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일제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개된 한국 근대 방송문예에 관한 연구로서, 방송문예 프로그램의 장르와 레퍼토리를 분석하고 방송문예 텍스트의 변모 양상과 미학적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192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인 라디오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
본 논문은 일제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개된 한국 근대 방송문예에 관한 연구로서, 방송문예 프로그램의 장르와 레퍼토리를 분석하고 방송문예 텍스트의 변모 양상과 미학적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192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인 라디오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동화정책을 위한 도구로서의 도입되었지만 지배 권력과 식민지 민중 사이의 헤게모니가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식민지 공공영역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프로파간다 도구로서의 라디오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식민지 지배 권력은 보다 많은 청취자로 하여금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게 할 필요가 있었기에 고출력의 방송소 설치와 전국적 방송망 확충을 시도하였으며, 이에 따라 조선인 청취자의 수도 급증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어 방송은 식민지 사회 속에 대중문화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근대적 대중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총독부의 사전 검열과 심의 속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그 결과로서 문화적 측면에서의 근대성의 형성에 기여를 할 수 있었다.
경성방송국의 방송 프로그램 편성은 보도·교양·오락이 일정한 비율을 유지되고 있었다. 이 중에서 조선인 청취자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오락 프로그램은 전통음악, 양악, 유행가 등이 중심이 된 음악 프로그램과 각종 문예물 및 공연 실황 중계로 대표되는 연예 프로그램의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송문예는 전통적인 문학 장르를 라디오에 맞게 변형시킨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경성방송국의 프로그램 상으로 볼 때는 방송극, 영화 이야기(영화 해설), 방송소설 등을 지칭한다. 방송문예는 연극, 영화, 소설, 전통적 서사물 등 기존의 문학 예술을 라디오라는 미디어의 속성에 맞게 변용시킨 것인데, 본 논문에서는 방송문예의 장르를 연극, 영화, 서사문학과의 관련성 속에서 각각 논하였다. 라디오에 의한 연극 즉 방송극에는 라디오드라마, 방송무대극, 방송영화극, 라디오 풍경, 각본 낭독의 다섯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중에서 라디오드라마가 가장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영화를 라디오를 통해 방송한 프로그램은 상설관 변사에 의한 영화 해설과 영화배우가 직접 등장하여 연극적 효과를 내려고 한 방송영화극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서사문학이 라디오와 결합하면서 나타난 방송문예는 초기에는 야담이 중심이 되었으나 방송소설이 독자적 장르로서 발달하게 된다.
라디오 방송 도입 초기에 나타난 라디오 예술론은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와 더불어 새로운 예술 형식이 장르적 개방성 속에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라디오를 통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탐색한 점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의 라디오드라마 텍스트는 라디오드라마의 장르적 성격과 미학적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중 방송 개시 이후의 라디오드라마의 미학적 독자성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제기되고 라디오드라마 예술론이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무대극을 그대로 방송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방송극 독자의 형식을 추구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외국 라디오드라마를 번역, 번안한 작품이 발표된다. 동시에 소설 작품을 라디오드라마로 각색하거나 순수하게 라디오를 위한 창작 라디오드라마가 활발하게 창작되는데 이들 창작 및 각색 라디오드라마에는 라디오드라마 고유의 극작술이 잘 드러나 있다.
라디오드라마의 미학과 기법은 대사, 지시문, 음악 및 음향 효과, 연출의 네 가지 층위에서 살필 수 있다. 라디오드라마에서 대사는 인물의 행위 묘사나 무대 변화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등장 인물의 성격에 대한 제시를 담당하는 자기완결적 언어를 지향한다. 라디오드라마의 지시문은 무대극 지시문과 미분화된 경우가 많지만 일부 작품에서는 청각을 지향하는 지시문과 의음 사용 등을 통해서 청각성을 구현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라디오드라마에서는 무대의 분위기를 드러내거나 장면의 전환을 표시하기 위해서 음악 및 음향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삽입된 노래는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하나의 공연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라디오드라마의 중요한 특징으로 시·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유동성’을 들 수 있는데, 창작 및 각색 라디오드라마 작품에는 이러한 유동성의 표현을 위해 마이크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극작술이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