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과 특성 -『경상도지리지』와 『경상도속찬지리지』를 중심으로 -
Population status and Regional characteristics in Gyeongsangdo in the 15th Century - Focused on the 『Gyeongsangdojiriji』 and 『Gyeongsangdosokchanjiriji』-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 #40;B유형& #41;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연구과제번호 2020S1A5B5A17089250
선정년도 2020 년
연구기간 1 년 (2020년 09월 01일 ~ 2021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김보정
연구수행기관 부산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당대 관찬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경상도속찬지리지』를 중심으로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과 특성을 통하여 15세기 사회변동의 한 단면을 살펴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현 단계 조선전기 인구동향 연구는 관찬자료인 실록과 『세종실록』지리지를 근거로 하여, 통설적으로 조선전기 인구는 ①대략 550만~800만 명 정도로 추정하며, ②16세기 말까지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을 것이라고만 추측하고 있는 정도이다.
    필자는 관찬자료인 실록에 한정하지 않고 15세기 관찬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와 『경상도속찬지리지』등으로 자료를 확대하여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과 특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경상도지리지』는 세종 7년(1423) 경상감사 하연의 주도로 대구군사 금유, 인동현감 김빈에 의해 편찬된 지리지이다. 하지만 『세종실록』지리지의 저본인 『신찬팔도지리지』를 편찬 간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리지라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세종실록』지리지와 내용면에서 동일한 지리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된 시기를 보면 내용면에서 동일한 지리지로 보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호구(戶口)에서 『세종실록』지리지는 호(戶)와 남자의 인구만 서술된데 비해, 『경상도지리지』는 호(戶)와 남·녀의 인구를 모두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세종실록』지리지는 인구를 세는 단위가 없지만,『경상도지리지』는 인구를 세는 단위로 구(口), 정(丁), 명(名) 등 세 종류가 보인다. 둘째, 산성(山城)·읍성(邑城)에서 『세종실록』지리지는 산성·읍성의 둘레 길이(周尺)만 표시하고 있지만, 『경상도지리지』는 산성·읍성의 둘레 길이 이외에 읍성의 면적(內廣)도 나타내고 있다. 셋째,『세종실록』지리지는 군현제의 정비에 따라 흡수되거나 합병된 지역이 있지만,『경상도지리지』는 향·소·부곡이 아직 남아 있고 행정구역상에서는 존재하는 속현이지만 인구가 전혀 없는 말단 도서지역의 속현까지도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는『세종실록』지리지의 경상도편에서는 볼 수 없는 사례이다. 그러므로 『세종실록』지리지와 『경상도지리지』는 편찬목적이 다른 지리지임을 알 수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는 예종 1년(1469) 김해부사 이맹현, 경주교수 주백손, 성주교수 장계이, 안동교수 조욱 등에 의해 저술 편찬된 것으로 『경상도지리지』의 내용을 좀 더 인문지리적 측면으로 보안하고 있다. 이 역시 성종 8년(1477) 편찬 간행된『팔도지리지』의 일부이다. 이를 저본으로 하여 성종 12년(1481) 편찬 간행된 것이 『동국여지승람』이므로,『경상도속찬지리지』 역시『동국여지승람』과 내용적으로 동일한 지리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언(堤堰)이다. 제언은 15세기 수전 농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써 예종대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있는 내용이지만, 성종대 편찬된『동국여지승람』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는 편찬자의 편찬 목적이 반영된 경향도 있겠지만 당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경상도속찬지리지』 역시 『동국여지승람』과 내용적으로 동일한 지리지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경상도지리지』·『경상도속찬지리지』의 사료적 가치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이 두 자료를 분석 재조명하여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과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기대효과
  • 이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을 산출할 수 있다.
    1. 15세기 역사인구학 연구에서 당대 관찬지리지를 활용하여 인구현황을 추정한 연구방법론으로써 한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자료가 부족한 15세기의 경우 다양한 연구방법과 연구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세종실록』지리지에 비해 저평가된 『경상도지리지』를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이 연구는 조선전기 인구현황 연구에서 ‘지리지’류 의 자료를 적극 활용한 연구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
    2. 이 연구와 연계하는 방안으로 『경상도지리지』·『경상도속찬지리지』의 자료로서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역주본과 DB화가 가능하다.
    3. 이 연구를 통하여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지도를 만들 수 있다.
