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성과물 유형별 검색 > 보고서 상세정보

보고서 상세정보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6183&local_id=10013253
강화학파의 양명학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강화학파의 양명학 연구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송석준(공주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S0032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2월 2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연구내용:①기존 자료의 재검토 및 분석정리- '하곡학' 및 '강화학'과 관련한 기존 선행연구 결과에 대한 집중 분석을 시작으로 본 연구과제의 출발점을 삼았다. 한국양명학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하곡 정제두의 사상과 그가 강화로 이주하면서 시작되는 강화학인들에 대한 선행 연구결과물들의 분석을 통하여 왜 '하곡학파 또는 '양명학파'로 거론하지 않고 '강화학파'로 명명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명제의 규명으로부터 접근하였다.② 강화학파 인물들에 대한 재조사: 강화학파의 학인들 개개인에 대한 인물 조사를 착수하였다. 본디 '강화학파'란 지역적으로는 '강화도'를 구심점으로 하고 학문적으로는 하곡 정제두의 사상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학술활동을 했던 인물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또한 인맥으로는 하곡 정제두로부터 시작하여 위당 정인보에 이어지는 혈연과 학연의 제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강화학파의 지역 학맥 인맥 관계를 초기 중기 말기로 구분하여 하곡의 직전제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 강화학파, 재전제자를 중심으로 하는 중기 강화학파, 재전제자 이후의 강하학인들을 말기 강화학파로 구분하여 인물 조사에 착수하였다.③강화학인 선정 및 문집 검토 후, 양명학적 요소 문헌 번역 및 주해: 초기 중기 말기 강화학인 가운데에서도 우리 연구진이 집중 연구할 수 있는 대표적 인물들을 각 시기별로 선정하여 이들의 문집들을 통해 양명학적 요소들을 발굴해 낼 수 있는 부분들을 선별하였고, 문헌에 대한 번역과 주해를 통해 실질적인 양명학자로서의 진위 여부와 그 의미를 규명해 나가도록 연구되었다.④ 학술 세미나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연구의 질 향상 제고: 문헌에 나타난 양명학 관련 요소들을 중심으로 강화학인들의 전반적인 학술성향에 대해 자료집을 정리 제작하고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우리 연구과제의 성과물에 대한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도록 하였다. 이는 우리 연구의 단계별 성과물에 대한 엄중한 논평과 비평을 겸허히 수용하여 본 연구과제의 성과물이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특히 양명학을 주요 연구로 하는 한국양명학회를 발판으로 기획되어 있는 각종 국내외 학술회의에 우리 연구진과 연구 성과물을 등장시킬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였다.⑤강화양명학 학술 총서 발간: 조선후기 한국학 분야 가운데에 ‘한국양명학’을 중심으로 하는 강화양명학 학술총서를 발간하여 우리 연구진의 최종 결과물을 내놓을 계획에 있다.
    2)분과별 세부 연구내용: ①강화 양명학에 관한 기존의 연구 현황에 대한 조사와 앞으로의 전망을 검토하였다. 조선후기에 있어 강화학인에 의해 수용 또는 비판 배제되었던 陽明思想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축되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를 검토하였다. 이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강화-양명학 선행연구에 대한 세심한 분석과 함께, 양명학과 양명학 비판을 동시에 찾아볼 수 있는 문헌발굴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연구진의 제1분과 硏究史 정리팀과 제2분과 文獻資料 調査 및 목록 해제 작업팀의 유기적인 보완과 세미나가 이루어졌다.②家學으로서의 강화 양명학 형성에서 나타나는 家門과, 家門의 네트워크를 조선후기 鄭氏와 全州 李氏 가문의 혼맥과 흥망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그동안 '강화학파' 혹은 '강화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는 과정을 逆추적할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강화학파란 강화도라는 특정한 지역 내에 기반을 둔 하곡 정제두로부터 위당 정인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양명학자들을 말한다. 하곡 정제두의 활동 시기는 한국유학 논쟁사 맥락에서 본다면 人物性同異論에 대한 치열한 舌戰이 오가고 있었던 때이고, 서인의 명문대가 후손인 하곡 정제두는 정계와 학계의 상황을 간파한 후 61세 강화도 하일리로 이주하게 되었다. 우리 연구진은 하곡 정제두의 하일리 이주로부터 약 200 여 년 동안 면면이 이어온 올곧은 강화학인들의 계보와 명칭들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하고자 그의 가학과 혼맥을 재검토하였다.③강화도 답사를 통하여 조선 후기 강화학파의 실제적 모습을 재구성하고, 현재 남아 있는 강화학파 관련 유적지 및 문헌자료를 기록 수집하여 畵報集을 제작하였다. 물론 강화군청의 적극적인 도움과 하일리 마을 주민의 협조를 얻어 하곡 정제두 묘소의 碑文을 비롯하여 하곡의 부친-조부-증조부의 비문까지 拓本을 완성하였기에, 이에 대한 해제와 해석을 통한 강화-양명학의 유적들을 자세하게, 그리고 일반 대중들도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강화 양명학을 알릴 계획이다.이는 우리 연구가 아카데미즘으로 머무는 학술적 성과가 아닌, D/B화와 강화-양명학 홈페이지를 통해 학문 후속세대와 일반인에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사상계의 양명학 분과를 선전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
  • 영문
