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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椵岑城의 지리적 환경과 7세기 羅濟의 공방
Geographical Environment of Gajam-Fortess and War Between Baekje and Silla 7th Centur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B유형)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연구과제번호 2020S1A5B5A17091785
선정년도 2020 년
연구기간 1 년 (2020년 09월 01일 ~ 2021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박종욱
연구수행기관 (사)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7세기 전반 백제와 신라의 분쟁 지역이었던 가잠성의 위치를 새롭게 비정하고, 그 전투의 배경과 목적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가잠성의 위치는 이미 기존연구에서 보은, 거창, 괴산, 안성 죽산, 무주, 영동, 청주 등으로 다양하게 지목되었으며, 지금까지 위치 비정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본 연구에서는 관련 연구의 주요 쟁점을 분석해보는 한편, 특히 기존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가잠성의 지리적 환경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볼 것이다. 이를 위해 684년 보덕성 반란군의 상황과 出城 배경, 가잠성 남쪽 7리 지점에 진을 치게 된 배경, 익산 인근의 인문지리적·자연지리적 상황, 고고학적 출토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가잠성 및 ‘남쪽 7리 지점’의 지리적 환경에 대한 단서를 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가잠성의 구체적인 위치를 비정하는 한편 가잠성 전투의 배경과 목적, 나아가 7세기 전반 나제 간 전쟁의 방향성과 목적을 파악해볼 것이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를 통해 7세기 백제와 신라의 전쟁 양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7세기 이후 백제의 신라 침공 방향을 큰 틀에서 파악할 수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가잠성 전투의 배경과 목적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백제 사비기의 익산 경영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상대적으로 연구 성과가 많지 않은 보덕성 관련 연구에도 활력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학문적·사회적으로는 대전 이남 충남·충북 일대의 한국고대사·한국고고학 연구의 활성화를 환기시키는 한편, 백제와 신라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역사적 현장으로서 해당 지역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연구요약
  • 가잠성의 위치 비정과 관련된 핵심 정보는 7세기 전반 가잠성 전투와 684년 보덕성민 반란 사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7세기 전반 가잠성 전투에서 확인되는 지리적 환경의 경우, 첫째 양국의 접경 지대이자 최전방지역의 성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신라의 上州, 下州, 新州의 군대가 모두 투입된 지역이라는 점이다. 624년 상주와 하주군이 지원했던 속함성 전투의 사례와 같이 거리에 따라 지원군이 투입되었는데, 3주의 군대가 모두 투입된 가잠성의 위치는 3개 주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김영윤 열전에서 확인되는 가잠성의 경우, 신라 진압군의 진군 경로와 보덕성 반란군의 이동 경로로 볼 때 익산-경주 간 교통로 상에서 그 위치를 구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반란군의 형세와 범위로 볼 때, 익산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추정된다. 다만 기존 연구에서는 반란군의 出城 배경이나 진을 쳤던 장소에 대한 검토가 없었는데, 이는 가잠성의 지리적 환경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된다. 즉 신라 정규군에 비해 군사적 열세였던 반란군은 보덕성에서 守城戰을 택하지 않고 지형적·지리적으로 유리한 지점에 진을 치기 위해 출성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진을 친 장소는 가잠성의 남쪽 7리 지점으로,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비정 위치가 사료의 맥락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기왕의 연구에서는 비정된 위치가 실제 자연지리적 환경 및 사건 전개의 맥락과 부합되지 않는데, 본 연구과제에서는 익산 인근의 역사지리적 검토·고고학적 출토 정황을 통해 가잠성의 구체적인 위치를 비정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가잠성 전투의 배경과 목적, 나아가 7세기 전반 백제와 신라의 전쟁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椵岑城은 7세기 전반 百濟와 新羅의 최대 분쟁지역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위치는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아서, 경기도 죽산·충북 괴산·보은·청주·영동·전북 무주 등 다양한 곳으로 비정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사료 분석의 쟁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684년 報德城 반란군의 設陣 장소를 본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가잠성의 위치를 새롭게 비정해 보고자 했다. 611년 가잠성 전투에서 신라 上州·下州·新州의 구원병이 동원된 점으로 볼 때, 가잠성은 3개 州의 중간 지역인 上州에 소속된 성으로 이해된다. 또한 684년 반란 진압 당시 익산으로 향했던 신라군의 진군 경로를 고려하면, 역시 그 대략적인 위치는 소백산맥 以西의 신라 上州 관할 지역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좀 더 구체적인 위치 비정을 위하여 주목한 대목은 684년 보덕성 반란군이 陳을 펼친 ‘가잠성 남쪽 7리 지점’이었다. 당시 반란군의 設陣 장소는 교통로 상 가잠성과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며, 지형적으로 방어 상의 이점을 가진 곳으로 파악된다. 이에 익산 인근의 교통로 및 지리적 환경을 검토하고, 금산 장대리 고분군 등 고고학적 자료를 종합하여 가잠성을 충남 금산군 추부면 일대로 비정하였다. 추부의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신라의 가잠성은 金馬渚(익산)와 東方城(논산 은진) 등 백제 지방의 주요 거점을 공략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 백제에 있어서 잠재적인 위협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7세기 전반 백제는 가잠성 공격을 통해 신라의 진출 위협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한편, 추풍령로 진출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신라 上州 방면 공략을 도모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 영문