    4. 최근『세종실록』지리지는 각 항목을 세밀히 분석한 연구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나오고 있는데 비해, 『경상도지리지』는 거의 전무한 편이다. 두 지리지가 편찬목적과 편찬시기가 서로 다른 지리지이므로 『경상도지리지』의 각 항목별 연구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경상도지리지』의 사방계역조(四方界域條)를 유의해보면, 『경상도지리지』·『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모두 군현의 경계가 조금씩 다르다. 이는 각 지역 간 넓이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구, 생산량 등의 차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일정한 지역 내에서 각 군현의 사방계역이 달라지는 것은 군현 상호간의 증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후속 연구를 통하여 각 군현의 사방계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변화의 추이도 살펴볼 수 있다.
    5. 오늘날 사회적으로 출생률 저하에 따른 인구감소는 위기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과 특성을 통하여 조선전기 15세기의 인구정책을 살펴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써 왜구의 침입 및 전염병에 대처하는 방안, 기근에 대비한 진휼과 조세감면, 인구밀도에 따른 인구분산 및 인구이동, 토종약재의 생산, 노비의 산후 백일동안 휴가, 세쌍둥이를 출산하면 쌀·콩을 하사, 백세를 넘기고 죽은 사람의 자손에게도 쌀을 하사하는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반영되어 인문지리지로 전해지는 것이 『경상도지리지』·『경상도속찬지리지』 등이다. 그러므로 21세기의 현실에 맞게 조선전기 15세기의 인구정책을 롤모델 삼아서 응용한다면, 오늘날의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는데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연구요약
  • 연구 내용은 『경상도지리지』에 있는 군현 114곳의 호구조(戶口條)를 분석하여 인구현황 도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 등을 구분하여 인구분포, 인구구조와 지역적 특성 등을 살펴보는데 주안점을 두려고 한다. 이는 당시 도시와 농촌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인문적 특성은 『경상도속찬지리지』를 통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본문 내용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15세기 관찬 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와『경상도속찬지리지』의 자료 검토이다. 앞서 이미 밝힌 두 지리지의 사료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둘째, 『경상도지리지』 호구조를 통한 인구현황과 특성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① 인구현황, ② 인구분포, ③ 인구구조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①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을 보면 호가 가장 많은 상주목 인구(6397)는 김해도호부의 절반(13872)에도 못 미치고 있는 점이 자못 흥미롭다. 당시 상주목은 경상 감영이 있는 곳으로써 경상도 내의 가장 큰 도읍임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김해도호부의 절반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편, 경상도 지역에서 김해도호부의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적 특성은 무엇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② 경상도 지역의 인구분포이다. 경상도 지역 114곳의 평균 호당 구의 비율이 8.84인 점을 감안하면 상주목(3.47)은 인구분포가 매우 낮다. 한편, 전결당 구의 비율로 보면 상주목(2.40), 안동도호부(1.64), 경주유수부(1.61), 성주목(1.32), 진주목(1.07), 밀양도호부(0.93) 순으로 경상도의 평균 전결당 구의 비율이 1.73인 점을 감안하면 상주목이 월등히 높다. 반면 인구가 가장 많은 김해도호부(0.56)는 평균보다도 훨씬 낮다.
    여기서 호당 구의 비율, 전결당 구의 비율 등을 살펴볼 때 경상도 감영이 있는 상주목이 호당 인구 비율이 낮은 이유, 인구가 가장 많은 김해도호부가 전결당 구의 비율이 낮은 이유, 반면 상주목이 전결당 구의 비율 가장 높은 이유 등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③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구조를 보면 남·녀 성비 구조에서 5,000구 이상은 지역적인 차이가 없지만 4,000구 이상에서는 지역적 차이가 나타난다. 전체에서 남·녀 구조의 비율에서 1,000구 이상 심하게 차이가 나는 곳은 경주도의 현풍군(여초지역), 상주도의 금산군(남초지역) 등이 있다. 이러한 남·녀 성비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의문점은 그 지역적․인문적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경상도지리지』 보다도 좀 더 인문지리적 성격이 강한 『경상도속찬지리지』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경상도 지역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경상좌도인 안동도, 경주도와 경상우도인 상주도, 진주도로 구분되고 있다. 지리적 요소인 낙동강을 중심으로 대비되는 성향은 익히 알려져 있는 바로서, 관찬지리지를 통하여 구체적인 지역적․인문적 특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인구는 한 국가 혹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적 요인으로써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 한 시대의 사회적 변동의 기저에는 인구의 증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특히 생산 가능인구의 증감은 한 국가, 한 시대의 경제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본 연구에서는 조선 초기 관찬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를 중심으로 하여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과 특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존하는 관찬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의 자료적 가치를 재조명하였다. 그동안 『세종실록』지리지의 편찬과정에서 만들어진 지리지라는 이유로 저평가되어 왔던 인식에서 벗어나 현존하는 『경상도지리지』는 독자적인 지리지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종 14년에 새로 편찬된 『팔도지리지』의 일부인 『경상도지리지』는 서문이 없는 형태로 춘추관에 보내진 것이라면, 이후 경주본영에 비치된 『경상도지리지』는 서문을 갖춘 지리지로서 편찬목적이 다르다고 본다. 또한 편찬자들의 정치성향을 보면 그들은 태종 후반 시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세력들로 고려 말기 정몽주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경상도지리지』는 『세종실록』지리지와는 편찬내용에서 다른 부분들이 있는 것이며, 그 가운데서도 호구를 중심으로 보면 『경상도지리지』는 남녀 인구를 모두 기재하였지만 『세종실록』지리지는 남정(男丁)만을 기재하고 있다.