  • Our research workers have made a special study of 'the Wang Yang Ming Doctrine by the school of Kang-Wha' for the past two years since September, 2004 as it was selected by the Korea Research Foundation for a supporting program in the scope of human sciences. We classified our researches into four sections to accomplish the subject of study faithfully considering efficient performance of a task and individual capability ; an arrangement of research activities, records research, ruins research, and cultural history research. The researchers were stationed at a pertinent section to their majors. We have reached the goal talking over a matter and having a seminar. Our research group has released the product of our study for the past one year at an academic session sponsored by the Korean Wang Yang Ming Doctrine Research Institute. The result of our study was verified objectively by many people with the session as a momentum. We have collected data related on 'the Wang Yang Ming Doctrine by the school of Kang-Wha' and straightened out them systematically in the first year. In the second year, we made a collection of data analyzing the data collected in the first year. The research process in four sections was as followings : The first section, arranging the research activities, looked up the data on 'the Wang Yang Ming Doctrine by the school of Kang-Wha.' They summarized and arranged the data which drew up in about the 1970's. In addition, they tried to find another method of study, based on the data collected, on the field connected with the Wang Yang Ming Doctrine to make a study in the future. The second section, records research, collected and arranged the data related on the Wang Yang Ming Doctrine. They also studied the collection of works related to the scholars who criticized the Wang Yang Ming Doctrine in addition to studying the Wang Yang Ming Doctrine. The result of their efforts will be an important data to carry out researches in the Wang Yang Ming Doctrine in the future in Korea. The third section, ruins research, made a field investigation based on Kangwhado in which 'the Wang Yang Ming Doctrine by the school of Kang-Wha' originated. They tried to find the whole relics and ruins related to the doctrine in cooperation with the county and the county office in Kangwhado. They made an effort to bring the doctrine into relief, which was the central idea in the Korean culture and together with people's life. They also took a rubbing of epitaphs worth historically and studied them. In addition to that, they opened an website of 'the Wang Yang Ming Doctrine by the school of Kang-Wha' (http://yangmyung.kongju.ac.kr) to know people the doctrine. Finally, the fourth section, cultural history research, arranged historical, cultural data which was helpful to the doctrine originated. They paid attention to find out and arrange the scholars and records which had influence upon the doctrine in China and Japan. Our research workers made an effort to carry out a task about 'the Wang Yang Ming Doctrine by the school of Kang-Wha' through those research process. We collected and straightened out the data in the first year, and analyzed and conducted researches in the data in the second year. We expect the result of our researches will be a foundation to formulate originality and systematize the Wang Yang Ming Doctrine in Korea. We will positively join in seminars and symposia related on Korean literature with the result of our researches. We not only studied 'the Wang Yang Ming Doctrine by the school of Kang-Wha' in the scope of philosophy but conducted researches in matters connected with social changes in the latter period