과정의 기록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근세 조선과 일본의 통교 실태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보아야할 필수불가결한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종가문서』를 중심으로 다도구 교역에 초점을 맞춘 사람은 1980년대 초반의 이즈미 조이치의 연구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연구에서는 『종가문서』 중 지금까지 공개된 「분류기사대강(分類紀事大綱)」과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諸方御好之御焼物御注文榴)』, 『어다완소입목장(御茶碗焼入目帳)』 『신도소물어인판장(新渡焼物御印判帳)』을 중심으로 다도구 교역이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누구에 의해 어떠한 기물이 주문되었고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에 관계된 품목과 수량, 비용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위에 기술한 문서 중에서 특히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에는 주문자들의 상세한 주문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1718년 이후 선호되었던 취향(好み) 다도구를 살펴보는데 더없는 자료이다. 이 자료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으로 분류 중인 문헌으로 이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따라서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의 연구는 주문에 관한 다도구의 취향을 살펴보는데 의미있는 연구이며, 향후 이 분야의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동시에 현재까지 일본에 계승되고 있는 조선 다기의 유형을 규명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연구로 사료된다.
  • 기대효과
  • ▶ 학문적 사회적 기여도
    1) 임진왜란 이후 18세기까지의 조선과 일본 간의 교역 및 교류 내용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구체적인 주문의 품목 및 내역, 그리고 대마도와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다도구 교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제반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는 연구가 될 것이다.
    2) 『종가문서』는 한일간 5곳(한국은 국사편찬위원회, 일본은 국립국회도서관, 동경대학사료편찬소, 게이오대학도서관, 대마도역사민속자료관)에 나뉘어 정리 중에 있고, 자료에 관해서는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단편적으로만 인용되었을 뿐 실제적인 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본 연구는 근세 조·일간의 다도구에 관한 내용의 해석과 연구에 선행적인 연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3) 연구내용중 주문서와 견본 그림에 관한 연구로 당시 일본 유력자들이 선호했던 다도구의 규격화된 취향을 알아볼 수 있다. 다도구의 고노미는 현재에도 계승 유지되고 있으며, 다도구 상전(相傳)문화의 기틀을 찾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4) 『종가문서』 자료집 중에서 특히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에는 에도시대 다도구의 디자인, 크기, 색상 등에 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서 일본에 전세되고 있는 조선 다도구의 규격을 살펴보는데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 교육(강의)의 연관성
