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로동청년으로 본 북한의 종교변화와 청년세대의 동향
Religious Change in North Korea and the Reactions of the Young Generation in Rodong Ch’ŏngnyŏn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110987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12월 01일 ~ 2020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이연승
연구수행기관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형성의 4대 주축인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계층 중 문화변동에 민감한 청년세대의 종교변화에 대한 반응을 고찰하므로 북한사회를 이해하고 민족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북한은 “세상에 둘도 없는 청년강국” 이라는 구호 아래, 감수성과 시대감각이 예민한 청년세대를 “주체혁명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강조한다. 전근대적 중앙집권체제와 가부장적 정권세습을 정치적 특징으로 하며, 반제,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는 북한이 <청년의 날>을 제정하고, 청년세대를 현재와 미래에 사회주의체제수호의 주역으로 부각시킨 특성은, 역설적으로 20세기 초에 서구로부터 한반도에 도입된 세계기독교청년회(YMCA)의 특징과 상응한다. 기독교청년회는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근대화의 핵심인물을 배출시킨 기독교 정신문화운동으로 조선시대가 간과했던 청년계층에 주목하고 이들에게 한국근대화의 초석이 될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별히 기독교청년회는 세계와의 연대성 및 현지청년의 주도성을 계발할 공간을 마련하였고,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을 강화시킬 네트워크를 조성했으며, 도시의 지성인과 노동청년, 농민의 장벽을 넘어 체육활동, 기술교육, 농촌활동, 문서보급을 위한 범국가적 운동을 전개하므로 사회개조와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기독교 문화운동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세계기독교청년회는 당시 한반도 60만 기독교인의 75%를 차지하던 북한기독교인들을 통해 북한사회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해방후 북한의 청년들은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으로 재조직되면서, 종교병행 실험사회에서 종교말살사회로 이행하며, 수령숭배 사회주의사회로의 적응기를 통과하는 가운데, 기독교청년회가 함양한 현지인 주도성을 주체사상으로 정치이념화하고, 세계연대, 체육활동, 공업기술교육, 농촌활동, 문서보급으로 전개된 기독교청년회의 문화운동을 변용하는 양상을 시사한다. 북한 기독교는 수령중심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던 1960년대에도 명맥을 이어나가 1970년대의 종교교류 및 수면으로 부상한 1980년대의 국제종교교류의 저변세력으로 존재했다. 본 연구는 북한이 기독교청년회의 네트워크 활동방식과 문화가치의 틀을 사회주의 노동청년의 결성 및 사회개조를 위해 변용하였고, 종교교류가 허용된 시기에 종교수용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이해를 가지고, 북한사회의 종교변화, 곧 종교제한, 종교해체, 종교재발견 내지 재생이라는 3단계 변화에 청년들의 반응을 분석하여, 해방전 기독교청년회와 해방후 북한의 청년세대형성과의 문화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북한지역을 포함한 한국기독교청년회 운동사는 일제강점기까지 서술되었다. 해방후 북한교회사는 교회 및 기독교교육 내지 구휼기관 중심으로 서술되어 기독교청년의 활동을 취급한 연구는 부재하다. 북한측 자료분석의 필요성에 따라 원자료 <로동신문>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2006년 출간되었지만, 종교관련기사 12건이라는 통계이외에 종교상황에 대한 정보는 부재하다. 본 연구는 <로동신문>과 아울러 그와 쌍벽을 이룬 일간지 <로동청년>을 종교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기독교청년회가 조성한 문화가치의 변용 및 청년과 종교변화관련 기사의 교차점을 검토하므로 첫째, 종교변화에 따르는 북한청년들의 내부동향을 파악하고 둘째, 북한의 기독교, 북한사회, 국제정세의 변화라는 세가지 요인이 교차하는 영역을 조망하여 기독교 연구의 다변화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세째 북한에서 발행된 1차 자료의 면밀한 검토로 2차 자료가 제시한 이론을 확인하여 북한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모색한다. 북한 사회, 특히 청년의 관심사가 일상에서 표출된 중요한 북한의 공간문헌, 로동청년을 통해 북한사회주의체제의 지지기반으로 부상한 청년세대의 사상적 추이를 이해하고 북한종교변화에 주목한 기존연구를 보완하여 평화통일을 대비하며 남북 상호간에 고착된 사회문화가치의 이질화를 극복할 효과를 기대한다.
