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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 목간의 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한국 고대 목간의 연구 | 2005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경섭(동국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03
Year(selected) 2005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10월 30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신라 중고기의 목간을 중심으로 목간 자료에 대한 연구 방법론을 정립하면서 목간에 내재된 당시의 역사상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목간이 고대 동아시아세계의 공통의 역사적 산물이란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별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의 분석을 진행하여 연구 방법론의 관점에서 고고자료로서의 출토 유물인 목간에 대한 접근을 강조하였으며, 목간이 국가와 사회 제반의 영역에서 기능했던 역할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고서 향후 연구의 방향에 대하여 제시하도록 하겠다.
    제1장에서는 신라의 궁성이었던 월성의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에 대하여 출토 유구의 위치와 층위를 토대로 공반유물과의 관계 속에서 그 연대를 살펴보았으며, 목간의 폐기처이자 사용 공간이었던 해자와 월성 주변의 경관 변화를 재구성하려고 하였다.
    제2장에서는 월성해자에서 출토한 목간 가운데 4면으로 이루어진 다면의 문서목간으로 일찍부터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2호 목간에 대하여 필자의 판독과 해석을 제시하고 상세한 연대의 고증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목간의 성격과 문서행정의 과정에서 2호 목간이어떻게 기능하였는지를 복원하였다. 마지막으로 2호 목간의 ‘白之’와 ‘賜’의 用例를 고대 일본의 목간 事例를 중심으로 추출하여 그 유사성을 지적하였다.
    제3장에서는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한 짐꼬리표[荷札] 목간을 형태와 크기, 기재내용과 서식 등을 검토한 후 목간의 제작지와 기능을 살펴보고서 짐꼬리표 목간에 내재된 당시 신라의 수취가 지방민과 지방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갔는지를 살펴 보았다.
    제4장은 성산산성에서 출토되어 제첨축이라고 널리 알려진 문서표지 목간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였다. 먼저 전체 8점으로 보고된 제첨축을 형태의 측면에서 검토하여 3점(성산산성 출토 89․92․2006-13호 목간)만을 제첨축으로 확정하였다. 또한 이두촌 묵서로 주목받은 목제품에 묵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형태상으로도 제첨축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제5장에서는 최근 한국에서의 목간 자료가 증대함에 따라 유사한 문자문화의 발전과정을 겪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고대 韓日간 목간문화의 비교검토를 진행하였다.
    위에서 정리한 것처럼 본고에서는 개별 유적에서 출토한 목간 자료의 분석을 토대로 해당 목간에 내재된 신라 중고기의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신라 중고기의 목간은 문서행정의 영역에서 짐이나 물품의 꼬리표 그리고 문서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걸쳐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곧 문자에 의한 지배가 중고기 신라사회에 광범위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사실을 반영한다. 본고의 고찰 대상이었던 월성해자와 성산산성 목간의 경우 56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이미 당시에 국가기구 내에서의 문서에 의한 명령의 전달과 보고체계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지방사회의 인민과 생산물에 대한 지배가 관철되고 있었다.
    이는 문헌자료에 전하는 신라의 官制 정비과정에 견주어 목간으로 표현된 문자에 의한 지배가 이른 시기부터 도입되어 기능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560년대에는 신라의 주요 관부 가운데 兵部와 司正府, 稟主 정도만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신라는 나물마립간(356~401)대의 사실로 추정되는 물장고 사무를 담당한 한기부인 부도의 사례나 坊里制의 시행(469), 郵驛의 설치와 官道의 정비(487) 그리고 자비마립간 11년(468)과 소지마립간 8년(486)에 지방민을 차출하여 축성을 실시하고 있는 사실로 보아 5세기 후반에는 이미 인민에 대한 정확한 戶口의 파악과 문서행정을 통한 지배시스템이 국가적으로 구축되어 있었다고 여겨진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고에서는 개별 유적에서 출토한 목간 자료의 분석을 토대로 해당 목간에 내재된 신라 중고기의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신라 중고기의 목간은 문서행정의 영역에서 짐이나 물품의 꼬리표 그리고 문서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걸쳐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곧 문자에 의한 지배가 중고기 신라사회에 광범위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사실을 반영한다. 본고의 고찰 대상이었던 월성해자와 성산산성 목간의 경우 56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이미 당시에 국가기구 내에서의 문서에 의한 명령의 전달과 보고체계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지방사회의 인민과 생산물에 대한 지배가 관철되고 있었다.