    1) 조선후기와 일본 에도시대의 관련 연구에 있어서 전문성으로 특화된 강의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교육 현장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조선의 기술과 흙에 일본의 디자인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다도구가 일본에서 고려다완이나 조선다기로 재탄생하고 존중받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 17세기부터 18세기의 부산과 대마도를 둘러싼 다도구 교역을 설명할 수 있다. 일본에 대한 조계(租界)지역이었던 왜관을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공생과 기미(羈糜),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데 귀중한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3) 일본 근세의 다이묘들 중에는 조선 기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조선에 주문을 한 자들이 있다.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를 통해 주문자들을 선별할 수 있고, 당시 조선에 번사로 파견되어 활동했던 인물들의 활동 상황도 살펴볼 수 있다.
    4) 조선과 일본의 다도구 교류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제작비용과 물품, 거래 대금에 관한 지불 형식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5) 다도에서 다도구를 분별하는데 있어서 「취향」을 알아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소양의 한 부분이다. 본 연구로 에도시대 다이묘 다인들에게 선호되었던 다도구 취향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주요한 교육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 후속연구와 연계 활용
    1) 한국의 가마와 일본의 가마에 대한 비교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① 먼저 조선사기장을 중심으로 한 일본 가마에 대한 연구이다. 다카토리야키(高取焼)의 핫산(八山), 하기야키(萩焼)의 이작광이나 이경은 조선인으로 일본에 뿌리를 내린 사기장이다. 또한 사가현(佐賀県) 우치노야마(内野山), 가고시마현(鹿児島県) 사쓰마(薩摩) 등도 우리 조선사기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이에 관해 비교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일본에서 만들어진 '구니야키(國燒)'와 조선 다기와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2) 조선후기 왜인 구청에 관계되는 기록들을 모아 놓은 책인 『왜인청구등록(倭人求請謄錄)』의 조사 연구에 비교 연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3) 에도 막부의 외인 유입 방지 정책의 일환으로 축조되었던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出島)와의 비교 연구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구체적인 연구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다도구 주문과 물량의 기록을 대마도 『종가문서』 중 「분류기사대강(分類紀事大綱)」과 『어다완소입목장(御茶碗焼入目帳)』 『신도소물고인판장(新渡焼物御印判帳)』을 자료로 하여 조사한다.
    「분류기사대강」은 주로 부산 왜관과 대마번청 간에 주고받은 서장이 중심을 이루며 조일간의 통교내용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그 중 26권 「다완조지사(茶碗竈之事)」에서는 구체적인 다완 주문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부산요의 가마는 1년에 6회, 단속적(断続的)으로 열렸고, 한번 가마가 열릴 때마다 700여개의 다완을 제작하였으므로 총 4200여 개의 다완이 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두모포와 초량의 왜관에서 다완을 제작했던 시기를 거의 70년으로 한다면 실로 방대한 다완이 부산요에서 생산되어 일본에 가지고 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물량의 내용은 『어다완소입목장』과 『신도소물고인판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다완소입목장』은 각종의 물품과 용도 및 비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목록장부이다. 1681년 4월 17일부터 다음해 5월 9일에 이르는 여러 경비명세서로 부산요에서 쓴 제반 비용, 예를 들어 조선사기장을 위한 술안주대금, 다완을 싸는 종이대금, 흙을 반입하는 인부에 대한 삯 등, 당시의 교역 상황을 짐작케하는 사항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도소물고인판장』은 종가의 창고에 있는 다완의 재고조사 장부이다. 이 문헌에는 대마도에서 부산요에 유파된 도공의 수장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 아래에 기종별 수량을 적고 있다. 위의 문헌들에서 살펴보면, 거의 2, 3십만 개의 고려다완이 일본에 들어온 점을 알 수가 있다.

