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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의 「발 이야기」 속 안데르센 동화 다시쓰기: 여성 (신)발의 상징을 둘러싼 저항의 글쓰기
Rewriting Andersen’s Fairy Tales in “Histoire du pied” by Le Clézio: Rebellious Writing about the Symboles of Feminine Foot(wear)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109583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12월 01일 ~ 2020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오보배
연구수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인간의 ‘발’과 그 존재 이유를 연결짓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리스 신화의 유한자로서 인간의 한계를 상징하는 아킬레우스와 ‘부은 발pied enflé’을 가진 자, 오이디푸스는 대표적인 예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스핑크스의 질문은 인간이 “이동 방식, 발걸음으로 정의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J. Bénichou 외, 2002). 발과 신발의 모티프는 17~19세기 서구의 수많은 동화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페로의 『장화 신은 고양이』,『신데렐라』를 비롯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빨간 구두』, 『빵을 밟은 소녀』등에서 발과 신발은 중요한 상징을 갖고 등장한다.
    슬프면서도 매혹적이고 현대적 관점에서는 불쾌와 의문을 자아내기도 하는 옛 신화와 우화들은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1952; 『와트』, 1953), 유르스나르(『인어공주』, 1942), 르 클레지오 (「발 이야기」, 2011)등 많은 20세기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다시쓰기réécriture’가 아니어도 ‘발’과 ‘신발’이 결정적 상징으로 등장하는 일은 여러 작가에게서 관찰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신발 끈’은 뒤늦은 애도를 부르는 매개물이고, 뒤라스의 『연인』(1984)에서 딸에게 “속이 다 비치는 원피스와 굽 높은 구두”를 건네는 어머니는 모순된 욕망을 드러내며, 르 클레지오의 『오니샤』(1991)에서 니제르 강의 난파선 속으로 들어가며 “네 발quatre pattes”로 기는 주인공은 상징적인 자세로 자연의 질서에 편입된다.
    시대를 초월한 많은 창작자들의 관심을 끌어온 모티프인 만큼 ‘발’과 ‘신발’은 시대 분위기와 가치관,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반영하는 복합적 상징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법 한데 평단은 이를 상당히 제한된 의미로만 정리해온 경향이 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절편음란증’에 관한 그의 에세이(1927)는 20세기 내내 ‘발’, 특히 ‘여성의 발’을 둘러싼 여러 담론의 권위적 토대가 되어주었다. 근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무의식’의 개념을 정립하고 비밀에 쌓여있던 인간의 욕망을 다른 차원에서 들여다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공적은 분명하지만 그의 철학에 “반여성주의적 색채가 농후”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연효숙, 2006), 욕망과 성 도착 이론에 관해서도 푸코, 들뢰즈와 가타리의 유의미한 비판이 있었기에 (M. Foucault, 1926; G. Deleuze et al., 1972) 포스트모던 담론 안에서 그의 주장이 갖는 한계점도 분명하다 하겠다. 더욱이 20세기를 지나며 대중문화산업이 ‘발-페티시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결과 근 백 년 전에 세워진 그의 ‘가설’을 입증하는 사례가 전혀 드물지 않게 되었으니, 창작, 수용, 이론화를 거치며 발을 둘러싼 상징성이 상당히 고착된 문제도 있다. 이는 물론 여성의 주체성을 부인하고 신체를 물화하며 외부 시선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지난 시대의 오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오랜 족쇄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 또한 어느 때보다 높아져있다.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에 맨발로 등장한 줄리아 로버츠의 모습은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여배우는 오늘도』(2017)의 감독 겸 주연이었던 문소리는 포스터 속에서 하이힐을 신은 채 육상 경기장 트랙 위에 서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직장 내 복장규정으로 하이힐을 강요하는 사회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Kutoo라는 해시태그 운동도 벌이고 있다. 