    이는 문헌자료에 전하는 신라의 官制 정비과정에 견주어 목간으로 표현된 문자에 의한 지배가 이른 시기부터 도입되어 기능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560년대에는 신라의 주요 관부 가운데 兵部와 司正府, 稟主 정도만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신라는 나물마립간(356~401)대의 사실로 추정되는 물장고 사무를 담당한 한기부인 부도의 사례나 坊里制의 시행(469), 郵驛의 설치와 官道의 정비(487) 그리고 자비마립간 11년(468)과 소지마립간 8년(486)에 지방민을 차출하여 축성을 실시하고 있는 사실로 보아 5세기 후반에는 이미 인민에 대한 정확한 戶口의 파악과 문서행정을 통한 지배시스템이 국가적으로 구축되어 있었다고 여겨진다.
    본고에서는 목간에 내재된 신라 중고기의 국가와 사회를 개별 유적에서 출토한 목간을 분석하면서 어느 정도 해명할 수 있었으나, 고대 한국의 문자문화라는 시각에서 목간에 대한 연구는 미진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목간 연구는 개별 유적에서 출토한 목간의 기초적인 연구에 주력해 왔다. 본고 또한 이러한 틀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최근 점증하는 목간 자료의 증대는 목간 연구의 거시적인 틀을 새롭게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같은 시각에서 목간 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 목간의 분류체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전체 목간을 몇 가지의 형태로 분류하여 이를 중국과 일본 목간의 형태 분류와 비교하여 유형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목간 자체가 중국에서 기원하였으며 이후 동아시아 각 지역에 전파되면서 그 형태에 있어서도 관련성을 추구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과정은 한국목간의 형태적 특징을 추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용도에 따른 목간의 분류는 세부적인 내용을 중시하여 다양한 표현으로 목간을 분류하기도 하나 크게 文書목간과 꼬리표[附札]목간, 그리고 기타목간 세 가지로 모든 목간을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대분류체계를 분명히 한 후 그 안에서 세부적인 용도로 구분하는 것이 용도별 분류의 오류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후 새로운 목간이 발굴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렇게 기초적인 한국 목간의 분류체계를 수립하면서 신라와 백제 목간의 특성까지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분류체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 목간문화의 공유지점과 차이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같은 목간문화의 특성이 어떠한 역사적 기원과 의미를 지니는 지에 대해서도 해명되어야 한다. 현재의 知見으로는 대외교류를 통한 문자문화의 수용 과정과 정치제도 및 사회문화상의 내부화 과정에서 차이가 기원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한 연구가 요구된다. 고대 한국에서 文字[漢字]가 어떻게 수용되어 내부화되어 갔는지를 추구하면 각 국의 목간문화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앞으로의 연구가 진행된다면 신라와 백제목간의 공통과 차이를 확인하고서 이를 전체 한국 목간의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목간 연구의 전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 문제가 나름의 결실을 맺게 되면 고대 동아시아지역의 목간문화 비교 연구를 위한 기본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목간문화는 중국에서 기원하여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간적․지역적․문화적․언어적인 차이로 말미암아 각 지역의 현황에 걸맞는 목간문화가 전개되어 나갔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경우 중국인의 문자인 한자를 수용하여 내부화했기 때문에 중국의 간독과는 또 다른 일면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 목간의 분류화, 체계화 작업에 나름의 결과물을 제시할 수 있다면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전해진 목간문화의 비교를 위한 기본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Index terms
  • 목간, 신라, 중고기, 문서목간, 꼬리표목간, 부찰, 하찰, 문서표지, 월성, 월성해자, 경관, 고대 일본, 성산산성, 목간 제작지, 제첨축, 이주민, 도래인, 정치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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