    2. 주문서에 관한 연구
    주문서는 『종가문서』 중에서 대마도역사박물관 소장인 『어조물공(御誂物控)』과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인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의 두 문헌을 토대로 고찰하겠다. 주문서에 등장하는 기형, 주문자들과 주문서 내용의 변화, 문양과 유약의 종류 및 규격 등을 정리하여 당시 주문자들이 선호하던 디자인과 취향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어조물공』은 1701년부터 1705년까지의 주문서이다. 주로 일본의 각 지방 및 중앙관리들의 주문이 기록된 자료로 이것은 관리들의 주문 내용과 실상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여기에는 다완 뿐만 아니라, 꽃병 향로 물항아리 등 다양한 기물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이를 자료로 하여 본 연구에서는 그 중 가장 많은 물량을 차지하는 다완을 중심으로 고찰하겠다.
    2)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는 1718년 이후의 주문의 양상을 알 수 있는 문헌으로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이에 관한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이 문헌의 기재에 주목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일본 내 다이묘들의 주문서 이외에도 '조선도자주문(朝鮮燒注文)'이라는 내용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어조물공』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기물이 수록되어 있으며, 주문자들의 요구를 따로 정리하고 '선호하는 것'이라는 기록을 통하여 주문자의 기호나 취향을 살펴볼 수 있다. 꽃병 물항아리 다완 차이레(茶入) 향로 향합 등 다양한 기물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다도에서 다도구에 대한 문답을 할 때 통상 거론되는 다완과 차이레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3. 다도구 주문자와 조선인 사기장 및 대마도에서 파견된 일본인 번사(燔師)에 관한 인물 조사
    2에서 언급한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에는 주문의 세부 내용뿐만 아니라, 주문에 관계한 인물들에 대한 소개도 들어있다. 이를 자료로 하여 주문자인 일본의 중앙 관리나 다이묘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부산 왜관에서 활동한 조선인 사기장과 대마도에서 파견되어 온 감독관인 번사에 관해서도 고찰한다. 그들은 조선과 일본 교류에 있어서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도구 교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문자, 조선 사기장, 또 이를 감독하기 위해 대마도에서 파견된 번사에 대해 검토도 병행하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대마도종가문서』를 통하여 대마도와 부산 왜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도구 교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종가문서』는 대마도에서 파견된 일본인 기록관이 조선과 일본의 왕래에 관해 상세히 기록한 문서이며, 특히 근세 한일관계의 실태를 밝히는 제1급의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내용적으로 에도막부시대 대마번이 번정을 꾸려가는 과정의 기록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근세 조선과 일본의 통교 실태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보아야할 필수불가결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왜관이나 주문다완에 대한 연구는 정책 및 운영 중심에 관한 연구가 많고, 도자교역이나 사기장에 대해서는 조선쪽에서의 접근에 치중되어 있을 뿐이다. 왜관은 일본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곳이고, 주문다완 또한 일본의 주문이지만 일본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종가문서』 중에서 공개된 『분류기사대강(分類紀事大綱)』과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諸方御好之御焼物御注文榴)』 『어다완소입목장(御茶碗燒入目帳)』 『신도소물어인판장(新渡燒物御印判帳)』을 중심으로 다도구 교역이 어떠한 경로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또한 이에 관계된 품목과 수량, 비용까지 조사해보았다. 특히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에는 주문자들의 상세한 주문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1718년 이후 선호되었던 취향 다도구를 살펴보는데 더없는 자료이다.
    이에 본 연구는 조일 문물 교류 양상을 『종가문서』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고, 나아가 에도시대 고려다완 및 다도구의 취향(고노미)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18세기 이후의 조선과 일본의 교류 관계를 다도구 주문이라는 측면에서 고찰 규명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조선후기 일본과의 교역은 일본 측에서 조선에 필요 물품을 주문하고, 제작에 필요한 공간 및 물적 인적 자원은 조선에서 제공하였다. 대마도와 부산은 조선과 일본의 교역에 있어서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일본과의 교역은 구무(求貿)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조선에서 생산되거나 만든 완전한 형태의 물품을 가져갔으나, 부산요에서 다도구 제작할 경우는 대마도에서 견본 그림을 가져와 조선에서 제작하여 전량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러한 방식은 부산 왜관을 중심으로 70여 년간 끊임없이 행해졌으며 주문이 쇄도하였다.
    부산요는 1639년,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의 명에 의해 부산 왜관에 설치된 대마도 종가의 어용가마이다. 대마도에서 미야가와 도니(宮川道二)・오우라 린사이(大浦林斎)・우나바시 겐에쓰(船橋玄悦)・나카니와 모산(中庭茂山)・마쓰무라 야헤이타 등의 도공들을 파견했다. 이에미쓰가 밑그림을 그렸다고 일컬어지는 어본입학다완(御本立鶴茶碗)과 판사다완(判使茶碗) 등 다기와 도자기를 생산했다. 1717년에 가마가 폐쇄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대마도 종가에 보냈으며 종가에서는 이를 도쿠가와 장군가와 다이묘들에게 바쳤다.
    일본 권력자들의 명물다기에 대한 욕구는 다도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명물다기는 다도에 필요한 기물일 뿐만 아니라 권력과 소양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주문자들은 에도 막부와 깊은 관련이 있었으며 주로 다이묘를 비롯한 지배계층들이었다. 다이묘차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기물이 필요하게 되었고, 여기에 고려다완을 비롯한 조선다기는 다이묘들의 기호에 맞게 주문 제작이 되어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일본의 모든 주문을 총괄하여 담당한 곳이 바로 대마도번이다.
    이러한 주문다도구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도토, 사기장과 인부, 각종 물품 등은 조선에서 제공했다. 요청한 도토나 백토는 실로 엄청난 양이었고, 관련 부품의 빈번한 요청과 잘못된 서계 양식 등으로 적지 않은 폐단이 있었다.


