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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열성어필』에 실린 중국 고전 시문을 통해 살펴본 이미지 정치학
Image Politics Viewed in Chinese Classical Poetry and prose in Yeolseong-eopil (The Collection of Calligraphic Writings by the Kings of Joseon Dynast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B유형)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연구과제번호 2020S1A5B5A17089390
선정년도 2020 년
연구기간 1 년 (2020년 09월 01일 ~ 2021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소주영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최근 정치인들은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정치의 場으로 종종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과 같은 SNS 플랫폼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SNS 상의 프로필 사진이나 소개 글을 보면 종종 당사자의 정치 철학이나 현안 또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나 심경 등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를 통해 정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어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전 근대 시기의 정치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백성과 소통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였을까? 조선왕조『열성어필(列聖御筆)』을 살펴보면 당시 정치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역대 제왕들의 서체 속에 정치 철학이나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으며, 소위 요즘 말하는 정치인들의 SNS “프사”처럼 위정자(爲政者)의 정치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시각적인 장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는 왕도 정치를 이끌면서 역대 선왕들의 위엄과 왕실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열성어필』의 간행 또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었고, 당시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이미지를 구축함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열성어필』의 간행 과정과 체재 등을 검토한 후『열성어필』에 실린 중국 고전 시문을 정리 분석하여 중국의 고전이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강조했던 조선 시대 문화의 정수(精髓)라고 말할 수 있는 국왕의 문예 활동에 끼친 영향과 그 의의를 살펴보고,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살아오면서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보편적인 가치와 사고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한중(韓中) 문화의 상호 교류와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편 전 근대 시기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이미지가 문예 활동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활용되었으며, 이러한 이미지 정치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열성어필』은 조선 태조부터 경종에 이르는 역대 국왕의 어필을 모아 판각한 법첩(法帖, 서체 교본)으로, 조선 후기 17~18세기에 걸쳐 석판본과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1725년에 간행된『열성어필』석판본에는 태조(4면), 문종(4면), 세조(2면), 성종(6면), 인종(3면), 명종(1면), 선조(9면), 원종(3면), 인조(6면), 효종(18면), 현종(8면), 숙종(29면), 경종(9면)에 이르는 13대의 글씨가 수록되어 있고, 분량은 총 102면이다. 한편, 1725년『열성어필』목판본에는 선조(53장), 인조(4장), 효종(14장), 현종(7장), 숙종(22장), 경종(2장)에 이르는 6대의 글씨가 수록되어 있으며, 분량은 총 102장이다. 이러한『열성어필』의 간행 전통은 정조 이후로 계승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열성어필』을 통해 조선왕조 역대 국왕의 자취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열성어필』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국내와 해외의 몇몇 학자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열성어필』에 실려 있는 중국 고전 시문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예를 들면, 국내 학계에서는 이완우의『朝鮮王朝의「列聖御筆」刊行』과『조선후기「列聖御筆」의 刊行과 廣布』, 일본학자 川西裕也의『「國朝列聖御筆」所載 조선 초기 국왕문서: 太祖代 官敎와 世祖代 免役敎旨』, 황정연의『朝鮮後期 宮中 御筆 收藏과 印刊』, 김정남의『조선조 御筆에 관한 연구』와『조선조「實錄」에 나타난 御筆 형성에 관한 서예적 고찰』, 양영술의『正祖御筆의 儒家 미학적 고찰』, 이경창의『정조대왕의 御筆 연구』, 임영란의『조선시대 御筆 연구 (영, 정조를 중심으로)』, 정석범의『康雍乾 시대 大一統 정책과 시각 이미지』등의 논문이 보고되었으며, 해외 학계에서는 중국학자 馬順平의『明太祖御筆代筆考』와『明太祖傳世法書考』, 劉光啓의『康熙御筆朱子詩考析』, 賀電『康熙皇帝書法政治功能探析』, 絲寶藝術館『乾隆御書』, 梁繼『張照與康雍乾三代帝王的書法交往』, 陳佳『淸代朝廷書硏究法』, 劉迪『淸乾隆朝內府書畫收藏』등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열성어필』의 간행 과정과 체재 등을 검토하고『열성어필』에 실린 중국 시문을 정리 분석하여 중국의 고전 시문이 조선 시대 국왕의 문치주의 사상 및 문예 활동에 끼친 영향과 의의 그리고 더 나아가 전 근대 시기 위정자들이 시각적인 방식의 문예 활동을 통해 정치적인 이미지를 구축함에 있어서 중국의 고전 시문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얻어진 성과물을 한문과 중국어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하도록 하겠다.