우리 연구는 이 새로운 흐름 안에서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르 클레지오의 단편집 『발 이야기 그리고 또다른 상상』(2011)의 표제작 「발 이야기」를 대상으로 한다. 노벨상 수상 후 출간된 첫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책은 수록된 아홉 단편 모두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용기와 저항을 그려낸 점에서 다분히 여성주의적 색채를 띤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발’에 집중한 이유로 작가는 “항상 구두 속에 숨겨져 있고, 우리 몸에서 가장 천대받는 부위”라는 점을 드는데 요컨대 그에게 여성의 발은 이중의 소수자성이다. 이렇듯 출발부터 ‘프로이트적 발’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소설은 ‘유진’이라는 20대 여성 혹은 그의 발을 주인공으로 현대 사회를 “바닥 표면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묘사해나간다 (F. Dumontet). 일견 미숙한 청춘의 연애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무거운 이슈들을 함께 다루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유진의 발과 현대 젊은 여성의 실존문제가 엮이는 양상을 살피고자 한다. 또한 틀에 박힌 상징성의 전복을 꾀하는 문학적 전략으로 ‘다시쓰기’를 선택한 작가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와 『인어공주』를 재창조하는 방식에 집중하여 상호텍스트성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 기대효과
  • 본 연구의 기대효과로는 네 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이 연구가 강의에 활용된다면 오늘날 한국의 20대들의 뜨거운 화두이자 때로는 첨예한 갈등의 원인이 되는 젠더 문제를 문학을 통해 새롭게 사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미숙한 청춘의 연애, 순수한 설렘과 열정만큼이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인물들의 모습,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어느 틈에 달라진 상대의 태도에 당황하는 천진함에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겠고, 혼전임신, 가스라이팅, 일상 속 성희롱, 자발성이 불분명해진 꾸밈에의 욕망, 노동 현장의 복식 규정 등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거나 이제 곧 사회로 나가 겪게 될 갈등 상황을 간접 경험해보면서 보다 진보적이고 젠더 평등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해결책을 미리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전술한 대로 우리 논문은 국내에서 거의 전무한 르 클레지오의 단편 연구라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그의 문학세계에서 단편소설을 포함한 ‘짧은 텍스트’ 장르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는데 이는 2008년 이래 매년 발간되는 르 클레지오 연구지, 『카이에 르 클레지오Les Cahiers J.-M.G. Le Clézio』의 2호(2009)가 “우화, 단편, 로망스”라는 주제로 그의 짧은 텍스트들에 할애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출간된 단편집만도 일곱 권에 이르는 상황에서 국내 연구자로는 유일하게 르 클레지오의 단편을 다룬 김성(2018)은 “단편들이야말로 그만이 갖고 있는 비밀한 메시지를 한눈에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축약도”와 같다며 그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셋째, 본 연구는 한국과 르 클레지오의 인연을 문학적으로 추적하는 첫걸음으로서도 의의가 있다.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인 그의 작품 중에서는 제주도의 해녀 마을을 배경으로 한 『폭풍우 Temp̂̂ete, Deux novella』(2015)와 서울의 여러 풍경을 담은 『빛나, 서울 하늘 아래 Bitna, sous le ciel de Séoul』(2017)가 한국을 다룬 최초의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발 이야기 그리고 또다른 상상』은 텍스트의 상당 부분이 그가 이화여대 교환교수로 있던 시절 한국에서 쓰인 것으로 작품 곳곳에서 그 흔적들이 발견된다. 본격적으로 한국을 등장시키게 될 두 소설의 ‘예비 작품’으로서 「발 이야기」에 대한 연구는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미리 엿볼 기회가 될 것이다.