  • 연구요약
  • 한국 근대사에 청년이란 명칭과 청년계층의 형성은 산업혁명기의 진통을 겪는 도시근로청년을 중심으로 활동한 국제 선교기관 YMCA에서 기인하는데, 구한말 독립협회회원과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들의 활로로 자리잡았다. 기독교청년회는 기독교 세계주의, 청년의 자기주도성, 체육활동, 문화운동을 통한 사회개조를 동반하는 특징으로 한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었다. 북한의 기독교인 수가 반도 전체기독교인구의 7할을 차지함과 동시에 기독교 청년운동 역시 함흥, 평양, 선천, 원산, 신의주에 왕성한 조직력을 시사했다. 평양 YMCA는 조만식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청년들을 위한 연합과 진취적 기상의 인재를 배출하였고 예루살렘세계선교대회와 뉴욕YMCA본부를 통해 파견되었고, 이어 미군정기 경제자문으로 활동한 농촌전문가 아더 번스가 함흥YMCA에 활동하면서 북한 기독교와 기독교청년활동의 주축을 이루었고 특히 전국농촌운동을 전개하여 북한사회에 영향력을 주도했다.
    해방후 14세에서 30세 미만의 연령에 해당하는 북한의 청년들은 공산주의청년동맹 (1945년 10월), 해방청년동맹, 농민청년동맹, 학생동맹으로 재조직되었다. 북한에서 청년층은 북한사회주의 체제 설립가운데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변화를 주도할 사회계층으로 부각되었다. 1946년 1월 17일 ‘북조선 민주청년동맹’으로 결성되었고 1951년 ‘남조선 민주청년 동맹’과 통합되어 ‘조선민주청년동맹’으로, 1964년 5월 ‘조선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으로, 김일성 사후 1996년 1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2016년 8월 청년동맹 9차 대회에서 ‘김일성주의청년동맹’으로 개칭되었다. 북한의 5백만 청년들은 중앙위원회를 구심점으로 각 도, 직할시, 시, 군 단위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주로 학교와 군대에 배치되어 사회주의의 혁명과업을 계승하고 노동당의 전투적 후비대로 기능하며, 당, 군, 청년의 체제유지 ‘3대보루’로 중시된다.
    본 연구는 1. 해방전 북한의 기독교청년회의 역사를 약술하고, 2. 해방후 북한사회가 강조하는 청년동맹의 수행기능을 검토하며, 청년 지도자 양성을 위해 1946년 11월 창설된 중앙청년간부학교 및 청년돌격대를 조사한다. 3. 기독교 청년회가 지향한 세계연대, 문화운동, 체육활동, 문서교육 등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고찰하고, 4. 1967년을 기점으로 전개된 북한 문화혁명을 통해 강조된 실용적 수령주의 및 주체사상 가운데 산출된 청년관계 문서, 5. 1970년대의 변화된 종교상황, 곧 남북적십자회담, 평양신학원 개원 등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고, 6. 1980년대의 남북한 기독교교류, 곧 1986년, 1988년에서 1995년까지 지속된 글리온대회에 대한 반응, 기독교 목사 문익환, 기독청년 임수경의 방문, 7. 1990년대의 빌리그래함, 조동진 목사의 방북 등에 대한 북한 청년들의 반응, 김정은 체제이후 청년결집을 위해 강화된 청년강국의 개념을 중심으로 청년들의 동향을 조사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북한은 기독교 말살을 표방한 시기에도 세계연대와 미래지향적 청년중심의 문화가치를 보유하였고, 비밀집회의 형태로 기독교 잔존세력이 유지됨으로 1970년대 국제적 해빙무드가 조성되었을 때, 그 흐름에 주도적인 행보를 취하였다. 북한사회의 세계연대와 진보적 교류의 추구는 닉슨과 주은래의 악수로 상징되는 해빙무드의 조성 및 남북 7.4 공동성명 이후 진행된 조선그리스도연맹의 국제적 활동을 통해 구체화된다. 1970년대에 뉴질랜드의 도날드 보리 목사를 평양으로 초청하여 주체사상과 기독교의 연결고리를 연구하고, 제네바에 설치된 유엔 옵서버 사무실을 통해 세계교회협의회 본부를 방문하며, 아시아 기독교 평화대회에 참석하여 국제적 기독교 네트워크의 확장을 도모했다. 이러한 주도적 개방성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점증하는 국제적 기독교 교류에 적극적인 반응을 표시하고 기독교 대화에 가담하여 유럽과 북미의 한인기독교인과 대화 및 세계교회협의회가 주선한 글리온과 동경의 남북기독교인 대화로 발전한다.