  • 기대효과
  • 1) 학문적 기여
    본 연구를 통해서 중국의 고전 시문이 조선 시대『열성어필』에 끼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될 것이며,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한중(韓中) 양국 간의 상호적인 문화교류와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중문화 교류사에 있어서의 의의를 밝히고 이에 대한 연구도 촉발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에서 전래된 역대 제왕이나 성현들의 묵적(墨蹟)을 왕에게 진상(進上)하여 이를 모각(模刻)하거나 중국 역대 문장가들의 시문 작품을 서사(書寫)하고 진상하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사례가 조선 시대에 열성어필을 간행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첩의 간행은 조선 시대의 문화 수준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조선 왕실에서 글쓰기는 마음과 인격을 다스리고, 생각과 감정을 생생한 이미지로 보여주었던 문예활동이었다. 이러한 문예활동에 있어서 중국의 고전 시문이 끼친 영향과 의의를 살펴보는 것도 우리의 전통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 사회적 기여
    조선의 최상류 문화를 보여주었던 왕실에서는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던 중국의 고전 시문을 선발하여 선집이나 개인 문집 등으로 집대성하여 선진문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문풍(文風)과 문화를 이끌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의 역대 국왕들은 문풍(文風)이 세교(世敎)와 직결된다고 보아 문교(文敎)에 더욱 치중하였는데, 특히 시문을 통한 정치적 의사전달 방식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외교나 정치 활동에 있어서 중국의 고전 시문을 인용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심오하고 무게 있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종종 인용하였던 고전 시문은 예술적인 영역을 뛰어넘어 소통과 대화의 기술로 활용되면서 사회 정치적인 기능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설적인 화법이 만연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詩以言志” (시로 뜻을 말한다)라는 말처럼 은유와 완곡한 표현 방식의 고전 시문을 활용한다면 좀 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커뮤니케이션 화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 근대 시기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이미지가 시각적인 문예 활동을 통해 재현되고 활용되었듯이, 이러한 이미지 정치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3) 교육적 기여
    본 연구는 한문학과 중문학을 접목한 새로운 내용의 강의 커리큘럼을 기획하고, 한문 또는 중국어 교육에 있어서 상호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외국어로서의 중국어 교육 및 학습에 있어 한문 교육은 학습자의 학습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계는 한문 교육과 중국어 교육이 분리 운영되고 있는 실정인지라 동일한 학문 분야 간의 연대성이 떨어지고 있어 문학 및 어학 교육으로서의 중국 고전 시문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인접 학문으로서의 한문과 중국어 교육의 정체성 확립 및 동일한 학문 분야 간의 연대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문(漢文)은 중국에서 고문(古文)으로 불리고 있으며, 중국어 교육은 현대 한어 즉 中文(현대의 중국인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 교육을 말한다. 연원은 같지만 시대를 달리하고 있는 두 언어(문자)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옛 선현들의 사상과 정서가 담긴 고전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특히, 한자는 우리에게 문자가 없었을 당시에 차용한 문자였기에 우리 선조들의 생활방식이나 사유체계를 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즉 한문을 모르고서는 역사 문화적인 상식을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는 왕도 정치를 이끌면서 역대 선왕들의 위엄과 왕실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列聖御筆』의 간행 또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는데, 어필의 내용이 훈유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열성의 어필을 보고 배울 수 있는 학습서의 역할도 하였기에 후대의 한자와 서체 교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전통 시기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긴 문화는 대부분 한자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문이 익숙하지 않은 오늘날 우리들이 그 묘미를 터득하는 건 쉽지 않다. 한문과 중문(중국어)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본 연구를 통해 한자 문화의 전통적인 의미를 현대인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흥미롭게 다가가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연구요약
  • 1) 연구 대상 및 범위
    어필(御筆)은 국왕의 필적을 말하는데, 신필(宸筆), 신한(宸翰) 등으로도 불린다. 어필은 국왕이 남긴 글씨의 품격을 전해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조선 왕실에서는 국왕이 승하하면 새 국왕은 선왕의 존호(尊號)를 올리고 실록과 어제, 어필을 간행하여 규장각의 봉모당(奉謨堂)에 봉안(奉安)하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등 전란으로 인해 많이 소실되자, 17세기 이후 역대 국왕의 어필을 다시 수집하여『열성어필』을 간행하였다.『열성어필』은 종친이 주도가 되어 승정원(承政院)이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한 간본(刊本)을 인수하여 신하들에게 하사품이나 교육용으로 배포하면서 일반화되었다. 특히,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은 아버지인 선조의 어필만을 모아『선묘어필(宣廟御筆)』을 간행하였는데, 이는『열성어필』의 시발점이 된다.