  • Kajam Fortress is one of the most troubled area between Paekche and Silla in the early 7th century. However, since its location is not clearly known, it is presumed to be various places such as Juksan Mountain in Gyeonggi Province, Goesan in North Chungcheong Province, Boeun, Cheongju, Yeongdong, and Muju in North Jeolla Province. This paper intends to newly estimate the location of Kajam Fortress by comprehensively reviewing the historical records on the location of Kajam Fortress and by analyzing the location where the rebel forces of Podŏk Fortress camped in 684. Considering that relief forces were mobilized from the Sangju, Haju and Sinju, three provinces of Shilla during the Battle of Kajam Fortress in 611, Kajam Fortress can be presumed to belong to Sangju, a mid-region of the three provinces. Also, considering the route of the Silla troops to Iksan during the 684 uprising, it is inevitably obtained that the approximate location of Kajam Fortress would be the area under the jurisdiction of Sangju, the west of Sobaek Mountains. The important record analyzed in this study to determine the more specific location of Kajam Fortress is that the rebel army of Podŏk Fortress camped 2.8km south of Kajam Fortress in 684. At that time, the place where the rebels camped is in the north-south direction of Kajam Fortress considering the traffic route, and it is identified as a place with a topographical advantage. Therefore, the location of Kajam Fortress was finally estimated to be near present-day Ch'ubu myŏn, Kŭmsan-kun in Ch'ungch'ŏngnam-do by examining the transportation routes and geographical factors around Iksan, and by synthesizing archaeological materials such as the ancient tombs in Jangdae-ri, Geumsan. Judging from the geographical location of Chubu, Kajam Fortress of Shilla could be a potential threat to Paekche, as it could serve as a forward base to attack major areas in Paekche, such as Iksan and Eunjin in Nonsan. Thus, the objective of Paekche’s attack on the Kajam Fortress was to eliminate the threat of Silla's advance into Nonsan and Iksan, and secure a bridgehead to advance to Silla's Sangju.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椵岑城은 7세기 전반 百濟와 新羅의 최대 분쟁지역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위치는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아서, 경기도 죽산·충북 괴산·보은·청주·영동·전북 무주 등 다양한 곳으로 비정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사료 분석의 쟁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684년 報德城 반란군의 設陣 장소를 본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가잠성의 위치를 새롭게 비정해 보고자 했다. 611년 가잠성 전투에서 신라 上州·下州·新州의 구원병이 동원된 점으로 볼 때, 가잠성은 3개 州의 중간 지역인 上州에 소속된 성으로 이해된다. 또한 684년 반란 진압 당시 익산으로 향했던 신라군의 진군 경로를 고려하면, 역시 그 대략적인 위치는 소백산맥 以西의 신라 上州 관할 지역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좀 더 구체적인 위치 비정을 위하여 주목한 대목은 684년 보덕성 반란군이 陳을 펼친 ‘가잠성 남쪽 7리 지점’이었다. 당시 반란군의 設陣 장소는 교통로 상 가잠성과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며, 지형적으로 방어 상의 이점을 가진 곳으로 파악된다. 이에 익산 인근의 교통로 및 지리적 환경을 검토하고, 금산 장대리 고분군 등 고고학적 자료를 종합하여 가잠성을 충남 금산군 추부면 일대로 비정하였다. 추부의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신라의 가잠성은 金馬渚(익산)와 東方城(논산 은진) 등 백제 지방의 주요 거점을 공략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 백제에 있어서 잠재적인 위협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7세기 전반 백제는 가잠성 공격을 통해 신라의 진출 위협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한편, 추풍령로 진출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신라 上州 방면 공략을 도모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과제를 통해 가잠성의 위치를 사료적 맥락에 좀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비정해보고자 했다. 본 연구결과가 일정 부분 유의미하다면, 금산 일대의 고고학적 연구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지하듯 금산 일대에는 수많은 성곽 유적이 분포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고분군도 적지 않게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잠성 전투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금산을 비롯하여 영동, 옥천 주변의 성곽·고분군에 대한 조사 및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금산 일대가 백제와 신라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역사적 현장으로서 일반 대중에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논문 말미에서 간략하게 지적하였으나, 기존 연구에서는 대체로 7세기 백제의 공격 방향이 크게 가야고지와 한강 유역 방면으로 이루어졌다고 파악해왔다. 무왕대 한강 유역 공격과 관련한 가장 주요한 근거는 바로 가잠성 전투였는데, 본 연구과제에서 밝혔듯이 가잠성이 추풍령로 방면과 관련한 공격이었다면, 7세기 백제와 신라의 전쟁의 진행 방향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가잠성의 위치에 관한 새로운 검토는 7세기 백제와 신라의 전쟁을 좀 더 다른 방향에서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금산을 비롯하여 영동·무주·옥천 방면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7세기 백제·신라 관계를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해보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과제의 성과는 백제 사비기 연구의 중요 문제 중의 하나인 익산 경영에 대해서도 다각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선행연구에서도 익산 경영의 군사적 측면을 지적한 바 있으나, 가잠성의 위치를 금산 방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익산 경영의 군사적 측면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684년 보덕성 반란과 관련한 연구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기존 연구에서는 대체로 보덕성의 반란군이 고구려 故地로 도망치려 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본 연구 과제를 통해 이와 관련된 논의가 좀 더 다양하게 제기되기를 기대한다.
  • 색인어
  • 백제, 신라, 무왕, 讚德, 奚論, 椵岑城, 報德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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