    넷째, 전술한 대로 현대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신발이나 발을 주제로 도전과 성장, 자유로운 삶에의 의지를 표현하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 『캡틴 마블』(2019)의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 분)가 넘어지고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는 장면의 연속은 전 세계적 관객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또한 최근 세계무대에서 이례적인 관심을 받는 케이팝에서도 ‘발’과 여성 해방의 연관성을 직시한 서사는 빠르게 늘고 있어 f(x)의 <스텝>, 레드벨벳의 <Cool world>, 아이유의 <분홍신>, CLC의 <To the sky>, 제시카의 <My life style>, 핫펠트의 <새 신발>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종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상기의 문화 콘텐츠들이 본 연구를 시작으로 하나의 담론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조심스레 가져볼 수 있겠다. 들뢰즈식 유목주의nomadologie를 꿈꾸며 매끄러운 공간espace lisse 위로 발을 내딛는 새로운 여성상을 논하는 21세기적 문화 담론을 말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안데르센의 두 여성 인물 『빨간 구두』의 카렌과 『인어공주』의 막내 공주를 「발 이야기」의 주인공 유진의 '원형'으로 상정하고 이들이 르 클레지오의 상상력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비교하며 그가 제시하는 미래의 여성상을 구체적으로 포착하고자 한다. 방법론으로 상호텍스트성 담론에 기대고 상징적 의미 해석을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이를 비판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 이론을 참조하게 될 것이다. 르 클레지오 문학의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토대를 이루는 ‘에코 페미니즘’(M. Mies et al., 2000)과 ‘서발턴’ 개념(G. C. Spivak, 2013)도 이 연구의 주요 논점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상호텍스트적 글쓰기는 20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 프랑스 작가들에게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주된 문학적 시도의 하나다. 바흐친의 대화주의 이론의 영향을 받아 후기 구조주의 담론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 개념은 토도로프에 의해 발전되었고, 크리스테바에 의해 처음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용어로 명명된다 (박선아, 2012). 그 후 콩파뇽, 주네트, 리파테르 등 1970~8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비평가들의 지속적 연구가 이 개념의 이론화에 기여한다. 기존 문학이 저자auteur의 천재적 영감과 그로부터 탄생한 작품oeuvre의 독창성에 토대를 둔 신성한 권위의 세계로 이해됐다면 상호텍스트성 담론이 전제하는 문학의 존재 양식은 다른 텍스트들과의 지속적 대화, 모방, 패러디, 변형과 이식이 다방향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창조와 생성으로 설명된다. 씨실과 날실이 상호 교차되는 직물texture과도 같은 것이 텍스트texte의 창작 원리요 써두었던 문장이 흐릿해지면 그 자리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던 고대인들의 양피지 글쓰기가 포스트모던 시대 ‘상호텍스트적 문학’의 본질이다.
    수필집 『물질적 도취』(1967)에서 “모든 문학은 다른 문학의 모방일 뿐”이라고 단언하는 르 클레지오의 존재 양식도 상호텍스트성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실제 창작에서도 그는 다양한 문화권의 오래된 텍스트들을 ‘다시 쓰며' 문학의 원천을 탐색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다시 쓰기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미시적인 부분에서 치밀하게 진행되며 작품 안팎의 복합적 층위를 넘나들기 때문에 면밀한 독서와 종합적 자료조사가 없이는 모세혈관처럼 퍼진 상호텍스트성의 지도와 그 함의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에 우리는 전술한 하나의 이론에 구애받지 않고 주요 상호텍스트성 이론의 핵심 용어들을 총체적으로 적용한 광의의 ‘다시 쓰기’ 담론에 기대어 르 클레지오의 「발 이야기」 안에서 안데르센의 두 동화가 어떻게 차용되는지, 해당 텍스트의 내외적 요소들을 참조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 전반부에서는 유진이 두 동화 속 인물들과 갖는 공통점을 (신)발과 걸음걸이, 그것이 표현하는 욕망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인어공주가 마녀로부터 얻은 두 발로 걸으며 느끼는 고통은 유진이 ‘여성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겪는 현대 사회의 소리 없는 억압과 폭력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여성성은 사랑하는 남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쓰인다. 