    『열성어필』은 조선 태조부터 경종에 이르는 역대 국왕의 어필을 모아 판각한 법첩(法帖, 서체 교본)으로, 조선 후기 17~18세기에 걸쳐 석판본과 목판본이 다수 간행되었다. 최초의『열성어필』은 1662년(현종 3년)에 문종, 세조, 성종, 인종, 명종, 선조, 원종, 인조, 효종 등 9대의 국왕 어필을 모아 간행한 석판본이다. 그 후로도 어필에 대한 지속적인 수집과 정리, 편찬을 통해 다양한 판본의『열성어필』이 간행되었다. 1679년(숙종 5년), 1722년(경종2년), 1725년(영조1년)에 각각 선대 국왕(현종, 숙종, 경종)의 어필을 더해 목판본과 석판본이 간행되었고, 특히 1725년에는 태조의 어필이 더해져『열성어필』의 면모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1725년(영조 1년)에 마지막으로 간행된『열성어필』은 목판본과 석판본 두 가지 판본이 있으며, 현재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목,석판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석판본) 등에 소장되어 있다. 위의 두 가지 판본에 수록된 어필은 서로 중복되지 않아 역대 왕들의 다양한 어필을 보여주고 있으며,『열성어필』의 면모를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에 본 연구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목판본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석판본 등 두 가지 판본을 연구 대상으로 한정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아래와 같은 목차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다.

    2) 연구 방법 및 내용 (목차 포함)
    1. 머리말 (연구대상 및 범위)
    2. 조선왕조 열성어필 소개
    (1) 열성어필 간행 현황
    (2) 열성어필 체재 분석 (어필 출처, 내용 분석, 서사 배경)
    3. 열성어필(1725년 석, 목판본) 에 실린 중국 고전 시문 분석
    (1) 국왕별 중국 고전 시문 분포 현황 및 원문 출처
    (2) 국왕별 중국 고전 시문 내용 분석 및 서사 배경
    (3) 국왕별 중국 고전 시문 활용 및 정치적 이미지 분석
    5. 맺음말 (연구결과의 기대효과와 교육연계 활용방안)

    선행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편찬 과정과 체재에서는 간행연도와 판본 현황, 국왕별 중국 시문 편수 등을 살펴보고,『열성어필』에 실린 중국 시문 분석에서는 국왕별 중국 시문 분포 현황과 원문 출처, 내용 분석 및 서사 배경 그리고 더 나아가 국왕별로 정치적 이미지를 구축함에 있어서 중국의 고전 시문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대해 다각도로 고찰하고자 한다.

    3) 연구 추진 전략과 방법
    1.『열성어필』텍스트 원전(原典) 및『열성어필』수록 중국 고전 시문 관련 자료 확보
    본 연구에서는 앞에서 제시한 자료 외에도 더 많은 자료들을 확보하고 이를 활용함으로써 중국 고전 시문이『열성어필』을 포함한 조선 왕실의 문예활동에 끼친 영향과 그 양상을 더욱 폭 넓게 고찰하고자 한다.
    2.『열성어필』및『열성어필』수록 중국 고전 시문 관련 연구 성과 수용
    본 연구는 한문학과 중문학을 접목한 “학제간 연구”로,『열성어필』을 대상으로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이해를 넓히기 위하여 지식융합 시대에 걸 맞는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수용하고자 한다.