of the Yi Dynasty. We tried to clarify the doctrine had an effect on the society in the latter term of the Yi Dynasty. We will make an effort to be verified the result of our researches attending all kinds of academic session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우리 연구진은 지난 2004년 9월 귀 재단의 인문사회분야지원사업에 "강화학파의 양명학에 관한 연구"(The study of Wang-Yang ming's doctrines by the Kang-Wha school)가 선정되어 2년간의 연구를 충실히 수행하여 왔다. ㅁ본 연구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 내기 위해서는 연구진의 구성이 최대 관건이라 할 수 있는 바, 과제수행의 효율성과 각 개인별 연구진 능력 안배의 적절성을 고려하여 4개의 분과를 임의로 설정하고, 각 분과별로 세부전공을 고려한 연구진들을 재배치하여 상호 유기적인 보완과 세미나 등을 거치면서 강화학파의 양명학에 관한 연구과제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였다. ㅁ또한 우리 연구진에서는 본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국양명학회가 주최하는 춘계학술회의(2006년 5월, 중앙대학교) 장소에서 연구개시 이후 1년차의 연구결과물 일부를 중간보고 형식을 갖추어 발표함으로써 학계로부터 객관적인 강평과 검증을 받은 바 있다. ㅁ우리 연구과제의 1차년도 중점 과제는 '강화학파의 양명학 자료에 관한 모든 자료들의 수집과 발굴'에 있었으며, '학술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혹은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될 만한 모든 강화양명학 자료들을 수집 분석하는 데에 주력하였었다. 2차년도 중점 과제는 수집 발굴된 자료집들을 토대로 '강화양명학'과 관련된 '인물'과 '문집'류들을 재정리하여 이들에 관한 새로운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진행하는 데에 진력하였다. ㅁ이에 대한 세부 구체적인 연구방법으로는 첫째, 강화 양명학에 관한 선행 연구 자료들을 검색하는 '硏究史' 정리를 제1분과로 시작하였다. 이는 1970년대를 전후로 일어나기 시작한 한국양명학 연구에 대한 관점의 추세와 전망을 분석하고, 향후 논의될 수 있는 양명학 관련 분야의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모색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자 한 것이었다. 둘째, 양명학과 조금이라도 연계가 될만한 자료들을 찾아내고자 '문헌조사'팀을 제2분과로 배정하였는데, 특히 이 제2분과에서는 비단 '양명학' 뿐만 아니라 양명학자와 논쟁을 하였거나 양명학을 비판하였던 諸文獻들을 발굴해 냄으로써, 한국양명학 전반에 관한 새로운 연구 자료를 개척해 내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셋째, '유적지' 탐방이라는 중점과제를 부여안은 제3분과에서는 '강화도' 자체를 한국양명학의 寶庫라 설정하여, 꼭 학술적이지 않더라도 강화군청과 강화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내어 한국양명학과 관련한 모든 유물과 유적지들을 스크랩하고자 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본 연구가 학술적 연구라는 고답적 자세를 지양하고, '양명학'이 삶의 역사적 현장과 함께 호흡하는 한국문화의 주축이었음을 부각시키고, 나아가 작은 주춧돌로서의 역할을 기대해 보고자 함이었다. 제3분과에서는 해독 가능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碑文들을 탁본하여 연구하였으며, 학문 후속세대 뿐만 아닌 일반대중들에게도 강화학파의 양명학을 알릴 수 있는 '강화양명학' 홈페이지(http://yangmyung.kongju.ac.kr)를 개설하여 각종 자료들을 첨부해 놓았다. 끝으로 제4분과에서는 '문화사' 조사라는 중점과제를 가지고, 한국 양명학이 잉태될 수 있었던 모든 외적 가능성에 대한 연구 자료를 수집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동시대이거나 전후 시대를 살아간 중국과 일본의 양명학자와 양명학 관련 문헌들에 대한 발굴과 전수 과정을 찾아보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ㅁ以上과 같은 연구방법과 절차를 거쳐 우리 연구진은 강화학파의 양명학에 관한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노력하였으며, 1차년도의 자료수집과 발굴 단계를 거쳐, 2차 년도에는 이를 토대로 하여 조선후기 한국사상에 대한 정당한 이해와 적확한 기준 자료 발굴 및 검색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여 왔다. 그 결과 우리 연구진에서는 강화양명학인의 양명학적 특징 요소들을 천착하였으며, 이는 한국양명학의 독자성과 체계성을 세우는 데에 단초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근대 한국문화와 사상에 대한 재조명의 시각도 재규명해 볼 필요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ㅁ한편 한국학의 연구현실이나 각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대중의 요구를 통하여 볼 때, 한국사상사의 전반적인 이해와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는 학문에 대한 적확한 기준과 자료에 대한 객관적 요소들을 찾아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격동의 조선후기에 한 思潮로서 엄연히 존재했었던 韓國陽明學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본연구의 배경으로 설정하였다. 따라서 우리 연구진은 조선후기 한국 문화와 한국 사상 전반에 산재해 있는 강화양명학에 대한 인물 자료들을 집성 정리하여, 그들이 활동했던 다양한 문화적 특징과 세계관을 찾아냄으로써 근대 한국문화와 사상에 대한 재조명의 시각을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 활용방안