    연구내용은 관련 문헌 기록을 중심으로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첫째, 다도구 주문 물량의 기록을 대마도 『종가문서』 중 『분류기사대강』과 『어다완소입목장』 『신도소물 어인판장』을 자료로 하여 조사하였다.
    『분류기사대강』은 주로 부산 왜관과 대마번청 간에 주고받은 서장이 중심을 이루며 조일간의 통교 내용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두모포와 초량의 왜관에서 다완을 제작했던 70년 동안 실로 방대한 다완이 부산요에서 생산되어 일본에 흘러들어간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물량의 내용은 『어다완소입목장』과 『신도소물 어인판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다완소입목장』은 각종 물품과 용도 및 비용의 목록 장부로 다양한 비목이 상세히 기록되어서 부산요의 현장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도소물 어인판장』은 1681년 종가의 창고에 있는 다완 재고조사 장부이다. 이 문헌에는 도공두(圖工頭)들의 이름과 기종별 수량이 적혀 있다.

    둘째, 주문서는 『종가문서』 중에서 대마도역사박물관 소장인 『어조물공(御誂物控)』과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인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의 두 도자기주문서를 토대로 고찰하였다. 주문서에 등장하는 기형, 주문자들과 주문서 내용의 변화, 문양과 유약의 종류 및 규격 등을 정리하여 당시에 선호하던 디자인과 취향에 대해 비교 고찰하였다.
    『어조물공』 1701년부터 1708년까지의 주문 기록이다. 이 문서는 부산요 후반기에 해당하며, 주로 일본의 지방 및 중앙 관리들의 주문으로 그 내용과 실상을 알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초창기에는 다완 위주의 주문이었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꽃병 향로 물항아리 풍로 등 다양한 기물을 주문하고 있다.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는 1718년 이후의 주문 양상을 알 수 있는 문헌이다. 『어조물공』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기물이 수록되어 있으며, 주문자들의 요구를 따로 ‘선호하는 것’이라고 기록하여 주문자의 기호나 취향을 잘 정리해 두었다.

    셋째,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에 기록된 주문자들인 막부와 다이묘, 승려, 호상, 어용화가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대마도에서 조선에 파견한 감독관인 번사(燔師), 도공두에 관해서도 고찰하였다. 그들은 조일 다도구 교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지만 기존의 연구에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본 연구는 이들에 대한 검토도 병행하였다.

    지금까지 본 연구에서 수행해 온 연구 내용 및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종가문서』중 다도구 주문서, 『어조물공』과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의 내용과 주문자들의 취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어본다완(御本茶碗)의 특성을 찾아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어본’이란 ‘御手本’이라는 뜻으로 그림본의 절형(切形)을 받아서 만든 도자기의 총칭이다. 『어조물공』에서는 어본다완의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데, 구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이다. 색깔이나 치수에 대해서도 주문자의 취향에 따라 상세히 주문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 특별히 주목했던 부산요의 어본다완에는 어떤 것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조사는 매우 유익한 정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왜관과 대마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와 부산요시대(1640-1720)의 주문자들에 대해 고찰했다. 부산요 시대의 작품은 주문품(御本焼物)과 기제품(既製品)으로 나눌 수 있으며, 기제품은 또 대마도 도공의 작품과 조선 도공의 작품으로 구분된다. 왜관을 둘러싼 제반 상황과 주문자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에도시대 조일관계의 교류양상을 알아낸 것이 큰 수확이라고 생각된다.

    2. 대마도에서 조선에 주문한 다도구의 생산을 위해 왜관에 파견한 도공두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1644년 일본인 사기장으로서 하시쿠라 주스케(橋倉忠助)가 처음으로 왜관에 파견된 후로 나카야마 이산(中山意三)・후나바시 겐에쓰(船橋玄悦)・아히루 모산(阿比留茂三)・마쓰무라 야헤이타(松村彌平太) 등이 도공두로서 파견되었다. 이들 중에는 반복해서 파견된 인물들로 있었고, 처음에는 주문품 제작을 하였지만, 점차 왜관의 운용과 관리에도 참여하게 된다.