    본 연구는 북한이 기독교를 통해 세계연대를 추구한 활동이 지엽적 전문가의 관심으로 제한되었는지 혹은 청년계층 전체에 파급효과를 가져올 문화변동의 현상인지를 3대 중앙지인 로동청년의 기사를 분석하여 조사하였다. 당의 기관지로서 로동청년은 북한사회의 노동당이 청년계층에게 주입하고자 시도하는 문화가치를 진단할 수 있는 주요 매체요 북한사회의 문화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연구자료라는 전이해를 가지고 로동청년을 로동신문과 대조하며 기초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였다. 세계적 해빙무드의 흐름을 포착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북한기독교인과의 대화의 첫 시도는 해외 한인 기독교인의 주도로 출발한다. 로동청년과 로동신문은 이들과 이루어진 대화에 관한 기사를 게재하여 세계연대의 흐름에 적극적인 반응을 취하고 청년계층의 문화변동을 추구하였다. 로동청년에 부각된 대표적인 기사들은 첫째, 북과 해외한인 기독교인과 이루어진 6차례의 대화, 둘째, WCC를 중개로 한 남북기독교인의 대화, 셋째,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관련된 한인 목사와 신부의 방문기사이다. 로동청년과 로동신문에서 제 23차에서 제 27차에 이르기까지 평화통일을 주제로 이루어진 북미주 기독학자회의의 대화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로동신문과 로동청년에 나타난 세계대회와 관련된 기사는 다양하고 폭이 넓으나 불교와 천도교와 관련된 기사는 이름과 참가활동이 간략히 기술된 반면 기독교와 관련된 기사는 김일성 가계의 기독교 연관성, 기독교의 세계주의, 해외 한인기독교인의 고향방문을 위한 주도적 움직임, 세계교회협의외의 적극적 인 교량역할과 연관되어 내용과 수량에 압도적인 게재량이 발견된다.
    기독교인의 활동에 대한 중앙기관지 로동청년의 보도는 종래 반기독교적 입장을 취해온 북한문헌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며 두 가지 측면을 시사한다. 로동청년과 로동신문에 공히 상세하게 보도된 기독교관련 기사들은 첫 째, 공시적 관점에서 볼 때 1980년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한 북한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의 변화에 대한 공적 선언이고, 둘째, 통시적 관점에서 볼 때 북한사회에 내재된 세계연대의 의지와 미래지향적 문화가치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로동청년에 게재된 기독교인의 “대화”와 “방문”에 관한 기사는 신문지상을 차지하는 규모와 빈도수와 지면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북한의 청년계층에 각인될 기독교 이미지의 긍정적 변화를 추론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남한의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여 체포되고, 수감되고, 위협을 받는 존재로 부각된 로동청년과 로동신문의 수 년간 반복된 기사들은 북한사회가 누차 강조하는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는 대의를 기독교인이 공유하고 개인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불의와 독재에 저항하는 실천적 의지를 표명한 집단으로 재정의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로서 기독교는 제국주의와 유착된 전위대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사회주의 체제 내에 생산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기반을 마련하였다. 기독교인들이 남한의 독재정권의 위협이 된다는 인식에 더하여, 주체사상을 고조하는 북한측에서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현실적으로 3자 회담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가짐으로 세계교회협의회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하게 작용하였고 세계교회협의회의 본부에서 개최된 남북기독교인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공식대화를 갖도록 세계교회협의회가 교량역할을 제공함은 북반구의 서구교회가 냉전체제를 고착화한 분단의 원흉이 아니라 화해의 연결고리를 제공했다는 인식의 전환을 상징함에 의미심장하다.
