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90년대 이후의 부패에 대한 지배적인 인식과 반부패 논의에 대한 검토를 통해, 반부패 국제 규범 및 이의 제도화 과정의 내용과 성격을 밝히고자 했다. 이는 반부패 국제 레짐의 정치경제적 형성 요인들뿐만 아니라 레짐 형성의 주도적 세력들이 주장하는 지 ...
본 논문은 1990년대 이후의 부패에 대한 지배적인 인식과 반부패 논의에 대한 검토를 통해, 반부패 국제 규범 및 이의 제도화 과정의 내용과 성격을 밝히고자 했다. 이는 반부패 국제 레짐의 정치경제적 형성 요인들뿐만 아니라 레짐 형성의 주도적 세력들이 주장하는 지배적 담론과 제도화 전략을 살펴보는 것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현재의 반부패 논의 방향을 주도하는 이론적, 정책적 연구 성과들이 보이는 부패에 대한 인식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반부패의 문제가 지구적 차원의 것으로 부각되는 과정은 부패의 개념, 원인 및 효과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특정한 방향의 지식과 수렴된 인식들은 현재의 반부패 국제 레짐이 보이는 성격을 결정짓는데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반부패 국제 레짐을 반뇌물과 공적 영역의 제도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1990년대 이후의 부패 및 반부패 국제 규범의 제도화 과정으로 보고 내용분석(content analysis)의 방법을 사용하여 부패의 원인과 효과에 대한 학술논문들, 반부패를 위한 선언문과 성명서, 협약이나 협정서를 분석했다. 특히, 분석적 차원에서의 연구진행을 위해 헤게모니 질서가 수립되는 것을 정치경제적 물적 조건과 관념, 국제적인 제도들이 특정한 국면에서 상호조응하는 과정 및 이의 제도화로 설명하고 있는 비판이론적 접근을 적용하여 과정으로서의 반부패 국제 레짐의 형성 및 성격을 설명하는 연구의 분석틀을 구성하고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자본축적전략의 변화에 따른 헤게모니 세력과 이들의 정치적 전략의 변화, 새로운 헤게모니 질서를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결합한 물적 조건뿐만 아니라 부패에 대한 특정한 지식들의 양산과 이에 기반한 인식의 공유가 반부패를 위한 지배적인 내용을 구성하면서 반부패 국제규범의 창출 및 레짐 형성이 가능해 졌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부패는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사적 이익을 위한 공직자의 권력남용’으로 협소하게 정의되었고, 지구화의 맥락에서 역설적으로 경제적 자유화와 탈규제를 방해하는 지구적 문제로 재설정되면서 부패의 주요 원인은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비효율적인 공직자와 취약한 거버넌스이며, 부패의 부정적 효과는 외국인 직접투자, 자유로운 시장진입과 자본의 이동, 원활한 공공서비스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면서 경제성장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게 되었음을 밝혔다.
한편, OECD, World Bank 및 IMF, WTO, TI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주도적인 반부패 전략의 추진세력으로 자리잡으며 공적 영역의 전반적인 제도개혁과 거버넌스, 경제적 구조조정의 방편으로 반부패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추진한 반부패 전략들은 중점영역과 내용에 있어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시장을 위한 거시경제정책의 기획과 실행, 보다 큰 투명성과 책임성을 도입하도록 고안된 제도적 개혁들의 입법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이는 부패를 거래장벽으로서 불안정한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장애물로, 시장접근의 용이성과 시장기제의 안정적인 작동을 저해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지배적 반부패 담론의 내용을 반영하는 정책적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전략들은 내용적으로 경제 자유화와 공공부문관리 시스템의 구축으로 모아질 수 있다.
본 논문은 결론적으로 경제적 시장의 자유화, 이들 시장의 요구된 투명성과 통제가능성, 이에 대한 위협으로서의 부패 사이의 연관성은 반부패 국제 규범과 이의 제도화 즉, 반부패 국제 레짐의 형성과정이 새로운 헤게모니 질서 내에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의 반부패 국제 레짐은 애초부터 규범적, 도덕적 차원에서의 부패 통제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1980년대 이후부터 변화된 물질적 조건들을 기반으로 지적, 도덕적 지도력을 획득하고 초국적 헤게모니 질서를 안정적으로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음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