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이 셸리(P. B. Shelley)와 키츠(John Keats)를 뒤돌아보았다면, 브라우닝(Robert Browning)에게서 우리는 파운드(Ezra Pound), 예이츠(W. B. Yeats), 엘리엇(T. S. Eliot)으로의 연관을 추적할 수 있다. 브라우닝의 극적 독백과 아이러 ...
만약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이 셸리(P. B. Shelley)와 키츠(John Keats)를 뒤돌아보았다면, 브라우닝(Robert Browning)에게서 우리는 파운드(Ezra Pound), 예이츠(W. B. Yeats), 엘리엇(T. S. Eliot)으로의 연관을 추적할 수 있다. 브라우닝의 극적 독백과 아이러닉한 표현, 거칠고 생생한 구어체 사용은 20세기 시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의 진보적인 사상은 현대적이다. 그의 시인으로서의 성장을 보여준 1855년 시집, 『남성과 여성』(Men and Women)에 수록된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뛰어난 기교를 지닌 프레스코 화가인 안드레아(1486-1530)의 시각에서 말해지는 극적 독백으로, 섬세하고 지적인 예술가의 무의식적 자기분석을 통해 표현된 인생과 예술에서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시이다. 이 시는 극적 독백 형식이 거의 완벽하게 보이는 작품으로 시몬스(Arthur Symons)는 이 같은 독백 작품은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능가하는 독백 작품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하였고, 디베인(William C. DeVane) 역시 “어쩌면 브라우닝이 쓴 가장 훌륭한 극적 독백”이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특히 국내에서는 RISS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 시를 포함한 연구가 학위 논문 5편과 학술 연구 논문 8편만이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은 주로 브라우닝의 시에 나타난 예술가 유형, 미학적 사상, 라캉의 관점에서 본 심리 분석, 사랑과 구원의 문제, 극적 독백에서의 주체성의 구성, 공감과 판단의 문제, 예이츠의 마스크 이론과의 관련이다.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선에서의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브라우닝이 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인습적인 역할, 권력, 지배 관계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 시에서 빅토리아 성(gender) 이데올로기에 대한 브라우닝의 비판에 주목하여 그의 현대성과 전복성, 정치성을 찾아내고자 한다. 「포피리아의 연인」(“Porphyria’s Lover”)이나 「나의 전처 공작부인」(“My Last Duchess”)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과 지배, 통제 문제인 성에 기반한 힘의 역학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있지만 「안드레아 델 사르토」에서 그의 성 문제에 대한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을 찾아낸 연구는 아직 없다.
무대에 올려놓는 것과 같은 극적 독백이라는 객관적인 방식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에 브라우닝의 시는 사회정치적인 담론일 수밖에 없다. 브라우닝이 정치적 시인이라면 급진적인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극적 독백 자체의 구조면에서 문화적 비평을 하는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루스(Margaret A. Loose)는 이 시가 1850년 대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브라우닝의 동시대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여성의 움직임과 목소리,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회적 통제라는 이슈를 브라우닝이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에게서 힘을 빼앗는 것이 어떻게 루크레치아(Lucrezia)뿐만 아니라 안드레아가 지닌 불쾌한 특성을 만들어 내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한다(134).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성역할과 고정관념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브라우닝의 이 시는 빅토리아 삶에 대한 그의 사회적 비평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빅토리안 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담긴 브라우닝의 극적 독백으로 「안드레아 델 사르토」를 읽는 본 연구는 진보적인 사회 비평가로서의 브라우닝의 모습을 확인한다. 여성을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반증 같은 존재인 루크레치아를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인습에 얽매인 빅토리아 시대 남성 지식인의 한계를 벗어난 브라우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아내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과 함께 여성 권리와 같은 급진적인 대의를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였던 브라우닝은 양성 평등을 열망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빅토리아 시대 ‘별개의 영역’(separate spheres)과 편협한 성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엄격한 가부장적 규준/관례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브라우닝의 모습을 「안드레아 델 사르토」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헤겔(Georg W. F. Hegel)의 “자기의식” 참조나 비슷한 시기에 쓰인 팻모어(Coventry Patmore)의 시, 『집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 1854)에서 나온 이상적인 여성상 ‘집안의 천사’와의 비교는 브라우닝의 극적 독백이 담보하는 전복적인 정치성과 현대성을 보다 견고하게 드러내 줄 수 있어, 새로운 분석을 통한 해석으로 브라우닝의 시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본다. 이와 더불어 문학과 철학이라는 학제간 연구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연구 범위를 확장하는 의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