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에 청년이란 명칭과 청년계층의 형성은 산업혁명기의 진통을 겪는 도시근로청년을 중심으로 활동한 국제 선교기관 YMCA에서 기인하는데, 구한말 독립협회회원과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들의 활로로 자리잡았다. 기독교청년회는 기독교 세계주의, 청년의 자기주 ...
한국 근대사에 청년이란 명칭과 청년계층의 형성은 산업혁명기의 진통을 겪는 도시근로청년을 중심으로 활동한 국제 선교기관 YMCA에서 기인하는데, 구한말 독립협회회원과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들의 활로로 자리잡았다. 기독교청년회는 기독교 세계주의, 청년의 자기주도성, 체육활동, 문화운동을 통한 사회개조를 동반하는 특징으로 한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었다. 북한의 기독교인 수가 반도 전체기독교인구의 7할을 차지함과 동시에 기독교 청년운동 역시 함흥, 평양, 선천, 원산, 신의주에 왕성한 조직력을 시사했다. 평양 YMCA는 조만식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청년들을 위한 연합과 진취적 기상의 인재를 배출하였고 예루살렘세계선교대회와 뉴욕YMCA본부를 통해 파견되었고, 이어 미군정기 경제자문으로 활동한 농촌전문가 아더 번스가 함흥YMCA에 활동하면서 북한 기독교와 기독교청년활동의 주축을 이루었고 특히 전국농촌운동을 전개하여 북한사회에 영향력을 주도했다.
해방후 14세에서 30세 미만의 연령에 해당하는 북한의 청년들은 공산주의청년동맹 (1945년 10월), 해방청년동맹, 농민청년동맹, 학생동맹으로 재조직되었다. 북한에서 청년층은 북한사회주의 체제 설립가운데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변화를 주도할 사회계층으로 부각되었다. 1946년 1월 17일 ‘북조선 민주청년동맹’으로 결성되었고 1951년 ‘남조선 민주청년 동맹’과 통합되어 ‘조선민주청년동맹’으로, 1964년 5월 ‘조선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으로, 김일성 사후 1996년 1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2016년 8월 청년동맹 9차 대회에서 ‘김일성주의청년동맹’으로 개칭되었다. 북한의 5백만 청년들은 중앙위원회를 구심점으로 각 도, 직할시, 시, 군 단위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주로 학교와 군대에 배치되어 사회주의의 혁명과업을 계승하고 노동당의 전투적 후비대로 기능하며, 당, 군, 청년의 체제유지 ‘3대보루’로 중시된다.
본 연구는 1. 해방전 북한의 기독교청년회의 역사를 약술하고, 2. 해방후 북한사회가 강조하는 청년동맹의 수행기능을 검토하며, 청년 지도자 양성을 위해 1946년 11월 창설된 중앙청년간부학교 및 청년돌격대를 조사한다. 3. 기독교 청년회가 지향한 세계연대, 문화운동, 체육활동, 문서교육 등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고찰하고, 4. 1967년을 기점으로 전개된 북한 문화혁명을 통해 강조된 실용적 수령주의 및 주체사상 가운데 산출된 청년관계 문서, 5. 1970년대의 변화된 종교상황, 곧 남북적십자회담, 평양신학원 개원 등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고, 6. 1980년대의 남북한 기독교교류, 곧 1986년, 1988년에서 1995년까지 지속된 글리온대회에 대한 반응, 기독교 목사 문익환, 기독청년 임수경의 방문, 7. 1990년대의 빌리그래함, 조동진 목사의 방북 등에 대한 북한 청년들의 반응, 김정은 체제이후 청년결집을 위해 강화된 청년강국의 개념을 중심으로 청년들의 동향을 조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