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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유럽중심주의적 세계사연구에 입각한 아시아기독교사 재고찰 - 인도양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탈유럽중심주의적 세계사연구에 입각한 아시아기독교사 재고찰 - 인도양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명윤(한국학중앙연구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24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1년 07월 1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1년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가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던 인도네시아로의 진출을 시도했지만 네덜란드의 아성을 깨지 못하고 후퇴하여 대신 인도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초기에 영국 동인도회사는 캘커타와 마드라스, 봄베이에 상관을 설치하고 무굴제국과 현지 통치자의 협력을 얻어 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들에게 선교는 현지에서의 갈등을 유발하고 인도에서 영국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요인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인도 입국을 통제하였다. 더군다나 당시에 선교에 앞장섰던 것은 침례교나 감리교 같은 비국교도들이었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시기에 비국교도들은 마치 자코뱅당과 같은 공화주의자들로 여겨졌기 때문에 신뢰하기 어려운 견제의 대상이었다. 또한 18세기 부흥운동 시기에 회심한 대부분의 비국교도 선교사들은 신앙의 형성에 있어서 개인의 회심 체험을 무엇보다도 중시했기 때문에 신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나 간섭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영국은 인도에서 종교적인 관용과 중립, 불간섭의 정책을 유지하였고 오히려 무굴제국의 관행을 이어받아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지역의 힌두교 사원에 기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태도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변화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계기는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토착세력간의 대결이었던 1757년의 플라시 전투였다. 이 전투의 결과로 동인도회사는 벵골지역의 징세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무역을 통해 수익은 얻는 구조였던 데에 비해 징세권의 확보는 통치자의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동인도회사는 즉각적으로 단지 세금의 징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게다가 날로 혼란스러워지는 무굴제국 쇠퇴기의 분열상 속에서 영국은 현상의 유지만으로는 영국의 이익을 지킬수 없다고 깨닫게 되었고 인도에서 세력의 팽창을 꾀하던 프랑스에 맞서며 적극적인 군사적인 팽창을 통해 영국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정책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이를 통해 인도 내의 무역세력에서 인도 전역에 걸친 통치자로서의 획기적인 지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 영국은 통치 정책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의 계기들을 갖게 되었다.
    이제 통치자로 변화하게 되면서 통치의 효율과 안정성을 위해서 인도인들에 대한 동화정책에 대한 필요가 제기되었고 영국 내에서 점증하는 계몽주의적인 태도와 신앙적인 열정의 결과로 인도인들을 계몽하고, 개종해야 하는 사명감의 주장이 높아져갔다. 이 시기에 선교사들은 동인도회사의 통제로부터 선교의 자유를 확대하고자 하는 열의가 높아져갔고 실제적으로 열악한 선교지의 상황으로부터 개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관여를 요청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들은 인도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수입에 비해 비효율적이며 부패한 운영으로 지탄을 받던 동인도회사에 대한 비난여론과 결합하여 1813년, 매 20년마다 돌아오는 정관 개정의 시기에 전국적인 로비가 활성화되어 결국 인도내에 주교가 관장하는 영국 국교회의 교구를 설치하고 선교사들의 입국을 허용하며 동인도회사의 인도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폐지하고 인도인의 교육을 위한 재정의 지출을 결의하는 정관의 개정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와 함께 교육의 매개가 되는 언어로서 동양의 언어를 주장하던 동양학자들의 입장이 쇠퇴하고 인도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인도의 사회 관습에 대해 불간섭이던 정책에서 적극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입장으로의 선회가 함께 이루어 졌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외형적인 팽창을 통해 한국 사회에 중요한 종교적인 실체로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외형적인 성장에 걸맞는 신학적인 성찰이 결여되어 있으며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서구 지향적인 교회로서의 한계를 안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토착화와 상황화의 논의들이 그동안 꾸준히 개진되어 왔다. 그러한 논의들은 한국의 역사와 전통의 특수성, 한국이 해방이후 겪어온 정치적 변동과의 상관성 등을 고려하며 한편으로는 민족적인 주체성을 신학적 사유와 결합시키고자 하는 논의들로, 한편으로는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모순이라는 상황 속에서의 신학함의 자리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교회의 다수는 보수적인 장로교회의 모습에 머물러 있고 한국 교회 신자들의 대부분의 모습은 영미 부흥운동기의 열정에 대한 향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토착화와 상황화의 논의들은 역사적인 맥락을 강조해 왔지만 오히려 다수의 교회과 신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역사적인 맥락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해왔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지난 500년간 이루어져 온 아시아 기독교 역사에 대한 연계성과 성찰이 결여되어 있고 하나의 가상의 섬으로서 한국 기독교의 위상을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각을 넓게 보면 한국 기독교가 겪어왔던 문제는 아시아 혹은 비서구권의 대부분의 피선교지의 경험을 간직한 기독교 세계가 공통으로 겪어왔던 문제들이지 한국 교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피선교지이자 피식민지, 저개발국가라는 환경 속에서 교회는 전통문화와의 갈등과, 권위적인 정권과의 관계설정 문제, 사회개혁에의 기여 등의 문제를 통해 분열되고 연합하며 다양한 논의들을 생산해 왔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단지 한국적인 컨텍스트 안에 국한 시키는 것은 보다 보편적인 관점으로 문제들 들여다 볼 수 있는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다른 비서구권 교회에 대해 제한적인 관심만을 가져왔다. 탈아입구의 환상 속에서 아시아를 향해 침략의 손길을 뻗쳤던 일본 군국주의처럼, 한국 기독교는 다른 비서구권 국가들을 피선교지라는 입장에서만 바라볼 뿐 연대감과 귀속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나친 친미적인 역사의식은 마치 아시아에서 태평양을 건너 한국이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통속적인 환상 속에서 영국, 독일, 덴마크로부터 시작된 개신교선교가 아시아 전 대륙을 걸쳐 진행되어 한국에서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기독교가 형성되어 온 과정에 대한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여타 아시아 지역의 교회사에 대한 연구와의 연속성속에서 한국 교회를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영향력과 경제적인 지원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음에도 여전히 소수에 불과한 아시아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발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의 인식을 얻을 수 있으며 미래적으로 아시아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도에서부터 시작된 근대 아시아 선교의 역사에서 한국은 가장 마지막 장을 차지한다. 한국에서의 기독교의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게 벌어졌던 수많은 오해와 갈등과 충돌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교회가 경험해온 혼란과 성장의 이면에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교회와 함께 겪어온 공유의 역사가 있다. 어떤 면에서 후발주자로서 한국 교회는 기독교가 먼저 전파되었던 아시아 교회들의 경험과 희생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 교회는 그 경험을 전수받아야 하고 함께 공유해야 한다. 그럴 때에 함께 성장하고 아시아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선교의 주체로서 한국 교회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인도, 동인도회사, 선교운동, 윌리엄케리, 윌리엄윌버포스, 1813년 정관개정, 대영제국, 아시아기독교, 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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