    3. 전문가의 자문
    본 연구에서 수행할 내용인『열성어필』수록 중국 시문에 대한 고찰을 통해 중국의 고전 문학이 조선 시대 국왕의 문예활동에 끼친 영향 및 그 의의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 관련 분야 연구자들의 견해를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선 국왕의 문예활동에 있어서 중국의 고전 문학이 끼친 영향 관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다양한 견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학계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본 연구가 한 방향으로 편협되지 않고 다각도로 진행되어 학계에서 공인하는 연구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열성어필』의 간행 과정과 체재 등을 검토한 후,『열성어필』에 실린 중국 시문을 정리 분석하여 중국의 고전이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강조했던 조선 시대 문화의 정수(精髓)라고 말할 수 있는 국왕의 문예활동에 끼친 영향과 그 의의를 살펴보고,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살아오면서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보편적인 가치와 사고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한중(韓中) 문화의 상호 교류와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한편, 전 근대 시기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이미지가 문예활동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활용되었으며, 이러한 이미지 정치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1725년(영조 1년)에 마지막으로 간행된『열성어필』목판본과 석판본에 수록된 어필은 서로 중복되지 않아 역대 왕들의 다양한 어필을 보여주고 있어『열성어필』의 면모를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에 본 연구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목판본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석판본 등 두 가지 판본을 연구대상으로 한정하여 살펴보았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1. 1725년 목판본 『열성어필』 수록 중국 고전 시문 정리 및 해석
    2. 1725년 석판본 『열성어필』 수록 중국 고전 시문 정리 및 해석
    3. 『열성어필』수록 역대 국왕의 서체 특징 및 중국 고전 시문 분석
    4. 『조선왕조실록』 中 『열성어필』수록 중국고전시문 저자 관련 기록
    5. 본 연구 과제 관련 기존 연구 성과에 대한 고찰

    본 연구는 위와 같은 단계별 연구 수행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 및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열성어필』에 수록된 중국 고전 시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송 시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효경』,『상서』,『주역』과 같은 유교 경전의 내용도 일부분 실려 있다. 이러한 중국의 시문 작품들을 살펴보면, 크게 개인적인 심회를 토로한 작품, 자연 경물에 대한 감상, 유교 경전 내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어필은 형식적으로는 단순히 글씨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국왕의 개인적인 생각과 사상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등을 내포하고 있다. 아울러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爲政者로서의 정치적인 이미지도 함께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조선 국왕의 글쓰기는 크게 기록의 수단, 수양의 방법, 심미의 대상으로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즉, 학습 과정에서 경전과 시문을 기록하는 일에서부터 각종 공문서나 서신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였고, 글씨를 쓰면서 정신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역할도 하였다. 단순한 글쓰기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써 고상한 심미 취향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의 경전이나 시문 작품들이 다양한 서체를 통해 쓰여지기도 하였다.
    셋째, 어필은 시대적인 상황과 국왕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심미적인 특징을 다양하게 표출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사의적(寫意的) 예술로써 국왕의 어필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살펴보았고, 국왕의 생각과 의식이 잠재되어 표출된 이미지(意象)로써도 어필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열성어필』에 실려 있는 역대 국왕의 개성이 담긴 서체를 통해 정치적인 이미지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조선 역대 왕들의 글씨체는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으로서 군왕의 면모와 정치적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어 글씨를 매개로 그들의 마음과 교감할 수 있다.

    중심어: 열성어필, 서예, 중국시문, 정치 이미지, 어제, 어필, 문치주의, 유교사상
  • 영문
  • This study examines the publication process and format of 『Yeolseong-Eopil (the several Kings Handwriting) 』 of th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previous research results, and then organizes and analyzes Chinese poetry and prose published in 『Yeolseong-Eopil』 to establish the Chinese classic of munchiism.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influence and significance of the King's literary and artistic activities, which can be said to be the essence of the culture of the Joseon Dynasty that was emphasized. While we belong to the same Chinese character culture have been living in the past and present, we confirm that we share universal values and ideas regardless of era and region, while further exploring the direction of mutual exchange and development of Korean-Chinese culture. On the other hand, I tried to examine how the political images of the rulers in the pre-modern period were reproduced and utilized through literary activities and that these image politics are being used in various ways even in the present day.
    The Kings Handwriting recorded in the woodblock version and stone tablets version of 『Yeolseong-Eopil』, last published in 1725 (the 1st year of King Yeongjo) do not overlap with each other showing various handwriting of successive kings. In this study, two editions were examined by limiting the study subjects: a woodblock version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nd a lithographic version from JangSeogak from the Central Research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This study was conducted with the following contents.
    1. Arrangement and Interpretation of Classical Chinese poetry and prose in the 1725 Woodblock version 『Yeolseong-Eopil』
    2. Arrangement and Interpretation of Classical Chinese poetry and prose in the 1725 Lithographic version 『Yeolseong-Eopil』
    3. Analysis of font characteristics of successive kings and classical Chinese poetry and prose in 『Yeolseong-Eopil』
    4. Records related to authors of classic Chinese texts from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5. A review of existing research results related to this research project
    In this study, the following contents and results were derived through the above step-by-step research process.