  • 영문
  • For the construction of a socialist regime, North Korea has championed two values of world alliance and the young people, which the YMCA had introduced to Korea in the early 20th century. North Korea inherited these values and materialized its attention on the young people by instituting a national celebration of the Young People’s Day, publishing the daily newspapers, Roding Ch’ongnyon (Working Class Young People), and collectively inculcating the motto that North Korea is second to none in the national strength for the young people. The YMCA’s legacy in colonial Korea bequeathed not only the two aspirations of building world alliance and equipping the young generation as leaders of the future, but it also undergirded Christian presence indomitable under the stringency of the period when North made a public announcement North Korean society had outgrown the premodern stage of religious tolerance and reached the state of complete elimination of Christianity.
    North Korean aspiration for world alliance and preparation for the next generation emerged with renewed resilience when in the 1970s the easing of Cold War inaugurated, following President Nixon and Zhou Enlai’s shaking of hands, the rise of the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and the joint communique on the fourth of July solidified by the Korean governments of the south and north. In accordance with the international currents of detente, North Korea reopened 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 and Pyongyang Seminary and invited a New Zealand pastor Donald Borrie to Pyongyang to talk on the relationship between Christianity and Juche Ideology in the 1970s. Moreover, North Korea dispatched a vice secretary of the observer’s office to the United Nation to the headquarters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nd the members of 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 to the Asian Christian Peace Conference held in India. The incipient international interactions with the WCC and ACPC prepared North Korea to embrace Christian dialog with overseas Korean Christians and with South Korean Christians with the mediation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This study examined the literature published in North Korea with two questions; whether these international currents of encounter between overseas Christians, Korean Christians, and North Korean Christians in the 1980s were only incidental incidents by a few religious leaders and, if not, how far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Labor Party sponsored those international meetings and dialogues in its newspapers for the young people, Rodong Ch’ongnyon. This research moved on an assumption that the Party’s publications constitute an invaluable literature revealing the overall orientation of North Korean society and voicing endogenous responses by the government to the exogenous international affairs. A meticulous examination of Rodong Ch’ongnyon revealed ample references and articles to those Christian encounters between the North and Overseas Koreans, which laid the ground for a positive perception of Christianity in North Korea which had been long regarded Christianity as the religion of American imperialism. This study discovers that overseas Korean Christians who had been less subjected to the South’s