왕자를 위해 목소리를 포기한 인어공주는 맹목적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남자친구 사뮈엘과의 불균형한 연애 관계에 매달리는 유진은 속내를 감춘 채 일방적으로 희생한다. 여성이자 이방인인 인어와 보호자 없이 홀로 자란 혼혈 청소년으로서의 유진, 이 두 인물의 ‘목소리 없음’은 서발턴 계급의 ‘말할 수 없음’과 이어진다 (G. C. Spivak, 2013). 그런가 하면 하이힐과 춤을 좋아하는 유진은 빨간 구두를 욕망한 카렌의 화신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달리고 그로 인해 위험에 처한다는 점에서 동화 속 인물과 운명을 같이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연구의 후반부에서는 소설과 동화가 달라지는 전복의 지점들을 다룬다. 사랑에 실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내린 인어공주와 달리 유진은 죽음의 매혹,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않은” 두 발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환상에서 깨어난 유진은 자신을 가로막던 금기와 경계선을 두 발로 넘어서며 여자 친구들과의 우정을 되찾고 자신과도 화해하는 등 주체성을 회복하는데 이는 들뢰즈적 의미의 탈영토화이자 ‘여성-되기’(Deleuze, 1980)의 구현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사뮈엘의 자아가 프로이트의 ‘억압된 욕망’ 관점에서 설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에 저항하고 종국에는 그마저 바꿔놓는 유진은 푸코적 의미의 “생산되는 욕망”(Foucault, 1926) 혹은 들뢰즈가 주장하는 대로의 “혁명적 욕망”(Deleuze, 1972)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우리 연구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이자 현대 프랑스 문단의 거장으로 불리는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M.G. Le Clézio의 단편집 『발 이야기 그리고 또다른 상상Histoire du pied et autres fantaisies』(2011)의 표제작 「발 이야기」가 안데르센의 두 동화 『인어공주』(1837)와 『빨간 구두』(1845)를 문학적으로 차용한 작품이라는 가설을 갖고, 세 작품 속 여성 인물들의 발과 신발의 이미지가 어떠한 상징성을 갖는지, 그 유사성과 차이점을 살펴 르 클레지오가 안데르센 다시 쓰기라는 창작 전략을 통해 드러내는 현대 여성의 주체성과 실존 문제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먼저, 세 작품에서 여성의 타고난 발은 공통적으로 이들의 낮은 사회적 계급을 상징한다. 카렌의 맨발(혹은 겨울에 나막신을 신은 발), 인어공주의 꼬리(발과 다리의 부재), 유진의 평발이 보여주는 것은 가난, 보호자 없는 미성년, 이방인, 차이를 존중받지 못하고 대상화되며 억압받는 신체이다.
    또한 이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발 혹은 신발과 관련한 욕망을 품고 어떤 선택을 내리면서 자신들의 계급을 벗어나려 시도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카렌은 분수에도 맞지 않고 교회법에도 어긋나는 빨간 구두를 욕망하고, 인어공주는 왕자의 곁에 인간으로 서고자 다리를 갖고 싶어 한다. 「발 이야기」에서 유진은 하이힐을 신으며 우쭐한 기분에 빠지는가 하면 자신의 못생긴 발은 싫어하면서 남자친구의 커다란 발은 흠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비추어보자면 이들의 욕망은 남근이 결핍된 존재로서의 여성이 그 대체물을 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이들의 시도는 실패한다. 천상(신)-지상(인간)-지하(바다, 인어, 마녀)의 세 층위를 상정하고, 지상(인간) 세계 안에서도 귀족(부유)과 평민(가난) 계급을 엄격히 구분해둔 안데르센의 ‘수직적 세계’에서 카렌과 인어공주의 ‘계급 간 이동’의 시도는 죄악이며 형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유진 역시 동화 속 인물들과 비슷한 시련을 겪는다. 하이힐을 신고 도시를 누비면서 인어공주가 걸음을 뗄 때와 같은 통증에 시달리고, 연애에 정신을 빼앗긴 상황에서는 마치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처럼 제 의지와 무관하게 이리저리 이끌리다 투신자살 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른다. 연애가 길어질수록 진심을 숨기고 말을 잃어가는 유진의 모습은 다리를 얻은 대가로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어준 인어공주를 연상시키며, 겹겹의 소수자성을 지녀 그 목소리가 들릴 수 없는 ‘서발턴’ 계급으로서 이 인물들의 공통된 정체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소설의 중간부터 유진은 억압을 내면화한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상태에서 벗어난다. 빨간 구두를 벗지 못해 자신의 발목을 자르기로 결정한 카렌이나 왕자를 죽이느니 차라리 자살을 선택한 인어공주와 달리 유진은 자기 발에 편한 신발을 꺼내 신고 스스로의 삶에 오롯이 집중하며 자기 자신은 물론 배 속의 아이까지도 구원한다. 특히 공간의 분위기나 유진의 의상, 자세, 소품 등에서 인어공주와 그의 고향인 바다를 연상시키는 건물 옥상에서의 투신 시도 장면에서 바닥에 붙어선 유진의 맨발이 그녀를 살리는 주역으로 기능하며 르 클레지오의 에코 페미니즘적 상상력을 발견하게 한다.
