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디자인 담론의 확장
1960년대 산업화 이후 한국의 디자인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미술수출’의 교두보로서 한국의 디자인은 한국의 산업화를 증진하는데 기여했다. 이 과정을 입증하듯 1960년대에는 ‘한국포장기술협회’, ‘한국전선미술협회’, ‘한국공예디자인연구 ...
● 국내 디자인 담론의 확장
1960년대 산업화 이후 한국의 디자인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미술수출’의 교두보로서 한국의 디자인은 한국의 산업화를 증진하는데 기여했다. 이 과정을 입증하듯 1960년대에는 ‘한국포장기술협회’, ‘한국전선미술협회’,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 ‘한국수출디자인센터’,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상공미술전람회’ 등 여러 디자인 관련 기관 혹은 단체들이 설립되었으며, 금성사 및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의 성장 또한 이와 흐름을 같이 하며 성장했다. 문제는, 디자인과 결부된 1960년대의 수식에서 보듯이 에서 디자인은 ‘포장’, ‘선전’ 혹은 ‘수출’의 한 방도로서 인식되었다. 자연스럽게 한국 디자인의 출발은 ‘산업’과 연계될 수 밖에 없었으며, 대부분의 디자인 담론 또한 산업을 주축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1990년대 첫 디자인 학문 세대의 저술 경향과도 일치한다.
1990년대 들어서야 디자인을 학문적으로 논하는 첫 세대를 경험한다. 1990년대 출현한 디자인 학문 세대는 1971년 한국의 디자인 학자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정시화의 <한국의 현대디자인>의 연장선에 서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강현주, 오창섭, 최범, 김상규, 박해천, 김종균 등이 전개한 1990년대의 활발한 연구 및 저술 활동은 그 자체로서 큰 성과이자 업적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시화의 <한국의 현대 디자인>이 기술하듯이 이들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한국의 디자인 역사>는 1960년대 이례로 거슬로 올가가지 못한다. 디자인은 인간 커뮤니케이션 발달사와 함께 맞물려 온 시각 언어의 매개물임에도 불구하고, 산업 기반의 저술은 한국 디자인의 출발을 '산업'이라는 테두리로만 협소하게 축소시켜 놓고 있으며, 이는 디자인 정책, 제도 및 기업이라는 거시적 망과 연동된다. 국부론이나 기업생산형 담론에서 디자인이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 안에서 문화생산형 디자인 논의는 배제되거나 누락될 수밖에 없다.
● 국내 첫 현대 그래픽 디자인사 구축
책은 이러한 한국 디자인 담론의 공백을 건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 그래픽 디자인사를 논하는 첫 책이고자 한다. 그래픽 디자인은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매개로 하는 디자인 언어를 뜻한다. 기존 광의의 디자인이 제품과 산업과 같은 물질적 측면에 집중했다면, 그래픽 디자인은 인간 소통의 가장 기초인 문자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픽 디자인에서 '문자'와 같은 시각언어가 중시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경우, 한국의 그래픽 디자인은 '한글'에서부터 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디자인사가 그래픽 디자인을 포용할 경우, 시간적 스펙트럼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한글과 별개로, 이 논의에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기존 인쇄물에 대한 수집과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1960년대 이후 국내에서는 양질의 흥미로운 인쇄물들이 꾸준히 출간되었다. 1976년 창간된 잡지 <뿌리깊은나무>는 잠재된 그래픽적 에너지가 발아하고, 이후 한국적 모더니즘으로 이행하는 교두보가 되는 그래픽적 사건이었다. 이후 한국의 그래픽 디자인은 한글 기계화를 통해 한국 모던 타이포그래피의 지형을 그려나가고자 애썼으며, 잡지사와 신문사에서는 무명의 레터러들이 잡지의 표정을 다채롭게 일궈나가기 위해 한글 제목자를 만들어 나갔다. 이중에는 뛰어난 화보 디자인이 생산되기도 했다. 이러한 흥미로운 인쇄물 중심의 전개는 비단 1970-80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에도 다종다양한 이슈로 포섭할 수 있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 씬이 존재했다. 2005년에 출간된 <한국의 디자인>이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을 부분적으로 포착하고 있지만, 심도 있는 비평과 미세한 관찰은 이 책에서 시도되지 못했다.
● 한국 디자인의 미래 가치 모색
이 책은 산업디자인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한국 디자인사의 담론 확장에 기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미처 조명받지 못했던 다양한 한국의 그래픽물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2020년대의 시각을 적극 반영하여 과거 그래픽 디자인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나가고자 한다. 지난한 수집과 연구가 동원될 이 작업은 복고적 의미에서의 과거 호출이 아닌, 지금의 판을 보다 입체적으로 읽어나가고자 하는 능동적 태도이기도 하다. 역사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현재를 읽어내는 단서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학문이다. 무엇보다 한국 그래픽 디자인 역사는 곧 한국 디자인의 미래 가치를 모색하는 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