    3. 일본인이 추구했던 미의식에 대해 고찰했다. 일본다도에서 차회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모임이 아니라, 미의식 구현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다완이 수용된 초기에는 조선의 일상기에서 선별되었기 때문에 강하지 않고 우연성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미를 느낄 수 있지만, 부산요에 주문한 시기는 개성이 있고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이 강조되는 특징이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에도 초기의 미의식에 관한 구체적인 실상을 알 수 있었기에 앞으로의 연구는 물론 일본문화 관련 수업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영문
  • This study seeks to investigate the exchange of tea utensils, which took place mainly in Tsushima and Busan Wakan(和館), through "Tsushima Soke Document(対馬宗家文書)"
     The "Soke Document" is a first-class document that clarifies the actual situation of modern Joseon-Japan relations recorded by a Japanese recorder dispatched from Tsushima. Most of the content is the record of Tsushima clan affairs during the Edo Shogunate era, so it is an important document to know the actual situation of exchanges between Joseon and Japan in the early modern times.
    Until now, research on Wakan and order-made bowls are mostly related to policy and management, and most of the approach about ceramics trade and potters were made by Joseon side. The Wakan is a place built in response to Japanese demands, and the order-made bowls are also ordered from Japan, so research on how they think in Japan has not yet reserched.
    This paper focuses on "Shobo Okonomino Oyakimono Gochumon-Ryu(諸方御好之御焼物御注文榴)", "Ochawan-yakiirimecho(御茶碗燒入目帳)" and "Sindo-yakimono Mijirushi Hancho(新渡燒物御印判帳)" in "The Soke Document" and tries to study which routes and which vessels were ordered and who made them.
    Also tried to find out the items, quantities, and costs related to them. In particular, since the orderer and the ordered items are recorded in detail in "Shobo Okonomino Oyakimono Gochumon-Ryu(諸方御好之御焼物御注文榴)", it can be said that it is the best material for examining the taste of tea utensils after 1718.
    Therefore, this study considers the aspect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Joseon and Japan based on the record of "Soke Document" and the taste of Koryo tea bowls and tea utensils during the Edo period. After the 18th century,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consider and master the exchang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Japan from the aspect of ordering tea utensils.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trade with Japan demanded goods from the Japanese side to Joseon, and Joseon provided the space, physical and human support necessary for production. This situation took place in the limited areas of Tsushima and Busan, and became an important stage for Joseon-Japan trade.
    In general, Japan imported complete products made in Joseon, meanwhile when making tea utensils in the Busan kiln, a sample picture was sent directly from Tsushima and the production was made in the Busan Wakan.
    Joseon made an order by making full use of soil, firewood, and potters, and provided all of them to Japan. Like this formation, orders and supply method continued for about 70 years, mainly supplied from the Busan Wakan.
    The Busan kiln is a kiln used by the Tsushima sect family, which was set up in the Busan Wakan built in 1639 by Tokugawa Iemitsu. Potters such as Michiji Miyagawa, Rinsai Oura, Genetsu Funabashi, Mosan Nakaniwa, and Yaheita Matsumura were dispatched from Tsushima to produce ceramics such as the Gohon Tatitsuru tea bowl that Iemitsu drew a sketch.
    In 1717, Joseon made numerous works and sent them to the Soke until the kiln was closed, which also dedicated them to the shogunate and the daimyo. It was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tea ceremony that Japanese powers sought the specialty tea utensils, and the specialty tea utensils are not only tea utensils, but also a symbol of power and background. At that time, Japanese orderers were the rulers of the daimyo who were deeply involved with the Edo Shogunate.
    A decoration with a dignity suitable for the style of daimyo tea was needed, and Joseon tea ware was ordered according to the taste of the daimyo and became a very popular item. The Tsushima feudal clan was in charge of all orders in Japan.

    This study will consider three aspects, focusing on the records of related literature.