    안데르센과 달리 사후 세계라든가 신의 개입을 상정하지 않은 르 클레지오의 소설은 오직 지상(생의 공간)만을 무대로 한 ‘수평적 세계’이다. 하지만 이 안에서 하이힐을 신고 움직이는 여성은 세상의 욕망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정해진 대로 순응하며 사는 존재로,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용어를 빌어 설명하자면 ‘홈 패인 공간espace strié’을 따라 걷는 수동적 상태에 있다고 하겠다. 유진이 하이힐을 벗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시작하자 도시는 ‘매끄러운 공간espace lisse’으로 변모한다. 경계가 없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세계에서 유진은 기존의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대로의 ‘여성-되기devenir-femme’를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르 클레지오와 안데르센의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우리의 접근은 어떠한 의의를 갖는가? 우선은 19세기와 21세기라는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여성의 약자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유진이 금기를 깨고 주체적 삶을 지향하기 시작할 때 그는 안데르센의 비극적 인물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현대 여성’의 지위, 즉 남성과 대등한 권리를 갖는 한 개인으로서의 자리를 찾아간다. 물론 소설 속 유진의 승리가 현실 사회에서 이미 실현된 젠더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르 클레지오의 낙관주의는 이것이 스스로의 힘을 깨달은 여성들이 만들어갈 미래라고 선언한다.
  • 영문
  • This research is a study on the subjectivity and the existence of women in the contemporary society, and its presentation by J.-MG Le Clézio in his short story entitled “Histoire du pied” (2011) through the strategic rewriting of Andersen's two tales “The Little Mermaid” (1837) and “The Red Shoes” (1845). Among several clues to intertextuality, we will look in particular at the images of the feet and the shoes of the three heroines: at times these images resemble each other, but they also vary in accordance with author’s intentions.
    First, the feet of the three girls identically symbolize their lower social status; Karen's bare feet, wearing only big hooves in winter; the little mermaid's tail, deprived of human feet and legs; and Ujine's flat feet. All these images represent poverty, unprotected minority, the outsider, and objectified -even oppressed- body of which differences are disrespected.
    Each of the three heroines has, respectively, a desire related to her feet or shoes, that can be understood around access to higher social rank. In the case of Karen, she desires the red shoes, to which she is not allowed. The Little Mermaid begs the witch to let her have the legs, so that she can stand next to the handsome prince. Ujine feels herself being more important whenever wearing her beloved high heels, and she adores her boyfriend's feet while she hates her own. These desires can be understood, according to Freud's psychoanalysis, like those of girls who, deprived of the penis, are seeking its substitutes.
    In these two tales of Andersen, the heroines' attempts are unsuccessful. These attempts themselves are of sin and thus subjects of punishment in the vertical world of the author. His world presupposes three scales: the sky (god) - the earth (human) - and the underground (sea, mermaid, witch). Ujine is going through ordeals which are similar to Andersen’s heroines. The stiletto walk torments her feet with a sharp pain that the Little Mermaid felt. After falling in love with a pretentious man, she lets herself be dragged by his feet, which eventually lead her to the edge of a rooftop of a building. In addition, Ujine gets more and more used to being silent in front of her boyfriend, reminding the Little Mermaid who lose her voice to the witch in exchange for the legs. All three heroines alike, loss of voice suggests their subordinate status, according to C. G. Spivak a being who can neither speak nor hear themselves.
    However, Ujine manages to escape her passivity and submissive state. Unlike Karen who asked to cut her feet in red shoes, or the Little Mermaid who chose to commit suicide instead of killing her love, the heroine of Le Clézio takes comfortable shoes, lives her life moving on from her past love and thus saves herself as well as the baby in her womb. In addition to this shift to feminism, we also discover the eco-feminist imagination in Le Clézio where bare feet are given the role of Ujine’s savior by directly touching the ground, a space full of vitality.