government surveillance had the latitude to take initiative in opening the door of dialogue with North Korean Christians. The WCC’s response followed the overseas Korean attempt at dialogue for reconciliation with the North with a conviction that justice and peace are so closely interconnected that one cannot be achievable without the other. Understanding that the issue of Korean division is the representative case in point to be resolved for the peace of the world, the WCC became active in mediating the dialogu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s. Particularly Rodong Chongnyon along with Rodong Sinmun made in detail reports of the 1st and 2nd Dialog between North and Overseas Korean Christians for the Unification of the Fatherland held in Vien, Austria and all the Glion Conferences mediated by the WCC. In terms of number of recurrences and space of pages for the news and opinions by repeated name of “pastor” and “priest” on the newspapers, the articles on the Dialog and the visit of Pastor Moon and the Catholic Priest Moon outnumbered by far other references to Christian events. These newspaper articles of Rodong Chongnyon redressed the image of Christianity affiliated with the American imperialism and reinforced Christian roles as patriots and compatible with North Korean values of peaceful reunification of the nation. The WCC through its engagements with Korean efforts for national reunification and reconciliation of the divided nations, as reported on Rodong Chongnyon, reinforced the image of Christianity more as the religion of patriots than as the forerunners of Western imperialism in the young people of North Korea.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북한사회를 이해하여 분단으로 인한 남북의 이질화를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북한사회주의체제형성의 4대 주축, 곧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의 4 사회계층 가운데, 청년계층에게 주목하고 이들을 위한 사회주의 체제 내의 문화가치의 변혁을 위한 시도들을 분석하므로 북한의 사회문화운동을 이해하고자 한다. 북한은 문화변동에 민감한 청년세대를 구시대의 전통을 탈피하고, 새시대를 건설할 주역이요 사회주의의 미래를 결정할 혁명영웅으로 삼아 “돌격대”라 칭하였고 북한사회주의 체제형성의 핵심세력으로 강조하였다. 김일성의 특별 정령으로 청년절을 제정하고, 북한이 “세상에 둘도 없는 청년강국”이라는 구호를 제창하며, 로동신문과 더불어 3대 중앙지 로동청년을 해방직후부터 출간하여 차세대육성의 주요전략으로 삼았다. 북한이 반제,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고, 전근대적 중앙집권 및 가부장적 세습을 특징으로 하는 정치체제를 채택하면서도, 김일성의 저작에서 나타난 바, 청년을 “주체혁명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강조하고 <청년의 날>을 제정함은, 20세기 초에 한반도에 도입되고 세계연대를 강조하며, 민족정신의 기상을 함양하여 근대화의 중심인물들을 대거 흡수, 배양했던 세계기독교청년회 YMCA의 특성을 보여준다.
    북한은 기독교 말살을 표방한 시기에도 이러한 세계연대와 미래지향적 청년중심의 문화가치를 보유하였고, 비밀집회의 형태로 기독교 잔존세력이 유지됨으로 1970년대 국제적 해빙무드가 조성되었을 때, 그 흐름에 주도적인 행보를 취하였다. 북한사회의 세계연대와 진보적 교류의 추구는 닉슨과 주은래의 악수로 상징되는 해빙무드의 조성 및 남북 7.4 공동성명 이후 진행된 조선그리스도연맹의 국제적 활동을 통해 구체화된다. 1970년대에 뉴질랜드의 도날드 보리 목사를 평양으로 초청하여 주체사상과 기독교의 연결고리를 연구하고, 제네바에 설치된 유엔 옵서버 사무실을 통해 세계교회협의회 본부를 방문하며, 아시아 기독교 평화대회에 참석하여 국제적 기독교 네트워크의 확장을 도모했다. 이러한 주도적 개방성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점증하는 국제적 기독교 교류에 적극적인 반응을 표시하고 기독교 대화에 가담하여 유럽과 북미의 한인기독교인과 대화 및 세계교회협의회가 주선한 글리온과 동경의 남북기독교인 대화로 발전한다.