    1. Investigate the record of the quantity of tea utensils ordered in the "Soke Document", using the "Bunruikizitaiko(分類紀事大綱)", "Ochawan-yakiirimecho(御茶碗燒入目帳)", and "Sindo-yakimono Mijirushi Hancho(新渡燒物御印判帳)" as materials.
    The "Bunruikizitaiko(分類紀事大綱)" covers most of the communic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mainly in the letter between the Busan Wakan and the Tsushima Clan Office. It can be seen that a huge number of bowls were produced from the kiln at the Busan Wakan of Dumopo(豆毛浦) and Choryang(草粱), and brought into Japan.
    The specific contents of the quantity related to this were considered mainly from the records in the "Ochawan-yakiirimecho(御茶碗燒入目帳)" and the "Sindo-yakimono Mijirushi Hancho(新渡燒物御印判帳)". The "Ochawan-yakiirimecho(御茶碗燒入目帳)" is a list of various items, uses, and costs, and various cost items are recorded in detail, and we can see the scene of the Busan kiln. And, in 1681, "Sindo-yakimono Mijirushi Hancho(新渡燒物御印判帳)" is an inventory survey book of tea bowls in the warehouse of Soke. In addition, the number of swordsmen dispatched from Tsushima to Busan kiln and the quantity by type are also recorded.

    2. The order form will be considered in the "Soke Documents", focusing on the "0aturaemonohikae(御誂物控)" which was held in "Tsushima History Museum's" and the "Shobo Okonomino Oyakimono Gochumon-Ryu(諸方御好之御焼物御注文榴)" which was held in Korean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s.
    I organized the shapes that appear in the purchase order, the changes in the orderers and the ordered items, the types and standards of the patterns and glazes, and compared and considered the preferred designs and tastes in each document.
    "Oaturaemonohikae(御誂物控)" is a book record from 1701 to 1708. This document is in the latter half of the Busan kiln, and we can see the contents and the actual situation by the order from the Japanese region and central authorities. At first, they mainly ordered bowls, but gradually they ordered various items such as flower bowls, incense burners, water fingers, and wind furnaces.
    I could see the aspect of ordering after 1718 in the literature of "Shobo Okonomino Oyakimono Gochumon-Ryu(諸方御好之御焼物御注文榴)". large number of items are recorded from "Oaturaemonohikae(御誂物控)", and the requests of the orderers are recorded separately, and the tastes and tastes of the orderers are organized in detail.

    3. I also investigated the orderers, shogunate and daimyo, priests, wealthy merchants, and painters recorded in "Shobo Okonomino Oyakimono Gochumon-Ryu(諸方御好之御焼物御注文榴)", and considered the clan (pottery head) dispatched from Tsushima.
    They are important figures in the trade of tea utensils, in the meantime, they are not often mentioned in existing studies. This study also extended to them.


    The contents and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1. I considered the contents of the tea utensils order form, which is the subject of this research, "Oaturaemonohikae(御誂物控)" and "Shobo Okonomino Oyakimono Gochumon-Ryu(諸方御好之御焼物御注文榴)", the tastes of the orderers, and the characteristics of "Gohon-chawan(御本茶碗)".
    "Gohon(御本)" means "model" and is a general term for pottery made by receiving a cut shape of a picture book. In the "Oaturaemonohikae(御誂物控)", the bowl is specifically ordered, and the colors and dimensions are explained in detail according to the taste of the orderer. In this study, it can be said that the investigation of the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Gohon tea bowl, which we paid special attention to, is very useful information.
    I also investigated the situation related to the Busan Wakan and Tsushima and the orderers of the Busan kiln era (1640-1720). The works of the Busan kiln era are divided into the main pottery and the ready-made products, and the ready-made products can be divided into the works of Tsushima potters and the works of Korean potters. It can be said that it was a great harvest to understand the exchange aspect of Joseon-Japan relations during the Edo period through various situations related to the Busan Wakan and consideration of the orderers.

    2. I considered the potters dispatched to Busan Wakan to produce custom tea utensils from Tsushima. After Tadashi Hashikura was dispatched to the Busan Wakan for the first time as a Japanese potter in 1644, Yoshizo Nakayama, Genetsu Funabashi, Shigezo Abiru, Yahei Matsumura, etc. were dispatched as head potters. Some of them were repeatedly dispatched. At first, they made order-made items with Korean potters, but gradually they became in charge of the operation and management of the Busan Wakan.