    The First was looking at the contents of classical Chinese poetry and prose in 『Yeolseong-Eopil』, Chinese Tang Song period poetry and prose accounts for the majority and some of the contents of Confucian scriptures such as 『XiaoJing』, 『ShangShu』 and 『ZhouYi』 are also included. Looking at these Chinese poetry and prose works, they can be divided into works that express personal feelings, appreciation of natural wonders and contents of Confucian scriptures. The Kings Handwriting simply shows a calligraphic style, but in the content it contains the king's personal thoughts as well as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s. In addition, although it does not appear directly, it can be seen that the political image as a wise man is also revealed.
    The Second was the Handwritings of the King of Joseon dynasty were widely used as a means of recording, a method of discipline and an object of aesthetics. In other words, it was widely used in the learning process from writing scriptures and poetry and prose to various official documents and correspondence. He pursued a noble aesthetic taste by pursuing not only simple writing but also beauty. In this process, Chinese scriptures and poetry were written in various fonts.
    The Third was the King󰡑s Handwriting expresses various aesthetic characteristics according to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s and the personal taste of the king. As a private art that reveals the human heart, the King󰡑s Handwriting was looked at in terms of content and the King󰡑s Handwriting was also looked at as an image in which the king's thoughts and consciousness were latent. In this sense, it was very important to examine the political image through the typefaces containing the individuality of the successive kings in 『Yeolseong-Eopil』. The fonts of the kings of the Joseon Dynasty all have their own beauty and personality. And it contains good contents to understand the aspect of the king as a human being and his political image, so he can communicate with their minds through writing.

    key word : Yeolseong-Eopil, the several King󰡑s Handwriting, calligraphy, Chinese poetry, Chinese prose, political image, literaryism, Confucianis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왕조 『열성어필』의 간행 과정과 체재 등을 검토한 후 『열성어필』에 실린 중국 시문을 정리 분석하여 중국의 고전이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강조했던 조선 시대 문화의 정수(精髓)라고 말할 수 있는 국왕의 문예활동에 끼친 영향과 그 의의를 살펴보고,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살아오면서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보편적인 가치와 사고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한중(韓中) 문화의 상호 교류와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한편, 전 근대 시기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이미지가 문예활동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활용되었으며, 이러한 이미지 정치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단계별 연구수행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 및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열성어필』에 수록된 중국 고전 시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송 시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효경』, 『상서』, 『주역』과 같은 유교 경전의 내용도 일부분 실려 있다. 특히, 석판본과 목판본 모두 앞부분의 어필에서 당송 시문이 많이 실려 있는데, 석판본의 경우 문종, 성종, 선조, 현종의 어필에서 당송 시문이 보이며, 목판본의 경우에는 선조와 인조의 어필 대부분이 당송 시문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시문 작품들을 살펴보면, 크게 개인적인 심회를 토로한 작품, 자연 경물에 대한 감상, 유교 경전 내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유교 성리학을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이끌어온 조선왕조의 국왕은 당시 사회 문화의 중심이었으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러한 국왕의 대표적인 상징물의 하나이자 의사 표현 수단이 바로 어필이었다. 어필은 형식적으로는 단순히 글씨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국왕의 개인적인 생각과 사상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등을 내포하고 있다. 아울러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爲政者로서의 정치적인 이미지도 함께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어필은 크게 국왕의 순수 창작물인 “御製 (국정운영의 수단으로 활용된 어제와 문학적인 창작물로서의 어제 등을 모두 포함)”와 단순히 취미활동 및 도덕적 수양의 도구로써 다른 사람의 시문을 그대로 필체로 옮긴 “御筆”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조선 국왕의 글쓰기는 크게 기록의 수단, 수양의 방법, 심미의 대상으로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즉, 학습 과정에서 경전과 시문을 기록하는 일에서부터 각종 공문서나 서신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였고, 글씨를 쓰면서 정신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역할도 하였다. 단순한 글쓰기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써 고상한 심미 취향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의 경전이나 시문 작품들이 다양한 서체를 통해 쓰여지기도 하였다.
