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제도는 아래로는 각개인의 신분을 등록, 공증하고, 위로는 ‘인구’라는 추상체를 구성하여 국가 행정의 기본자료를 제공한다. 1890년대에 이르면 조선후기 호적제도의 한계가 분명해졌고, 1896년 「호구조사규칙」을 통해 그것에 대한 부분적 개선책이 ...
주민등록제도는 아래로는 각개인의 신분을 등록, 공증하고, 위로는 ‘인구’라는 추상체를 구성하여 국가 행정의 기본자료를 제공한다. 1890년대에 이르면 조선후기 호적제도의 한계가 분명해졌고, 1896년 「호구조사규칙」을 통해 그것에 대한 부분적 개선책이 모색되었다. 한국이 주체적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1910년 이후로는 ‘민적’제도를 통해 더 직접적으로 근대 일본의 주민등록제도가 한국에 이식되었다. 전통국가에서는 인민의 조사, 등록이 인력과 재화의 착취, 동원으로 이어질 뿐이었던 반면, 근대국가에서 그것은 국가권력이 개개인의 삶 속에 치밀히 파고드는 감시의 기초이자, 시민권이나 복지 등 인민의 삶을 보살피는 통치와 행정의 근거가 된다. 19세기말 일본과 한국에서 주민등록장치는 기본적으로 ‘내무’의 일부로 규정되었다. ‘내무’는 근대국가의 통치성에 붙여진 이름이다. 경찰이 민적사무를 담당했던 1910년대전반까지는 조선의 전인민을 조사, 등록하는 것이 민적제도의 일차적 목표였으나, 「조선민사령」(1912)과 민적사무의 이관(1915), 「조선호적령」(1923) 등을 거치면서 민적제도의 신분등록적 측면이 강조되었다. 민적, 이후의 호적에 등록되어 확인, 공증되는 민사신분(état civil)이란 출생으로 시작되어 사망으로 끝나는, 법률적 행위자로서의 사적 개인의 존재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인간이 몸을 가진 구체적 존재로 살아가는 한, 그 신분은 또한 이름, 성별, 나이, 주소 등으로 이루어지는 각개인의 신원(identity)과도 관련되고, 근대민법이 형성되던 시기 가장 중요한 사회적 관계였던 국가와 가족에 대해서는 국적/시민권이나 가족관계를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근대국민국가체계의 법적, 추상적 ‘국적/시민권’의 개념을 접한 것은, 식민지라는 현실을 통해서였다. 문화적, 혈연적 ‘민족’의 상상과 무관하게, 민적제도는 일본제국이 대외적으로는 조선인을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규정하면서, 대내적으로는 ‘異法域’의 식민지민으로 구별하고 또 차별하는 수단이었다. 한편, 호적제도는 모든 일본제국신민의 삶을 일본식의 가족, ‘家’의 틀 속으로 맞춰가는 수단이기도 했다. 자연인의 민사신분을 법률로 규정해서 공식적으로 등록, 공증하게 하는 것은 근대국가의 보편문법이지만, 거기에 하필 ‘호적’이라는 장치를 개입시킨 것은 일본적 근대의 특수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