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의 목적
이 연구는 앙리 베르그송(Henry Bergson)의 ‘지속’(duration)과 ‘기억(무의식)’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심원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2016-2017년 국정농단 규탄 촛불집회(이하 ‘촛불’이라 약함)의 독특성과 그 ‘이후’에 도래한/도래할 ...
1) 연구의 목적
이 연구는 앙리 베르그송(Henry Bergson)의 ‘지속’(duration)과 ‘기억(무의식)’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심원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2016-2017년 국정농단 규탄 촛불집회(이하 ‘촛불’이라 약함)의 독특성과 그 ‘이후’에 도래한/도래할 ‘새로운 민중’의 양상에 관해 논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아울러, 이러한 논의는 앞으로 전개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에 관한 전망과 ‘오늘의 민중신학’의 새로운 ‘문제틀’(problematic)의 제시로 이어질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촛불’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썼으며, 이후에도 우리사회의 기득권적 질서와 부조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화산맥’으로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이기도 하다. ‘촛불’을 ‘민중사건론’의 견지에서 다룬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뜻깊은 일이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기존의 관점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새로운 민중’의 탄생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학문적 분석 및 평가 작업은 매우 긴요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촛불광장’에 참여한 이들을 과연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민중’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보는 이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일반적으로 ‘민중’의 범주를 ‘인물’(person)이나 ‘개체’(individuality), 혹은 특수한 ‘계층’(class) 등 어떤 ‘실체’나 ‘몰적 동일성’(molar identity)으로 정의해온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원 안병무가 주장하는 ‘사건의 신학’과 그에 기반을 둔 ‘민중사건론’에 따르면, 몰적 동일성보다는 ‘사건의 1차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중을 몰적 동일성이 아닌 사건이나 운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보다 적극적인 정의가 가능한데, 그것은 결국 기성의 지배적 체제를 뒤흔들며 도래하는 변화와 생성의 운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심원의 ‘사건의 신학’이나 ‘민중사건론’이 주로 넓은 의미의 플라톤주의에 기반한 전통적 서구신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사유라는 점을 감안하면, 존재나 동일성 중심의 형이상학이 아닌 ‘생성존재론’의 토대에서 적극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만약 그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면, ‘몰적 동일성’으로서의 ‘민중’이 ‘민중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중사건’의 정동적 효과(affect)가 바로 ‘민중’이라는 이해가 가능하다. 즉, 고통과 한(恨)의 담지자들을 양산함으로써 작동하는 지배적인 몰적 체제에 대하여, 단지 그 체제에 의해 규정되거나 순응하는 ‘민중-이기’(being Minjung)에 머물지 않고, 능동적으로 기득권적 체제에 변화를 가져오는 민중사건 혹은 운동으로서의 ‘민중-되기’(becoming Minjung)에 참여할 때 비로소 ‘역사적 주체’로서의 민중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통적인 몰적 동일성으로서의 민중 개념에 대한 재고와 아울러, ‘촛불’을 비롯한 최근의 사건들까지도 ‘민중사건론’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는 존재론적, 윤리학적, 신학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2) 베르그송주의의 필요성
그런데 문제는, 사건의 신학이나 민중사건론의 이론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특히 ‘민중사건’과 ‘민중적 주체성’의 관계가 모호하고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민중사건론의 생성존재론적·범재신론적 맥락을 살리면서, 특히 본 연구자가 ‘촛불’의 가장 큰 독특성으로 간주하는 ‘촛불광장’에서의 ‘민중적 주체성’ 형성의 문제를 보완해줄 수 있는 대안적인 존재론적·신학적 관점이 요청된다. 그런 점에서 ‘베르그송주의’(bergsonism)는 크게 지속, 순수기억(무의식), 그리고 범재신론(panentheism)이 하나로 연결되는 사상적 흐름 위에서 ‘민중사건’과 ‘민중 주체화’의 관계를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유이다. 특히 하나의 ‘민중사건’이 ‘기억/역사의 종합'을 매개로 하여 ‘민중적 주체성’을 형성시키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줄 것이다.
3) 요약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이 연구에서는 첫째, 민중신학과 베르그송주의의 창조적 융합을 통해 생성론적이고 시간론(기억론)적인 관점에서 민중사건론을 새롭게 정립하고, 둘째, 그 개념적 결과물을 가지고 ‘촛불’의 과정 및 ‘촛불 이후’의 전개에 관한 민중신학적 분석을 수행하는 가운데 ‘새로운 민중’의 등장 및 그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의 양상에 관한 논의를 이어갈 것이며, 셋째, 그 모든 과정은 ‘오늘의 민중신학’의 새로운 문제설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안 모색으로 귀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