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우리의 가뎡』이 『Village Life in Korea』(J. Robert Moose, 1911)를 번역, 소개하는 과정에서 어떤 담론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자 하였는지 원문과의 비교를 통해 밝힐 예정이다. 특히 해당 텍스트를 번역하여 소개한 필자 백경애는 『우리의 가뎡』 현상공모 ...
본 연구는 『우리의 가뎡』이 『Village Life in Korea』(J. Robert Moose, 1911)를 번역, 소개하는 과정에서 어떤 담론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자 하였는지 원문과의 비교를 통해 밝힐 예정이다. 특히 해당 텍스트를 번역하여 소개한 필자 백경애는 『우리의 가뎡』 현상공모 당선자였다. 즉, 독자에서 ‘기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이 책을 번역하여 소개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백경애의 번역문에 주목하는 일은 1910년대의 매체 운영 과정에서 독자의 성격과 필진의 성격이 맞물리는 지점을 파악할 수 있는 연구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본 연구는 관련 내용을 도식화하여 표로 제시함으로써, 시각적으로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후속 연구에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먼저, 이 연구는 1910년대 한국 대중매체에 나타난 ‘세계’라는 표상이 지니는 의미를 문학사적 맥락에서 검토한다. 특히 『우리의 가뎡』은 제1호에서 「미국부인의 규측있게 일하는 것」, 「미국 어떤 부인의 장한 일」을 시작으로, 제2호의 「세계기담」, 제7호의 「셔양남녀의 교제ᄒᆞᄂᆞᆫ모양」, 제11호의 「구라파 황실의 미신」 등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소개한 잡지였다. 이 같은 특성을 지닌 잡지가 묘사하는 ‘서양’이라는 공간의 함의를 파악함으로써, 근대화 시기 대중독자 대상 잡지가 형성하였던 ‘세계/서양’ 담론의 의미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당시 여성 독자를 주요 타겟층으로 삼고 있던 『우리의 가뎡』이 여성 독자들에게 ‘가정의 부인’이라는 위치를
권유하면서, ‘외국인의 시각’에 비친 ‘우리의 가정’을 소개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해당 번역문의 필자는 『우리의 가뎡』에서 운영하던 ‘현상공모’의 1등 당선자 백경애였다. 백경애의 공모전 당선작 「조션녀자의 급선무가 무엇인고」와 첫 번째 번역문 「조션인의 가뎡」은 모두 제8호를 통해 동시에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 번역문은 백경애가 『우리의 가뎡』의 필진으로 합류한 이후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며 원문의 일부를 선별하여 소개한 글이라는 점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우리의 가뎡』에 게재된 백경애의 번역문을 원 텍스트인 『Village Life in Korea』(J. Robert Moose, 1911)와 비교해봄으로써, 번역 과정에서 어떤 내용이 선택되고 생략되었는지 등을 확인해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읽어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여성들이 근대식 지식을 습득해가는 과정을 조명함으로써, ‘현장 여성주의’에 입각해 여성 지식 형성사의 계보를 그려본다. 근대초기 ‘새로운 주체’를 내세우며 출현한 여성잡지의 독자층은 모두 ‘여성’으로 표방되지만 그 안에 가정주부, 여학생 및 유학생, 여성 지식인과 문인, 재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성격을 지닌 여성들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근대적 여성성에 대한 각 잡지의 입장을 대별해볼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킨다(이근화, 2018:122). 따라서 이 연구는 『우리의 가뎡』이 주요 독자층으로 상정한 ‘여성’의 성격을 여러 층위로 나눠 돌아보고자 하는데, 흥미롭게도 주부뿐만 아니라 여학교 교사, 여학생 등의 담론 참여 역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함께 짚어보려 한다.
요컨대 본 연구는 1910년대 여성 독자를 주요 타겟층으로 삼아 당대 여성들의 ‘학식/지식’ 향상을 도모하였던 잡지 『우리의 가뎡』을 검토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뎡』을 읽을 때 주의할 점 중 하나는 이 잡지의 기획 배경으로 식민지 여성들의 ‘근대화’, ‘가정 개량’이라는 목표가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 역시 이 같은 특성을 염두에 두면서, 해당 매체가 여성독자들에게 전파하고자 하였던 ‘근대식 지식 교육’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근대 초기 대중매체가 ‘세계’ 표상을 통해 어떠한 지식을 전파하고자 하였는지, 특히 ‘외국인의 시각’을 어떻게 옮기고 있었는지, 근대화 과정에서 부상한 ‘새로운 주체들’은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지 등을 밝히는 것으로, 후속 연구에 다양한 층위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