    둘째, 이를 바탕으로 하여 현존하는 『경상도지리지』에 기재되어 있는 군현 114곳의 호구조(戶口條)를 중심으로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과 특성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하여 보면 경상도 지역의 호는 42,221호이며, 남자 인구는 172,174구, 여자 인구는 182,895구로서 총합이 355,069구로 추정할 수 있다. 1호당 구수는 8.41구이며 남녀 성비는 평균 94,14로 여초 현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각 군현의 호와 구를 분석하여 인구분포, 인구구조를 지도상으로 도식화하였다. 경상도 지역에서 호가 가장 많은 곳은 상주목(1,845호)이며, 남녀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김해도호부(13,872구)이다. 반면에 1호당 구수가 가장 많은 곳은 안동도이며, 그 가운데 영해도호부의 속현인 영양현(25.65)이다. 남녀 성비에서 남초 현상이 가장 심한 곳은 대구군의 속현인 하빈현(152,69)이며, 여초 현상이 가장 심한 곳은 상주목의 속현인 증모현(22.32)이다.
  • 영문
  • Population is an important factor as a basic factor that constitutes a country or society. Therefore, the basis of social fluctuations in a country or era is closely related to the increase or decrease of the population, especially the increase or decrease of the working age population has a profound effect on the economic development of a country or era.
    With this in mind, this study investigated the population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Gyeongsangdo in the 15th century, focusing on Gyeongsangdojiriji (the Geographical Description of Gyeongsangdo)a government-sponsored geography in the early Chosun Dynasty. The summary of the results is as follows.
    First, the data value of Gyeongsangdojiriji, the existing official geography, was re-examined. The existing Gyeongsangdojiriji should be evaluated in terms of independent geography, breaking away from the perception that it has been undervalued because it was created in the process of compiling Sejongsillokjiriji(the Geographical Description of the Annals of King Sejong). If Gyeongsangdojiriji, a part of the newly compiled paldojiriji(the Geographical Description of the early Chosun Dynasty) in the 14th year of King Sejong, was sent to Chunchugwan in the form of no preface, Gyeongsangdojiriji, which was later placed in Gyeongju, is considered to have a different purpose of compilation. In addition, looking at the political tendencies of the compilers, they are newly emerging forces in the late Taejong period and are directly or indirectly related to Jeong Mong-ju in the late Goryeo Dynasty. Therefore, the existing Gyeongsangdojiriji contains different parts from Sejongsillokjiriji, and among them, Gyeongsangdojiriji contains both male and female populations, but only male populations is written in Sejongsillokjiriji.
