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인들은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정치의 場으로 종종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과 같은 SNS 플랫폼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SNS 상의 프로필 사진이나 소개 글을 보면 종종 당사자의 정치 철학이나 현안 또는 현재의 정치적 ...
최근 정치인들은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정치의 場으로 종종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과 같은 SNS 플랫폼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SNS 상의 프로필 사진이나 소개 글을 보면 종종 당사자의 정치 철학이나 현안 또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나 심경 등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를 통해 정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어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전 근대 시기의 정치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백성과 소통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였을까? 조선왕조『열성어필(列聖御筆)』을 살펴보면 당시 정치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역대 제왕들의 서체 속에 정치 철학이나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으며, 소위 요즘 말하는 정치인들의 SNS “프사”처럼 위정자(爲政者)의 정치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시각적인 장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는 왕도 정치를 이끌면서 역대 선왕들의 위엄과 왕실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열성어필』의 간행 또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었고, 당시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이미지를 구축함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열성어필』의 간행 과정과 체재 등을 검토한 후『열성어필』에 실린 중국 고전 시문을 정리 분석하여 중국의 고전이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강조했던 조선 시대 문화의 정수(精髓)라고 말할 수 있는 국왕의 문예 활동에 끼친 영향과 그 의의를 살펴보고,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살아오면서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보편적인 가치와 사고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한중(韓中) 문화의 상호 교류와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편 전 근대 시기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이미지가 문예 활동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활용되었으며, 이러한 이미지 정치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열성어필』은 조선 태조부터 경종에 이르는 역대 국왕의 어필을 모아 판각한 법첩(法帖, 서체 교본)으로, 조선 후기 17~18세기에 걸쳐 석판본과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1725년에 간행된『열성어필』석판본에는 태조(4면), 문종(4면), 세조(2면), 성종(6면), 인종(3면), 명종(1면), 선조(9면), 원종(3면), 인조(6면), 효종(18면), 현종(8면), 숙종(29면), 경종(9면)에 이르는 13대의 글씨가 수록되어 있고, 분량은 총 102면이다. 한편, 1725년『열성어필』목판본에는 선조(53장), 인조(4장), 효종(14장), 현종(7장), 숙종(22장), 경종(2장)에 이르는 6대의 글씨가 수록되어 있으며, 분량은 총 102장이다. 이러한『열성어필』의 간행 전통은 정조 이후로 계승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열성어필』을 통해 조선왕조 역대 국왕의 자취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열성어필』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국내와 해외의 몇몇 학자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열성어필』에 실려 있는 중국 고전 시문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예를 들면, 국내 학계에서는 이완우의『朝鮮王朝의「列聖御筆」刊行』과『조선후기「列聖御筆」의 刊行과 廣布』, 일본학자 川西裕也의『「國朝列聖御筆」所載 조선 초기 국왕문서: 太祖代 官敎와 世祖代 免役敎旨』, 황정연의『朝鮮後期 宮中 御筆 收藏과 印刊』, 김정남의『조선조 御筆에 관한 연구』와『조선조「實錄」에 나타난 御筆 형성에 관한 서예적 고찰』, 양영술의『正祖御筆의 儒家 미학적 고찰』, 이경창의『정조대왕의 御筆 연구』, 임영란의『조선시대 御筆 연구 (영, 정조를 중심으로)』, 정석범의『康雍乾 시대 大一統 정책과 시각 이미지』등의 논문이 보고되었으며, 해외 학계에서는 중국학자 馬順平의『明太祖御筆代筆考』와『明太祖傳世法書考』, 劉光啓의『康熙御筆朱子詩考析』, 賀電『康熙皇帝書法政治功能探析』, 絲寶藝術館『乾隆御書』, 梁繼『張照與康雍乾三代帝王的書法交往』, 陳佳『淸代朝廷書硏究法』, 劉迪『淸乾隆朝內府書畫收藏』등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열성어필』의 간행 과정과 체재 등을 검토하고『열성어필』에 실린 중국 시문을 정리 분석하여 중국의 고전 시문이 조선 시대 국왕의 문치주의 사상 및 문예 활동에 끼친 영향과 의의 그리고 더 나아가 전 근대 시기 위정자들이 시각적인 방식의 문예 활동을 통해 정치적인 이미지를 구축함에 있어서 중국의 고전 시문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얻어진 성과물을 한문과 중국어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