    본 연구는 북한이 기독교를 통해 세계연대를 추구한 활동이 지엽적 전문가의 관심으로 제한되었는지 혹은 청년계층 전체에 파급효과를 가져올 문화변동의 현상인지를 3대 중앙지인 로동청년의 기사를 분석하여 조사하였다. 당의 기관지로서 로동청년은 북한사회의 노동당이 청년계층에게 주입하고자 시도하는 문화가치를 진단할 수 있는 주요 매체요 북한사회의 문화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연구자료라는 전이해를 가지고 로동청년을 로동신문과 대조하며 기초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였다. 세계적 해빙무드의 흐름을 포착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북한기독교인과의 대화의 첫 시도는 해외 한인 기독교인의 주도로 출발한다. 로동청년과 로동신문은 이들과 이루어진 대화에 관한 기사를 게재하여 세계연대의 흐름에 적극적인 반응을 취하고 청년계층의 문화변동을 추구하였다. 로동청년에 부각된 대표적인 기사들은 첫째, 북과 해외한인 기독교인과 이루어진 6차례의 대화, 둘째, WCC를 중개로 한 남북기독교인의 대화, 셋째,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관련된 한인 목사와 신부의 방문기사이다. 로동청년과 로동신문에서 제 23차에서 제 27차에 이르기까지 평화통일을 주제로 이루어진 북미주 기독학자회의의 대화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세계대회에 관한 기사는 다양하고 폭이 넓으나 불교와 천도교와 관련된 기사는 이름과 참가활동이 간략히 기술된 반면 기독교와 관련된 기사는 세계적 연대의 두드러진 성격, 해외 한인기독교인의 주도적 움직임, 유럽 및 북미의 기독교단체의 적극적 대화제의와 연관되어 내용과 수량에 압도적인 게재량이 발견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북한문헌인 로동청년을 로동신문과 대조하며 면밀히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도출하였다. 기독교인의 활동에 대한 중앙기관지 로동청년의 보도는 종래 반기독교적 입장을 취해온 북한문헌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며 두 가지 측면을 시사한다. 로동청년과 로동신문에 공히 상세하게 보도된 기독교관련 기사들은 첫 째, 공시적 관점에서 볼 때 1980년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한 북한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의 변화에 대한 공적 선언이고, 둘째, 통시적 관점에서 볼 때 북한사회에 내재된 세계연대의 의지와 미래지향적 문화가치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로동청년에 게재된 기독교인의 “대화”와 “방문”에 관한 기사는 신문지상을 차지하는 규모와 빈도수와 지면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북한의 청년계층에 각인될 기독교 이미지의 긍정적 변화를 추론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남한의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여 체포되고, 수감되고, 위협을 받는 존재로 부각된 로동청년과 로동신문의 수 년간 반복된 기사들은 북한사회가 누차 강조하는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는 대의를 기독교인이 공유하고 개인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불의와 독재에 저항하는 실천적 의지를 표명한 집단으로 재정의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로서 기독교는 제국주의와 유착된 전위대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사회주의 체제 내에 생산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기반을 마련하였다. 기독교인들이 남한의 독재정권의 위협이 된다는 인식에 더하여, 주체사상을 고조하는 북한측에서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현실적으로 3자 회담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가짐으로 세계교회협의회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하게 작용하였고 세계교회협의회의 본부에서 개최된 남북기독교인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공식대화를 갖도록 세계교회협의회가 교량역할을 제공함은 북반구의 서구교회가 냉전체제를 고착화한 분단의 원흉이 아니라 화해의 연결고리를 제공했다는 인식의 전환을 상징함에 의미심장하다.활용방안: 북한지역을 포함한 한국기독교청년회 운동사는 일제강점기까지 서술되었다. 해방 후 북한교회사는 교회 및 기독교교육 내지 구휼기관 중심으로 서술되어 기독교청년의 문화변동에 주목한 연구는 부재하다. 북한 내부의 자료를 분석할 필요성에 따라 원자료 <로동신문>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2006년 출간되었지만, 종교관련기사 12건이라는 통계이외에 구체적인 종교상황에 대한 정보는 부재하다. 본 연구는 <로동신문>과 쌍벽을 이룬 일간지 <로동청년>을 종교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기독교청년회가 조성한 문화가치의 변용과 종교변화관련 기사의 교차점을 검토하므로 첫째, 국제적 종교교류의 변화에 따르는 북한청년들의 내부동향을 파악하고 둘째, 북한의 기독교, 북한사회, 국제정세의 변화라는 세가지 요인이 교차하는 영역을 조망하여 기독교 연구의 다변화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세째 북한에서 발행된 1차 자료의 면밀한 검토로 2차 자료가 제시한 이론을 확인하여 북한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모색하였다. 북한 사회, 특히 청년의 관심사가 일상에서 표출된 중요한 북한의 공간문헌, <로동청년>을 통해 북한사회주의체제의 지지기반으로 부상한 청년세대의 사상적 추이를 추론하였다. 이 연구는 북한관계자료의 이해와 청년계층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에 활용될 수 있고 평화통일시대의 도래를 대비하여 남북 상호간에 사회문화를 이해의 증진에 사용될 수 있다. 특별히 북한관계자료의 이해와 청년계층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에 활용될 수 있고 북한교회사 연구의 폭과 다양성을 제공한다.
  • 색인어
  • 로동청년, 북한 기독교, 주체사상, 청년세대, 해외한인기독교인, 세계교회협의회, 제 13 차 세계청년학생축전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