    ㅁ우리 연구과제는 전문 학자의 공동 연구 형태로 이어지는 최초의 조선후기 강화양명학파에 대한 전반적인 학술 문화연구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학' 연구를 위한 기본 자료를 제시해 줌으로써 이를 통한 한국학 연구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ㅁ우리 연구는 현재 알려지지 않았던 강화양명학 관련 문헌들을 면밀히 조사하는 데에 연구가치가 있으며, 나아가 양명학과 관련하여 논쟁을 오갔던 양명학 비판론자들의 문헌까지도 찾아낼 수 있다는 데에 그 부가가치 효과가 있다. 이는 한국 유학을 연구하는 전공자 모두에게 연구 역량을 최대한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ㅁ한국유학 영역에 있어서 양명학 분야의 독자성을 확보해 가는 과정을 一目瞭然하게 정리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즉 한국양명학이 중국으로부터 어렵게 전래되었다고 할지라도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 하에 전개된 한국 양명학은 중국양명학의 답습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에 맞는 독특한 이론구조와 실천성을 가지고 발전하였음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ㅁ우리 연구과제의 수행 효과가 작게는 한국양명학의 독자성을 밝혀낼 수 있는 것에 국한되겠지만, 크게는 한국 사상사 전반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서막의 장을 열어줌으로써 한국사상계와 한국문화계에 있어서 전면적이고도 정당한 새로운 이해의 관점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강화학인들의 관심 분야가 단순히 사상계에 국한하지 않고, 사학과 문학 및 서예 등의 예술 방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활동을 구가하였기 때문이다.ㅁ우리 연구과제는 시기적으로 볼 때 조선후기 한국양명학적 특징을 발굴해 내는 것이지만, 당시 조선이 중국과 일본 등 외국과의 문화적 교류에 대한 문헌자료들에 대해서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이는 강화양명학자들의 활동 시기와 영역들을 중국과 일본의 양명학자들과의 연계지어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제4분과의 연구결과가 보여줄 것이다. ㅁ조선후기 다양한 장르의 한국적 특징을 가졌던 강화양명학자의 특징들을 발굴하고, 이들에 대한 자료들을 모두 전산화(D/B) 및 인터넷 서비스(홈페이지를 개설함)를 통하여 학술정보의 교류와 일반인들에게까지 문화적 탐색의 편리와 대중화를 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상'이 단지 아카데미즘 속에서만 머무는 고고한 담론이 되어서는 안 되며, 실제적으로도 그러한 세상이 도래하였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역사적인 문화와 사상은 학술적 수요와 공급으로부터 대중적 수요를 갖는 의미로 전환되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이는 당연한 활용방안이 되어 줄 것이다. ㅁ각종 碑文의 拓本과 유물 사적지의 圖板을 사상의 궤적과 함께 제시함으로써 입체적이고도 고증적인 자료를 구성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한국학 - 특히 문화사 연구자나 일반 대중들의 예술과 서예 등을 연구하는 자들의 요구를 원만하게 충족시켜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2) 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 ㅁ연구가 단지 연구만을 위한 연구로 종결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사상에 대한 정당한 이해의 부족이 본 연구과제의 목적 취지 가운데 일부로 출발하였다면, 인문학을 전공하는 지성인들에게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조선후기의 다양한 학문사조에 대하여 함께 토론하고 강의할 수 있는 교육적 연계가 더더욱 요구된다고 판단된다. ㅁ따라서 우리 연구진의 연구결과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를 강화할 필요성을 인식 공유하고, 한국 전통사상 및 한국철학 일반 대중수요자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가능한 대학 내에서의 교양강좌나 전공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재 및 강의 확보에 盡力할 것이다. ㅁ특히 유학은 국내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적지 않은 내용을 제공해 주고 있다. 유교의 교육사상 및 역사의식은 향후 지성인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시사할 것이 분명하므로, 단순한 일회성 연구나 연구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유학사상과 한국 전통문화 창달 및 정체성 확보와 향후 학문 후속세대들을 위한 기초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데에 노력할 것이다. ㅁ국내 학술계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신선한 자료의 제공은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바, 우리 연구결과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한국의 강화양명학과 관련한 인물과 자료에 대한 해제를 제공할 것이다.
  • 색인어
  • 양명학, 주자학, 성리학, 심학, 조선후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兩亂, 17세기, 사단칠정론, 호락논쟁, 인심도심논쟁, 한국사상사, 교조주의, 중국양명학, 한국양명학, 남언경, 이요, 장유, 최명길, 하곡 정제두, 강화양명학, 하곡학, 家學, 강화도, 西人, 反양명학자, 한국사상사, 초기 강화양명학, 중기 강화양명학, 말기 강화양명학, 강화학인, 신작, 석천집, 이면백, 대연유고, 이시원, 사기집, 이건승, 海耕堂收草, 이상선, 협중집, 이광사, 이광신, 항재유고, 정문승, 초천집, 이건방, 난곡집, 이종회, 수산집, 심육, 樗村遺稿, 員嶠集, 신대우, 宛丘遺集, 이긍익, 信齋集, 이충익, 椒園遺藁, 이광여, 李參奉集, 이종휘, 修山集, 정동유, 玄同室遺稿, 신작, 石泉遺稿, 이건창, 명이당집, 정인보, 양명학연론, 이석정
  • 이 보고서에 대한 디지털 콘텐츠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 본 자료는 원작자를 표시해야 하며 영리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 또한 저작물의 변경 또는 2차 저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