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5세기-17세기의 국어의 자료 중에서 국어학적 가치가 높은 자료를 선정하여 원문 그대로를 전자화 하고 언해는 중세어를 현대어로 풀이하고, 한문은 우리말로 번역하여 원문과 더불어 전자화하였다. 여기에 문법적 풀이를 바탕으로 중세어의 음운, 문법 변화과 ...
본 연구는 15세기-17세기의 국어의 자료 중에서 국어학적 가치가 높은 자료를 선정하여 원문 그대로를 전자화 하고 언해는 중세어를 현대어로 풀이하고, 한문은 우리말로 번역하여 원문과 더불어 전자화하였다. 여기에 문법적 풀이를 바탕으로 중세어의 음운, 문법 변화과정을 분석하여 현대국어로의 이행 과정을 살펴 종합적으로 원문 자료와 현대어 번역 그리고 분석을 통한 옛말과 현대어의 비교 등을 하나의 책으로 통합하였다.
본 연구의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가) 작품 선정 및 문법 체계 구성: 15세기에서 17세기의 문헌 가운데 기존의 연구 성과를 고려하여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본 연구단의 작업 능력을 고려하여 작품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 선택한 각 세기별 작품은 15세기 문헌으로 『용비어천가』(세종29, 1447), 16세기 문헌으로 『선가귀감언해』(선조2, 1569), 17세기 문헌으로 『두시언해 중간본』(인조10, 1632)와 『경민편언해』(효종7, 1656)이었다. 각 세기의 특징적 언어 현상을 설명하는 이들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 수집 및 원문 자료 전자화 → 풀이 및 번역 → 최종안 전자화’의 과정을 거쳐 중세 및 근세 국어의 문법체계를 세웠다.
나) 작품 수집 및 원문 자료(corpus) 전자화: 선정된 작품을 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하고 원전 그대로를 전자화하였다. 원전은 대개 중세어 한문체제로 세로 표기되어 있으나 본 연구진은 현대의 언어생활에 맞게 가로로 전자화하여 입력하였다.
다) 풀이 및 번역작업: 원전을 가로로 전자화하고 풀이 번역하였다. 즉 중세어는 현대어로 풀이하고 한문은 표점을 찍으며 현대어로 번역하였는데 그 방식은 아래와 같다. 4장을 예로 든다. <원문> 第四章 狄人ㅅ·서리·예·가·샤 狄人·이 ·외어·늘 岐山:올·샴·도 하···디시·니. // 野人ㅅ·서리·예·가·샤 野人·이 ·외어·늘 德源:올·샴·도 하···디시·니. <한문원문>狄人與處 狄人于侵 岐山之遷 實維天心 野人與處 野人不禮 德源之徙 實是天啓. <해석> (고공단보가) 북쪽 오랑캐의 무리 속에 가시어 (사시다가) 오랑캐가 침범하거늘, 기산으로 옮기심도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익조가) 야인의 무리 속에 가시어 (사시다가) 야인이 침범하거늘, 덕원으로 옮기심도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풀이> 狄人(적인)ㅅ: 북쪽 오랑캐의 ‘ㅅ’은 사잇소리다. 원칙적으로 ‘ㄷ’이 와야 할 자리나 ‘ㅅ’이 두루 쓰였다. 사방(四方) 오랑캐의 호칭은 다음과 같다. 동쪽: 동이(東夷), 서쪽: 서융(西戎) 남쪽: 남만(南蠻), 북쪽: 북적(北狄) 서리예: 사이에, 속에, 무리들 속이란 뜻이다. ‘서리’는 명사로 처소 부사격 조사 ‘예’가 결합한 것이다. 서리(명사) + 예(처소 부사격 조사) ‘서리’는 ‘’와 구별된다. 서리: 무리들 속, : 둘의 사이. 가샤: 가시어 어간 ‘가-’에 주체 높임 ‘시’와 종속적 연결 어미 ‘아/어’가 결합한 것이다. 가-(어간) + 시(주체 높임) + 아(종속적 연결 어미) ---나머지도 위와 같음--- <한문주석> 狄人與處事 見上 오랑캐들과 함께 살은 일은 윗글(제3장)을 보라. 穆祖在斡東, 每至女眞諸千戶所, 彼必牽牛馬, 饗宴累日. 諸千戶至斡東, 穆祖亦如之. (중략) 北方之民, 至今稱之曰, 天之所造, 非人力也. 翼祖遂陶穴而居. 其基至今存焉. 斡東之人, 聞翼祖在赤島, 皆歸焉. 後 翼祖還居德源府. 慶興之民, 從之者如歸市. <해석> 목조(穆祖)가 오동(斡東)에 계실 때 매번 여진(女眞)의 여러 천호(千戶)가 살던 곳에 이르시면 저들은 반드시 소와 말을 끌고 와서 여러 날 동안 잔치를 벌였다. 여러 천호가 오동에 이르면 목조 또한 그와 같이 대접하여 모름지기 자주 서로 연회를 배풀었다. 익조(翼祖)도 또한 이것을 이었다. (중략) 북방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칭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만든 일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익조가 마침내 움을 파고 살으니 그 터전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오동의 사람들이 익조가 적도에 있음을 듣고, 모두 (익조에게) 돌아갔다. 나중에 익조가 덕원부(德源府)에 돌아와 살적에 경흥(慶興)의 백성이 그를 쫒아 마치 저자를 돌아가는 것 같았다.
라) 전자화 및 발간: 분석과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 최종안을 전자화하여 원문과 풀이 및 번역, 분석 등이 통합된 최종 결과물을 전자화하고, 색인작업을 하여 저서의 형태로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