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연구의 목적은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김시습에 대한 기억의 층위를 검토한 후, 이런 기억들이 이루어지게 된 맥락을 밝히고 이를 전체적으로 꿰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유자로 태어나 불자로 살기도 했고, 여러 신이한 행적을 보이기도 한 김시습은 조선 시대의 수 ...
당초 연구의 목적은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김시습에 대한 기억의 층위를 검토한 후, 이런 기억들이 이루어지게 된 맥락을 밝히고 이를 전체적으로 꿰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유자로 태어나 불자로 살기도 했고, 여러 신이한 행적을 보이기도 한 김시습은 조선 시대의 수많은 인물 중 가장 파악하기 힘든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김시습을 후대의 기억 맥락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김시습을 탐구하는 동시에 조선시대에 김시습을 기억하였던 기억주체들의 면모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억주체의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시대적ㆍ정치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르게 김시습을 기억하고자 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었다.
김시습이라는 인물은 워낙 독특하고,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금오신화》를 창작한 ‘소설가’, 어디에도 소속을 거부한 ‘방외인’, 세종과 단종을 위한 의리를 보여준 ‘생육신’, 《조동오위요해》를 지은 뛰어난 ‘불자’, 전국을 방랑하며 노래한 ‘시인’ 등이 그것이다. 이런 여러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각 시대적 맥락과 이를 기억하는 기억 주체에 의해 다양하게 변주하고, 때론 강고하게 형성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당초의 연구는 이러한 기억의 여러 흐름과 그 기억이 발생하게 된 구체적인 맥락을 파악한 후, 이를 서사적 관점으로 꿰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실제, 초기 생애 자료에서 보이던 도술의 면모, 승려로서의 면모는 당시 정치ㆍ문화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사대부의 주류담론에 의해 지워지거나 비주류 담론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전기에 생산된 김시습의 생애자료를 보면, 그의 신이한 행적이라든가 독특한 행동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런 류의 기억은 점점 줄어들고 ‘절의의 상징’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전기에는 서거정, 남효온, 홍유손, 이세인, 이자, 유희령, 어숙권, 윤춘년, 이황, 이이, 이산해 등 기라성과 같은 조선의 문인들이 김시습에 대한 언급을 남겼음을 파악하고, 이들의 기록을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서거정과 같은 훈구관료문인은 김시습을 승려로 바라보았고, 남효온과 홍유손과 같은 신진사류이자 김시습을 師友로 여겼던 인물들은 유자로서 바라보았다. 이후 이세인이 김시습의 문집 편찬을 건의하고, 이자는 매월당집을 편찬하여 서문을 썼다. 유희령과 어숙권 역시 김시습에 대한 여러 논란을 기록하였으며, 윤춘년은 김시습을 공자에 빗대며 추앙하였다. 이후 이황은 색은행괴의 무리라고 혹평하기도 하였고, 이이는 심유적불로서 김시습의 유자로서의 마음과 절의를 집약하였다. 북인 계열의 이산해는 김시습의 선조의 명으로 매월당집의 서문을 작성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기자헌, 유몽인, 송시열, 윤증, 김수증, 박세당과 같은 문인들 뿐만아니라, 숙종과 영조ㆍ정조와 같은 군주들도 김시습에 대한 언급을 남겼다. 기자헌은 매월당시사유록을 편찬하면서 후서를 남겼고,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김시습 관련 일화를 여러 편 서술하였다. 이들은 북인계 문인으로서, 김시습에 대한 후대의 기억을 연구할 때, 그동안 전혀 다루어지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송시열은 서인의 영수 이이의 심유적불의 맥락을 이어받으면서 김시습을 배향한 동봉사를 건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며, 윤증은 송시열과 함께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청풍각기」를 지었다. 김수증 역시 노론계 문사로서 송시열의 맥락을 따르면서 김시습과 제갈량르 모신 유지당을 건립하였다. 박세당은 소론계 인물로서 김시습이 성종 시기 머물던 수락산에 은거하여 김시습을 추모하는 청일사를 건립하며, 김시습을 숭앙하는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숙종은 홍산의 동봉영당에 청절이라 사액하였으며, 김시습을 집의로 추증하였다. 그리고 영조 때 비로소 생육신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정해지기 시작하였으며, 정조는 장릉배식단을 만들고 정의제신 멤버에 김시습을 포함시키면서 생육신이자 절의의 화신으로서의 김시습을 국가적으로 공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