    3. I considered the aesthetic sense pursued by the Japanese. In the Japanese tea ceremony, the tea ceremony is not just a place to drink tea, but a place to embody a sense of beauty. In the early days when the Koryo tea bowl was accepted, it was a bowl selected from Korean as a usual utensils, so it was not strong and had a natural beauty, but when it was ordered from the Busan kiln, it had individuality and various forms. There are features that emphasize the design. I hope that the interesting aesthetic sense of the early Edo period will be useful for future research and lecture of Japanese cultur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대마도종가문서』를 통하여 대마도와 부산 왜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도구 교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종가문서』는 대마도에서 파견된 왜관 주재 일본인 기록관이 조선과 일본의 왕래에 관해 상세히 기록한 문서이며, 내용적으로 에도막부시대 대마번이 번정을 꾸려가는 과정의 기록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근세 조선과 일본의 통교 실태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보아야할 필수불가결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조일 문물 교류 양상을 『종가문서』에 수록된 세부적인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고, 나아가 에도시대 고려다완 및 다도구의 취향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18세기 이후의 조선과 일본의 교류 관계를 다도구 주문이라는 측면에서 고찰 규명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조선후기 일본과의 교역은 일본 측에서 조선에 필요 물품에 대해 주문하였고, 제작에 필요한 공간 및 물적 인적 자원은 조선에서 제공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대마도와 부산이라는 한정된 구역에서 이루어졌고, 조선과 일본 간의 교역에 있어서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일본과의 교역은 구무(求貿)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조선에서 생산되거나 만들어진 완전한 형태의 물품을 가져갔으나, 부산요에서 다도구 제작할 경우는 대마도에서 직접 견본 그림을 가져와 제작에 필요한 조선의 흙과 땔감, 인력 등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만들어서 전량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러한 방식은 부산 왜관을 중심으로 70여 년간 끊임없이 행해졌으며 주문이 쇄도하였다.
    부산요는 1639년,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명에 의해 부산 왜관에 설치된 대마도 종가의 어용가마이다. 1717년에 가마를 폐쇄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대마도 종가에 보냈으며 종가에서는 이를 도쿠가와 장군가와 다이묘들에게 바쳤다.
    일본의 지배층들이나 권력자들의 명물다기에 대한 욕구는 다도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명물다기는 다도를 하는데 필요한 기물일 뿐만 아니라 권력과 소양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주문자들은 에도 막부와 깊은 관련이 있었고 주로 다이묘를 비롯한 지배계층들이었다. 다이묘차의 양식에 맞는 품격 있는 장식이 필요하게 되었고, 여기에 조선다기는 다이묘들의 기호에 맞게 주문 제작이 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일본의 모든 주문을 총괄하여 담당한 곳이 바로 대마도번이다.
    연구내용은 관련 문헌 기록을 중심으로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1. 다도구 주문 물량의 기록을 대마도 『종가문서』 중 『분류기사대강』과 『어다완소입목장』 『신도소물 어인판장』을 자료로 하여 조사하였다. 『분류기사대강』은 주로 부산 왜관과 대마번청 간에 주고받은 서장이 중심을 이루며 조일간의 통교 내용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물량의 내용은 『어다완소입목장』과 『신도소물 어인판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종가문서』 중에서 대마도역사박물관 소장인 『어조물공』과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인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의 두 도자기주문서를 토대로 고찰하였다. 주문서에 등장하는 기형, 주문자들과 주문서 내용의 변화, 문양과 유약의 종류 및 규격 등을 정리하여 당시에 선호하던 디자인과 취향에 대해서 비교 고찰하였다. 『어조물공』은 1701년부터 1708년까지의 어본(御本) 및 주문 기록이고,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는 1718년 이후의 주문 양상을 알 수 있는 문헌이다.
    3.,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에 기록된 주문자들인 막부와 다이묘, 승려, 호상, 어용화가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대마도에서 파견된 조선 사기장의 감독관인 번사, 도공두에 관해서도 고찰하였다.