    In contrast to Andersen’s vertical world, the world of Le Clézio can be defined as horizontal, by the inexistence of after life or impossibility of supernatural intervention. But a woman walking on high heels in this world lacks freedom, because these shoes, a symbol of the oppression imposed on women, force her to remain in submission - in other words in the “striated space”, according to Deleuze and Guattari notion. The city only turns into a “smooth space” when Ujine decides to live her life true to her own desire and takes off her stiletto heels. In this open world without limits, Ujine no longer lives as a “woman”, but practices her “becoming-woman,” according to the expression of the two philosophers.
    The last question remains: what discoveries does the intertextuality of the two writers bring us? First, it reveals that two centuries from the days of Andersen were not enough for today’s young women as the minority to free themselves from an oppressive sexist world. On the other hand, Ujine, disillusions herself, and succeeds in breaking taboos and regaining her subjectivity and her rights equal to those of men: an achievement that was not allowed to our heroines in the 19th century. Ujine's victory does not, of course, mean that the equality between men and women is achieved today. But Le Clézio takes an optimist vision and says that it is a foreseen future of humanity that will brought up by women’s struggl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우리 연구는 르 클레지오의 단편 「발 이야기」(2011)와 안데르센의 동화『빨간 구두』(1845), 『인어공주』(1837)의 상호텍스트성에 집중하여 여성 인물의 (신)발을 둘러싼 상징성 탐구를 목표로 한다.
    먼저 세 주인공의 발은 낮은 계급을 상징한다. 카렌의 맨발, 인어공주의 꼬리, 유진의 평발은 가난, 보호자 없는 미성년, 이방인, 대상화되며 억압받는 신체를 보여준다. 이들은 발과 관련된 욕망으로 각자 어떤 선택을 내리며 자신의 계급을 벗어나기를 꿈꾼다. 카렌은 교회법에 어긋나는 빨간 구두를, 인어공주는 인간의 다리를 욕망한다. 유진은 하이힐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제 발은 싫어하면서 애인의 발은 흠모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비추어 이는 남근이 결핍된 존재인 여성이 남근의 대체물을 갖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천상-지상-지하의 세 층위를 상정하고 지상에서도 신분을 구분해둔 안데르센의 ‘수직적 세계’에서 카렌과 인어공주의 계급 간 이동 시도는 죄악이며 형벌의 대상이다. 유진 역시 동화 속 인물들과 비슷한 시련을 겪는다. 하이힐을 신고 걸으며 인어공주의 것과 같은 발 통증에 시달리고, 사랑에 빠진 뒤론 빨간 구두를 신은 듯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투신자살 직전에까지 이른다. 연애가 길어지며 점차 말을 잃어가는 유진은 다리를 얻는 대신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어준 인어공주를 연상시키며 서발턴으로서 인물들의 공통된 정체성을 암시한다.
    소설의 중간부터 유진은 억압을 내면화한 수동적 상태에서 벗어난다. 구두를 벗지 못해 발목을 잘린 카렌, 왕자를 죽이느니 차라리 죽기를 선택한 인어공주와 달리 그는 편한 신발을 꺼내 신고 제 삶에 집중하며 자신과 배 속 생명까지 구원한다. 특히 공간이 바다를 연상시키는 소설의 투신시도 장면에서는 유진의 맨발이 그를 살리는 주역으로 등장하여 르 클레지오의 에코페미니즘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사후 세계나 신의 개입을 상정하지 않는 르 클레지오의 소설은 오직 지상을 무대로 한 ‘수평적 세계’로 들뢰즈의 용어를 빌면 이는 매끄러운 공간, 유목주의의 장소다. 하이힐을 벗자 홈 패인 공간에서도 빠져나온 유진은 탈영토화를 통해 제 목소리를 되찾고 빼앗긴 주체성을 회복한다. 프로이트식 ‘억압된 욕망’의 전형인 사뮈엘에게 맞서고 결국 그마저 바꿔놓는 유진은 남근 중심적 욕망론의 대안으로 들뢰즈가 제시한 ‘혁명적 욕망’의 주체로 볼 수 있다. 프로이트에게 결핍이자 공백이었던 여성은 르 클레지오에 이르러 완전하고도 고유한 발을 가진 주체가 된다.
