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플라톤의 대화편「메논」에서 제기된 이래로 오랜 동안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 온 학습 또는 지식의 획득 가능성 문제를 교육인식론적 관점에서 해명하는 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문제에 대한 플라톤 자신의 대답인 회상설은 그 자체의 논리 ...
본 연구의 목적은 플라톤의 대화편「메논」에서 제기된 이래로 오랜 동안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 온 학습 또는 지식의 획득 가능성 문제를 교육인식론적 관점에서 해명하는 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문제에 대한 플라톤 자신의 대답인 회상설은 그 자체의 논리적 결함으로 말미암아 학습의 가능성을 전생에서의 학습으로 끊임없이 미루는 무한회귀에 빠지며, 이 점 때문에 그것은 학습 또는 지식의 획득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경험론과 합리론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인식론과 피아제의 발생적 인식론은 이 문제에 대한 대표적인 해결책에 해당한다. 대체로 말하여, 이 세 가지 이론은 세부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식의 획득을 개인과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의 함수로 설명한다는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따지고 보면, 개인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마음의 능력―즉, ‘본유관념’ 또는 ‘생득적 지식’―에 의존하여 지식의 획득을 설명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종래의 인식론적 주장들은 한편으로 회상설에 들어 있는 회귀의 문제를 도외시하며, 또 한편으로 지식의 원천을 ‘개인’에게서 찾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함린의 인식론적 논의는 종래의 견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지식의 획득은 개인이 홀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적 개념체계에 입문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점에 주목하면, 지식의 획득 장면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합의,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삶의 형식에 대한 합의가 가정되어 있고, 그런 만큼 지식의 원천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비록 공적인 것이지만, 또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지식획득의 ‘사실적’, ‘경험적’ 선결조건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보면, 함린의 견해가 회귀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식에 있어서 종래와 다른지는 의문이며, 일각의 비판에서 보듯이 지식의 원천이 공적인 것임을 보이는 데에 충분한지는 더욱 의문이다.
칸트의 인식론적 견해는 지식의 획득을 특이한 방식으로 설명하며, 이 점에서 함린의 견해가 지니는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데에 중요한 시사를 제공해준다. 칸트의 인식론은 인식에 활용되는 마음의 능력을 감각과 이해와 판단으로 구분하고, 각각이 가능하기 위한 그 이전의 형식적 조건을 밝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선험철학의 근본 발상을 감안할 때, 그의 논의는 결국 ‘마음의 중층구조’라는 사고모형에 비추어 이해될 수 있다. 즉, 우리 마음은 현상 수준의 마음인 개념과 본체 수준의 마음인 이념이 동일하지도 상이하지도 않은 관계로 아래위로 겹쳐져 있으며, 위층의 이념은 아래층의 개념을 표현 이전의 형태로 응축하고 있는, 그것의 표준이라는 것이다. 이 모형에 의하면, 지식의 획득은 개인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적 개념체계로 입문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표현 이전의 이념이 다양한 개념으로 표현된다는 뜻으로 된다. 이념은 지식획득의 ‘논리적’, ‘형이상학적’ 선결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칸트는 회귀의 문제를 그 문제를 일으킨 것과 동일한 사고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며, 일체의 구분이 적용될 수 없는 것에 의존하여 지식의 공적 성격을 확립하고자 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칸트가 봉착한 난관은 결국 인식의 한계를 초월한 이념이 우리 마음에 주어져 있다고 본 데에서 빚어진다. 그러므로 목하 문제는 이념이 우리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된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 본 연구에서는 지식의 획득을 ‘설명’(또는 ‘메타피직스’)과 ‘실현’(또는 ‘메타프락시스’)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구분하여 파악하였다. 이 구분에 의하면, 칸트는 지식이 이미 획득된 상태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이념으로 설명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으며, 따라서 지식의 획득은 이념이 개념으로 표현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념의 실현에 관심을 두는 교육인식론의 입장에서 보면, 이념은 생득적 지식처럼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세계에서 개념을 획득하는 과정을 통하여 그 존재 유무가 확인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개념은 이념의 실현 매체이다. 요컨대, 교육인식론에 의하면 지식의 획득은 개념과 이념의 순환으로 파악되며, 이 경우에는 회귀라든가 지식의 공적 성격이 더 이상 논란거리로 등장하지 않는다. 개념의 획득을 업으로 삼는 ‘교육’은 종족 차원의 과업이며, 이 점에서 교육은 지식의 원천은 물론이요 지식의 가치 또한 스스로 확립한다.