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한국 전쟁문학 연구사에서 논의가 미흡했던 범주의 작품들을 고찰하고자, 근래 30년간 발표된 베트남전쟁 참전자들의 체험문학을 연구 대상으로 정했다. 권오형, 김범선, 김수환, 김창동, 김현진, 김희상, 문수봉, 문용덕, 서경림, 안정효, 정건영, 정명석, 지요하 ...
본고는 한국 전쟁문학 연구사에서 논의가 미흡했던 범주의 작품들을 고찰하고자, 근래 30년간 발표된 베트남전쟁 참전자들의 체험문학을 연구 대상으로 정했다. 권오형, 김범선, 김수환, 김창동, 김현진, 김희상, 문수봉, 문용덕, 서경림, 안정효, 정건영, 정명석, 지요하 등 13명 작가를 중심으로 그들의 소설 작품뿐 아니라 수기, 회고록, 자서전 같은 논픽션의 교술 장르에 해당되는 수필 작품까지 살펴보았다.
작품 발표 시기가 참전 경험과는 20~30년 이상 시간적 간극이 있어, 작가 나름의 객관적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기억’에 의해 재현한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형상화한 세계가 사실적 현실이든 허구적 현실이든 간에 전장(戰場)이 공포와 절망, 전쟁과 인간에 대한 회의감으로 점철된 현실이었던 것은 분명한데, 참전 작가들이 세월을 약으로 삼고 구성한 글에서는 전쟁터의 일상도 엿보이고, 반성적 회고를 통해 그리는 이상(理想)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특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전쟁이 직간접적으로 남긴 상처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치유 방법을 모색해 가는 서사이고, 두 번째는 전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통해 반전(反戰)의 근거를 찾고 이상적인 인간을 지향하는 서사이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자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고, 살아남은 자들도 이 현장을 목도한 후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잔악한 전쟁의 횡포를 직접 겪은 수난자로서 한동안 펜을 들지 못한 작가들도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후, 자신뿐 아니라 베트남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을 응시하면서 작가적 책무를 느끼게 된다. 이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고통을 기억해 내고 직시하는 것, 증언과 고백을 통해 인간 존엄의 윤리를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작가들은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나섰다.
작품 속에서 글 쓰는 화자를 통해 전개해 나가는 자전적 서사는 자아 발견과 자기반성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사회 곳곳의 크고 작은 전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 때로는 추억의 현장인 베트남 전적지를 순례하거나 옛 전우들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마련하는데, 이를 통해 베트남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참전자들을 객관적 시선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전사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삶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늘을 걷어 내는 길을 탐색한다. 이때 고엽제 환자, 라이따이한, 보트피플 같은 인물을 통해 베트남전쟁이 남긴 잔상을 드러내면서,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전쟁의 특성상 아군과 적군은 존재할지언정 선과 악의 범주와 경계선은 분명하지가 않다. 전쟁터는 국가가 징집한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임무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품고 있는 조국애와 신념이 동시에 발생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인물들은 사회적 욕망과 개인적 욕망이 분리되지 않은 채 폭력과 살인이 허용되는 공간에 놓이게 된다. 그런 혼돈의 상황에서 내적 지향점을 잃으면 곧 인간의 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전쟁과 인간의 속성을 포착한 작가들은 ‘인간성 회복’을 작품의 기조로 삼는다. 전쟁터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정신 영역을 본능적 자아, 현실적 자아, 이상적 자아의 인물 유형으로 선보이는 가운데, 특히 표상이 되는 이상적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참인간에 대한 희구를 나타냈다. 또, 베트남 전쟁터에서 한국군의 존재 양상은 미군이나 베트남 민간인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데, 이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보면 대개 고착화된 ‘지배/피지배 관계’의 구도를 흔들어 놓는 진술이 주를 이룬다. 작가의 비판적 시각이 민족, 계급, 성별의 차이를 지우고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꿔 놓는다.
이러한 작품들은 다시 말해, 실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동물적 본능과 사회적 욕망이 결합해 낳은 전쟁터의 리얼리티를 보여 주되, 참혹한 전장 한가운데서도 순수성과 양심의 선을 지키는 ‘진정한 인간상’과 억압에서 해방된 ‘이상 사회’를 추구한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인간애, 휴머니즘에 닿아 있는 것이다. 정복과 말살이 자행되는 전쟁은 역설적이게도 공존과 평화를 더욱 갈망하게 하고, 생존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통해, 1990년대~2010년대 베트남전쟁 관련 체험문학을 통틀어 상통하는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랑스 문학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작가의 기능은 아무도 이 세계에 대해서 모를 수 없게 만들고, 아무도 이 세계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있다.’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소설이든 수필이든 작가들이 개인의 체험담을 내놓은 목적은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자기반성을 하는 존재로 인간을 회복시키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기억을 통한 역사적 사실의 재현은 작가들의 각기 다른 경험과 관점에 따라 서사 내용과 재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다양한 문학적 성과물로 이어져, 한국 전쟁문학사의 빈 부분을 채우는 역할까지 할 것이다. 다만, 몇몇 작품들은 서사를 구성하는 데 있어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상세한 진술을 생략함으로써, 개연성이 없거나 문단 간의 긴밀도가 떨어진 작품으로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남긴 것이 한계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