    지금까지 본 연구에서 수행해 온 연구 내용 및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본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주문서, 『어조물공』과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의 내용과 주문자들의 취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어본다완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찾아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그리고 왜관과 대마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와 부산요시대(1640-1720)의 주문자들에 대해 고찰했다.
    2. 대마도에서 조선에 주문한 다도구의 생산을 위해 왜관에 파견한 도공두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이들은 처음에는 주문품 제작을 위해 파견되었지만, 점차 왜관의 운용과 관리에도 참여하게 된다.
    3. 일본인이 추구했던 미의식에 대해 고찰했다. 일본다도에서 차회는 미의식 구현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요에 주문한 시기는 개성이 있고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이 특별히 강조되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에서는 다도구주문서인 『어조물공』과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의 기록을 분석하고, 당시에 일본 유력자들이 부산 왜관에 주문했던 내용에 대해 조사하여 어떠한 정황이 있었는지에 대해 고찰해 왔다. 그 결과 주문서에는 다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물이 주문되었고, 문양과 치수에 관한 부분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주문다완은 제작자만 조선일 뿐 일본다완이라는 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연구라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무명의 조선 도공을 관리하던 일본의 도공두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였다. 대마도에서 왜관에서의 주문품 제작을 위해 파견되었지만, 점차 왜관의 전체적인 운용 및 관리에도 참여하게 된 도공두에 대해 탐구하게 된 것 또한 본 연구의 독특성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에도시대의 다이묘차와 에도막부와 대마도, 그리고 대마도와 부산 왜관과의 연결이라는 독특한 역사적 지리적 상황에 입각한 연구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다도는 물론 일본 문화 및 일본인의 미의식에 이르는 광범위한 연구를 통합적으로 이루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현 단계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앞으로 더욱 발전될 것으로 기대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일본다도에 수용된 주문다완에 대한 출처와 유래를 명확히 파악함으로써 객관적이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의 미의식이 일본에 전해져 존중받고 또 새롭게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과정을 파악하여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에도시대의 막부와 다이묘들의 취향을 규명하여 다이묘차의 특징을 보다 체계적으로 소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의 일본다도에 관한 연구는 전국시대의 와비차에 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본 연구로 인하여 에도초기의 다이묘차와 취향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어조물공』과 『제방어호지어소물어주문류』를 근거로 한 주문다완의 유통과정을 통해 당시 한일간 교류의 구체적인 실상을 탐구할 수 있다. 현재 당시에 왜관을 배경으로 활약한 인물을 분석하기 위해 살펴보고 있다.
    다완을 비롯하여 여러 다도구 및 기물에 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특성을 통해 다도와 기물 디자인 등의 연관성을 통합한다면 또 다른 분야의 학문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후속연구와의 연계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어본다완 중, 조선통신사의 통역관들이 일본에 갈 때 가지고 들어간 ‘판사다완’ 등의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면밀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았다.
    ⑥ 이상의 본 연구의 결과는 에도시대 및 그 이후의 일본다도연구에 대한 선행연구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본 연구에서 고찰된 내용을 중심으로 확장되어 나아간다면 새로운 시점에서의 다도미술 연구에 대한 시도가 되리라 기대한다.

    이상과 같은 연구결과를 통해 구체적으로 체계화시킨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교육의 장을 만들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관련 연구에 있어서 전문성으로 특화된 강의 자료로 교육현장에 활용할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를 통해 한일양국의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조선에서 탄생하여 일본에서 큰 역할을 감당했다는 배경을 지닌 주문다완을 통해 양국의 역사를 재조명한다면 많은 시각을 제공하여 학습자에게 흥미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다도문화의 이론뿐만 아니라, 각 시대별 유파별 차이와 특징을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성과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대마도종가문서』와 다도구 주문서에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이론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의 조선과 일본 간 교역 및 교류 내용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주문의 품목 및 내역, 그리고 대마도와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다도구 교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제반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는 연구가 될 것이다. 『종가문서』의 고찰은 에도시대 다도구의 디자인, 크기, 색상 등에 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서 일본에 전세되고 있는 조선 다도구의 규격을 살펴보는데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준비해 온 본 연구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후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한다.
  • 색인어
  • 대마도종가문서, 일본 주문 도자기, 부산요, 왜관, 고혼다완, 일본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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