    Second, based on this, the population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Gyeongsangdo in the 15th century were examined, focusing on the arc structures of 114 counties and prefectures listed in the existing Gyeongsangdojiriji. From this, the number of households in Gyeongsangdo is 42,221, with a male population of 172,174 and a female population of 182,895, which can be estimated to be 355,069 in total. The number of districts per unit is 8.41, and the gender ratio for men and women is 94,14, showing a female-dominated phenomenon. In addition, the population distribution and demographic structure were schematized on a map by analyzing the pen names and districts of each county and prefecture. Sangjumok has the largest number of households in Gyeongsangdo, and Gimhaedohobu has the largest male and female population. On the other hand, Andongdo has the largest number of districts per unit, of which Yeongyanghyeon in Yeonghaedohobu. The most severe male and female gender ratio is Habinhyeon in Daegugun, and Jeungmohyeon in Sangjumok, the most severe female-dominated phenomen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인구는 한 국가 혹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적 요인으로써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 한 시대의 사회적 변동의 기저에는 인구의 증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특히 생산 가능인구의 증감은 한 국가, 한 시대의 경제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본 연구에서는 조선 초기 관찬지리지인 『경상도지리지』를 중심으로 하여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현황과 특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존하는『경상도지리지』는 서문을 갖추고 있는 독자적인 지리지로서 『세종실록』지리지와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경상도지리지』의 편찬자들은 고려말기 정몽주와 관련된 인물들이며, 모두 경상도 지역 출신들로서 특히, 하연은 경상도 지역의 지리지 편찬을 위해 경상도도관찰사로 제수된 인물이다. 다음, 「경상도지리지서」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처음 담당관청인 춘추관 이외에 예조가 함께 담당하는 과정에서 지리지 편찬의 규식에 변화가 왔고, 이는 전적으로 세종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경상도지리지』는 세종이 편찬하고자 했던 전형적인 지리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상도지리지』에 대한 재평가와 아울러 사료적 가치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경상도지리지』에 수록되어 있는 114곳의 각 군현별 호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먼저 개괄적인 총론으로 보면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총 인구는 대략 355,069구인데 그 가운데 남자인구는 172,174구, 여자인구는 182,895로 추정된다. 1호당 구수는 8.4구이며, 남녀의 성비는 평균 94.14로 여초 현상이 나타난다. 다음, 각 군현별로 살펴보면 호는 상주목이 가장 많았으며, 남녀 총인구는 김해도호부가 가장 많았다. 1호당 구수가 가장 많은 곳은 영해도호부의 영양현이었으며, 특히 상주목은 지역적 넓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1호당 구수가 적었다. 남초 지역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군의 속현인 하빈현이었으며, 여초 지역이 가장 높은 곳은 상주목 속현인 증모현이었다. 특히 남녀 인구가 1,000호 이상이 차이나는 곳으로 남초 지역의 김산군과 여초 지역의 현풍현을 들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15세기 역사인구학 연구에서 당대 관찬지리지를 활용하여 인구현황을 추정한 연구방법론으로써 한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자료가 부족한 15세기의 경우 다양한 연구 방법과 연구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세종실록』지리지에 비해 저평가된 『경상도지리지』를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이 연구는 조선전기 인구현황 연구에서 ‘지리지’류 의 자료를 적극 활용한 연구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
    2) 이 연구와 연계하는 방안으로 『경상도지리지』·『경상도속찬지리지』의 자료로서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역주본과 DB화가 가능하다. 그러면 더 많은 후학들이 자료를 쉽게 접근하여 활용할 수 있다.
    3) 이 연구를 통하여 15세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지도를 만들 수 있다.
    4) 최근『세종실록』지리지는 각 항목을 세밀히 분석한 연구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나오고 있는데 비해, 『경상도지리지』는 거의 전무한 편이다. 두 지리지가 편찬목적과 편찬시기가 서로 다른 지리지이므로 『경상도지리지』의 각 항목별 연구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경상도지리지』의 사방계역조(四方界域條)를 유의해보면, 『경상도지리지』·『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모두 군현의 경계가 조금씩 다르다. 이는 각 지역 간 넓이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구, 생산량 등의 차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일정한 지역 내에서 각 군현의 사방계역이 달라지는 것은 군현 상호간의 증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후속 연구를 통하여 각 군현의 사방계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달라진 원인은 무엇이며, 그 변화의 추이도 살펴 볼 수 있다.
    5) 오늘날 사회적으로 출생률 저하에 따른 인구감소는 위기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 연구를 통하여 조선전기 15세기의 인구정책을 살펴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왜구의 침입 및 전염병에 대처하는 방안, 기근에 대비한 진휼과 조세감면, 인구밀도에 따른 인구분산 및 인구이동, 토종약재의 생산, 노비의 산후 백일동안 휴가, 세쌍둥이를 출산하면 쌀·콩을 하사, 백세를 넘기고 죽은 사람의 자손에게도 쌀을 하사하는 등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이러한 정책들이 반영되어 인문지리지로 전해지는 것이 『경상도지리지』·『경상도속찬지리지』이다. 그러므로 21세기의 현실에 맞게 조선전기 15세기의 인구정책을 롤모델 삼아서 응용한다면, 오늘날의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는데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색인어
  • 『경상도지리지』, 경상도, 인구, 하연, 『세종실록』지리지, 정몽주, 변계량, 금유, 김빈.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