    요컨대 르 클레지오의 안데르센 다시 쓰기는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 여전히 성차별을 견뎌야 하는 젊은 여성의 약자성을 짚는다. 그러나 유진이 금기를 깨고 주체적 삶을 지향할 때 그는 안데르센의 소녀들에겐 허락되지 않던 현대 여성의 지위, 남성과 대등한 권리를 갖는 한 개인의 자리를 찾아간다. 이는 자신들의 힘을 깨달은 여성들 스스로가 머잖아 만들어갈 미래라고 르 클레지오는 낙관한다. 또한 이 다시 쓰기는 ‘착한 약자’의 서사를 끝내자는 작가의 은밀한 제안으로도 읽힌다. 욕망을 지닌 여성이 세상과 불화하다 비극으로 생을 마치고 용서와 구원을 기다린다는 고전적 스토리의 전복. 이게 바로 이 소설의 상호텍스트성을 간파한 독자들에 의해 완성될 변혁 아닐까. 끝으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중간 이름을 가져온 인물 ‘크리스티안’에게서 19세기 동화작가의 명예회복을 꿈꾼 르 클레지오의 다정함을 엿본다. 시대적 한계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한 작가. 그 때문인지 도리어 여성혐오에 거듭 빠지던 크리스티안은 19세기 문학사에서 21세기 소설로 들어오며 오픈리 게이가 되어 능력 있는 여직원과 함께 일하고 그가 불운에 처하자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이러한 작명의 유희는 르 클레지오가 안데르센의 전근대적 여성관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작가가 갖게 마련인 한계를 고백하며 이를 다시 문학의 힘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이 다시 쓰기를 계획했음을 짐작케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의 활용계획으로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이 연구가 강의에 활용된다면 오늘날 한국의 20대들의 뜨거운 화두이자 때로는 첨예한 갈등의 원인이 되는 젠더 문제를 문학을 통해 새롭게 사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미숙한 청춘의 연애, 순수한 설렘과 열정만큼이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인물들의 모습,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어느 틈에 달라진 상대의 태도에 당황하는 천진함에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겠고, 혼전임신, 가스라이팅, 일상 속 성희롱, 자발성이 불분명해진 꾸밈에의 욕망, 노동 현장의 복식 규정 등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거나 이제 곧 사회로 나가 겪게 될 갈등 상황을 간접 경험해보면서 보다 진보적이고 젠더 평등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해결책을 미리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우리 연구는 국내에서 거의 전무한 르 클레지오의 단편 연구라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그의 문학세계에서 단편소설을 포함한 ‘짧은 텍스트’ 장르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는데 이는 2008년 이래 매년 발간되는 르 클레지오 연구지, 『카이에 르 클레지오Les Cahiers J.-M.G. Le Clézio』의 2호(2009)가 “우화, 단편, 로망스”라는 주제로 그의 짧은 텍스트들에 할애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출간된 단편집만도 일곱 권에 이르는 상황에서 국내 연구자로는 유일하게 르 클레지오의 단편을 다룬 김성(2018)은 “단편들이야말로 그만이 갖고 있는 비밀한 메시지를 한눈에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축약도”와 같다며 그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셋째, 현대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신발이나 발을 주제로 도전과 성장, 자유로운 삶에의 의지를 표현하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 『캡틴 마블』(2019)의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 분)가 넘어지고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는 장면의 연속은 전 세계적 관객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또한 최근 세계무대에서 이례적인 관심을 받는 케이팝에서도 ‘발’과 여성 해방의 연관성을 직시한 서사는 빠르게 늘고 있어 f(x)의 <스텝>, 레드벨벳의 <Cool world>, 아이유의 <분홍신>, CLC의 <To the sky>, 제시카의 <My life style>, 핫펠트의 <새 신발>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종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상기의 문화 콘텐츠들이 본 연구를 시작으로 하나의 담론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조심스레 가져볼 수 있겠다. 들뢰즈식 ‘유목주의’를 꿈꾸며 ‘매끄러운 공간’ 위로 발을 내딛는 새로운 여성상을 논하는 21세기적 문화 담론을 말이다.
  • 색인어
  • 르 크레지오, 안데르센, 상호텍스트성, 인어공주, 빨간 구두, 발 이야기, 여성주의, 프로이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절편음란증, 들뢰즈, 가타리, 안티오이디푸스, 에코페미니즘, 서발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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