    셋째, 어필은 시대적인 상황과 국왕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심미적인 특징을 다양하게 표출하고 있다. 중국 청말(淸末)시기 학자 유희재(柳熙載)의 『書槪』에 등장하는 “書如其人(글씨가 곧 사람이다)”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사의적(寫意的) 예술로써 국왕의 어필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살펴보았고, 국왕의 생각과 의식이 잠재되어 표출된 이미지(意象)로써도 어필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열성어필』에 실려 있는 역대 국왕의 개성이 담긴 서체를 통해 정치적인 이미지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조선 초에는 고려 말에 유입된 원대 조맹부 송설체의 영향을 받아 유려하고 정제된 필체를 보여주었으며, 선조부터 영조에 이르기까지 조선 중기에는 중국 동진 시대 왕희지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서체가 어우러지게 된다. 그러다 정조 이후부터는 중국 당송 시대의 서체를 수용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조선 왕실 서예의 절정은 정조시기로, 이 시기가 지나면서 조선 왕실의 문예 풍격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또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조선 역대 왕들의 글씨체는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으로서 군왕의 면모와 정치적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어 글씨를 매개로 그들의 마음과 교감할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 결과의 활용 방안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학문적 기여
    본 연구를 통해서 중국의 고전 시문이 조선 시대 『열성어필』에 끼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될 것이며,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한중(韓中) 양국 간의 상호적인 문화교류와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중 문화 교류사에 있어서의 의의를 밝히고 이에 대한 연구도 촉발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사회적 기여
    국왕의 어필이 대를 이어 간행되었던 이유는 선왕의 뜻을 받들기 위함이었다. 영조가 자신의 어필을 간행하면서 “지금 내가 문(文)과 필(筆)에 대해 이렇게 열심인 것은 어찌 나를 위함이겠는가? 그 뜻은 선왕(先王)을 거듭 이어감에 있다."라고 하였듯이, 조선왕조는 글과 예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문치와 예치의 나라였다. 고전에는 옛 선현들의 공통된 지혜와 경험이 녹아 있다. 고전 학습을 통해 전통 사상과 문화를 배우고 공유할 수 있다. 조선의 최상류 문화를 보여주었던 왕실에서는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던 중국의 고전 시문을 선발하여 선집이나 개인 문집 등으로 집대성하여 편찬하는 등 선진문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문풍(文風)과 문화를 이끌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국왕은 그 중심에 있었던 까닭으로 그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국왕의 수준 높은 작품들은 궁중 문화뿐만 아니라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풍속, 유행 등을 두루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자원으로, 최근 전통문화 살리기, 복고 열풍 등의 흐름에 힘입어 우리 문화의 정수(精髓)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나 모바일 상에서 한글이나 영문 글자에 다양한 디자인의 폰트가 제공되고 있듯이, 한자에서도 선조체, 숙종체, 영조체, 정조체 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디자인하여 제공할 수 있다. 이렇듯 전통문화가 현대적으로 재해석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조선의 역대 국왕들은 문풍(文風)이 세교(世敎)와 직결된다고 보아 문교(文敎)에 더욱 치중하였는데, 특히 시문을 통한 정치적 의사전달 방식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외교나 정치 활동에 있어서 중국의 고전 시문을 인용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심오하고 무게 있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종종 인용하였던 고전 시문은 예술적인 영역을 뛰어넘어 소통과 대화의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3) 교육적 기여
    본 연구는 한문학과 중문학을 접목한 새로운 내용의 강의 커리큘럼을 기획하고, 한문 또는 중국어 교육에 있어서 상호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외국어로서의 중국어 교육 및 학습에 있어 한문 교육은 학습자의 학습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계는 한문 교육과 중국어 교육이 분리 운영되고 있는 실정인지라 동일한 학문 분야 간의 연대성이 떨어지고 있어 문학 및 어학 교육으로서의 중국 고전 詩文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인접 학문으로서의 한문과 중국어 교육의 정체성 확립 및 동일한 학문 분야 간의 연대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문(漢文)은 중국에서 고문(古文)으로 불리고 있으며, 중국어 교육은 현대 한어 즉 중문(中文 - 현대의 중국인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 교육을 말한다. 연원은 같지만 시대를 달리하고 있는 두 언어(문자)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옛 선현들의 사상과 정서가 담긴 고전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또한 중국어 교육에 있어서도 언어 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문화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언어를 풍부하게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실제로 중국어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기존의 교과 내용을 바탕으로 고전 詩文을 보조적인 자료로 활용한다면 그 학습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선 역대 국왕의 『列聖御筆』에 실린 중국 詩文의 내용과 필체를 고찰함과 동시에 그 성과를 한문 및 중국어 교육에 적극 활용함으로서 단순한 형태론적 한자 교육이 아닌 조선 역대 국왕의 정련된 한자 필체에 담긴 중국 고전의 심오한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한문 및 중국어 교육 자원을 확충하여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한문과 중문(중국어)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본 연구를 통해 한자 문화의 전통적인 의미를 현대인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흥미롭게 다가가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색인어
  • 열성어필, 서예, 중국시문, 정치 이미지, 어제, 어필, 문치주의, 유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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